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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Jan 07. 2021

056. To Be or To Do

우선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를 자신에게 말하라.
그리고 나서 해야 할 일을 하라. / 에픽테투스


이 글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세상에 할 일은 참으로 많다. 좋아 보인다고 모두 따라 하면 정작 몸과 마음은 바쁘지만 어느 순간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를 “To Be”라고 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는 “To Do”라 할 것이다. 먼저 무엇이 될 것인지를 정하라. 그러고 나서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야 할 일들을 먼저 한다. 우리 주위에는 To Do List는 흔히 보지만 To Be List를 가진 이는 드문 것 같다. 사실 저 문구에 잠시 멈칫한 것은 무엇이 된다는 것이 직업이나 지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생각들이 있고 그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거리는 못된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한국 남자들의 문제는 불안이라고 했다. 권력을 나타내는 지위와 명함에 대부분의 가치를 두기 때문에 적을 만들거나 편을 가르게 되는데 이 경우 자신의 느낌이나 의견보다는 적인지 아군인지 색깔을 명확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러니 한국의 남자들은 그 지위나 명함을 잃어버릴 것에 늘 불안해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말이다.

중년이라는 나이는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게 남은 지점이다. 멀쩡한 정신과 신체를 유지하며 지낼 날이 어느 정도인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이 시점에서 너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다소 당황스럽다. 더 이상 새로운 무언가가 될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해서다. 그래서 이 말은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정체성을 묻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는 객관식으로 물어야 한다. 근원적인 질문을 주관식으로 답을 찾으면 그냥 헤매기 십상이다. 사지선다 문항을 만들려면 먼저 필요한 요소들을 나열해야 한다. 나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에 적합한 요소들은 나의 주요 관심사들로 이루어진다. 이것도 두 가지로 나누어야 하는데 유지해야 할 것과 지향해야 할 것이 있다. 건강과 안정된 소득, 평온한 가정은 유지해야 할 것들이라면 그 위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으로 지향해야 할 것들을 나열해야 한다. 나의 경우 지향점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글쓰기, 여행, 유라시아 대륙, 외국어, 커뮤니티, 불교, 명상, 배움, 나눔, 요리 등의 생활기능’ 들이다. 이런 것들을 버무려 객관식의 문제를 만들고 문항들을 만들어야 한다.  

중년 이후의 지향점이 어떤 큰 목표를 달성한다는 생각이라면 좀 과욕일 것 같다. 몸도 마음도 무리가 따른다. 이제는 목표를 지향하는 자세보다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려는 마음이 더 필요한 시기일 것 같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상관없는 행복하고 자유로운 작가로 살 것이다. 이 정도면 삶이 좀 가볍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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