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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Jan 06. 2021

055.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
요즘 자꾸 이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이상하게 음이 착 감기는 게 중독성이 있다. 같은 말이라도 운율을 타버리면 영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엔 갈매기만 슬피 우네~’ 나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 뱃사공~’처럼 이제 익숙해진 노래는 비록 글자로 보더라도 운율이 바로 떠 오르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왜 같은 문장인데도 어떤 것은 글자의 나열로 느껴지고 어떤 것은 노래로 받아들여질까. 큰 의미는 없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이렇다.    

첫째, 그 노래를 너무 많이 들었던 탓이다. 어떤 가사에다 운율을 붙이면 그게 노래가 된다. 그리고 그 운율을 반복해서 부르거나 듣게 되면 이제 그 가사는 단순한 문장이나 시구에서 노래로 다가오는 것이다. 군생활중 배운 군가는 눈만 뜨면 들은 통에 그냥 흥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군가를 배우는 시간이 따로 있는지 모르겠으나 군가를 배우는 방법은 보통 훈련 중에 틈을 내어 조교가 선창하고 훈련생들이 따라 부르는 식으로 배운다. 그런데 그렇게 배운 군가를 매일 들으니 안 외워질 수가 없다.

둘째, 운율이나 가사가 나의 정서에 딱 맞아진 거다. 정서에 맞다는 것은 지금의 내 분위기에 부합된다는 의미이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내 청춘~’이라는 노래를 활기찬 시장통에서 부르면 분위기를 영 잘못 파악한 것이다. 같은 이별 노래도 연애감정이 한창 무르익을 때면 그리 와 닿지 않았는데 헤어지기라도 할라치면 노래 가사가 구구절절이 가슴을 파고드는 것이다.

셋째, 그 노래가 분위기와 어울릴 때 귀에 쏙 들어온다. 조용필 하면 떠오르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노래는 70년대 당시 일본의 조총련 재일 동포들의 고향방문에 즈음하여 히트를 쳤고,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노래는 KBS의 6.25 때 헤어진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이 한창일 때 인기를 얻었던 노래이다. 분위기 하면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개인적인 경험이 있다. 대학 MT 때 유치하긴 하지만 수건 돌리기를 하다가 걸리면 노래하기가 있었다. 남녀 비율도 거의 5:5로 분위기도 좋은 상황이었는데 내가 걸리고 나서 부른 노래가 ‘선구자’라는 가곡이었다. 당시 싸했던 분위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고개를 흔들고 싶은 심정이다. 당시 나는 참 분위기 파악 못하는 또라이에 가까웠나 보다.

요즘은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다. 일단 가사가 길고 많기도 하거니와 그리 와 닿지 않는다. 같은 이별 노래도 나의 정서는 눈물이 생각나는데 요즘의 노래는 헤어지는 노래의 가사가 거의 전투적인 내용이 많다. 반면에 아내는 최신 노래를 곧잘 부르곤 하는데 아무래도 딸아이들이 흥얼거리는 것을 자주 들어서인가 보다. 세대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노래를 듣고 함께 부르면 좋다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음이 높고 빠르고 가사는 거의 소설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 쉽게 접근할 수가 없다. 요즘 흥얼거린다는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도 딱 거기까지이다. 좀 더 길게 들어보니 그 음의 영역대가 내가 부르기엔 삑사리가 날 수준이었다. 역시 노래는 자기에게 맞는 것이 따로 있나 보다.  

출근을 하면 행진곡을 일부러 듣는다. 좀 활력 있는 하루를 시작하고자 함인데 노래는 조용한 사무실 분위기를 바꿔놓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듣는 것도 있지만 원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래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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