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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Jan 08. 2021

057. 인간은 스스로 배운다

배움에 대한 이미지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가르치고 있고 학습자는 그 앞에 앉아 보고 듣고 쓰는 행위를 하는 이미지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배움의 고정관념이다. 그런데 이런 관념을 흔들어준 계기가 있었는데 자기 조직화 학습이었다. 이 방식은 교사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고 학습의 전 과정을 학습자가 직접 참여해서 스스로 배우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40명의 학습자들이 있다고 하자. 그들은 오늘 처음 만난 사이다. 각자가 알아서 그룹을 짓도록 하여 그룹별로 무엇을 배울 것인지 스스로 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 토론하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 전체 앞에 발표를 하게 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교사의 역할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어쩌면 시간 정도만 알려주는 역할에 머물기도 한다.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 상당히 신선하게 여겨졌고 이 방식이 머리가 굳은 성인들에게도 가능할까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점장들 교육을 네 시간 정도 진행해야 될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이 도전적 방식으로 지점장들을 교육해 보고 싶었고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포스트잇과 차트용 사인펜, 빈 현황판이었다. 교실에 들어서니 모두가 의자에 앉아 전형적인 교육생의 소극성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좀 다른 방식의 교육을 하려 한다며 지금부터 마음대로 이동해도 되고 피곤하면 자도 되는데 각자가 그룹을 만들고 배우고 영업에 관해 알고 싶은 주제를 포스트잇에다 적어 1교시 내에 현황판에 붙여달라고 했다. 2교시가 되자 그 현황판의 내용들을 보며 그룹별로 발표할 주제를 하나 선정하는 작업을 해달라고 했다. 선정방법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분위기가 이쯤 되니 서로 포스트잇을 붙인 사람이 그 주제를 제시한 이유를 설명하는 등 열띤 토론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3교시가 되자 이제 그 주제를 두고 토론을 하고 그 결과를 차트에 정리한 후 4교시에 발표 시간을 가졌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정말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열띤 토론이 이어졌고 웃고 떠들며 교육 몰입도가 상당했었다. 그 후로 내가 이 방법을 쓸 기회는 없었지만 당시의 경험은 꽤나 신선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인간은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기본적인 열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대의 교육은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선생이 21세기 학생들을 19세기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근대교육은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는 표준화된 노동인력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공장에서 플라스틱 바가지를 한 번에 수백 개씩 찍어내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러면서 창의적이 되어야 한다고 창의적 교육이 시대의 흐름이라고 한다. 코로나 이후 달라진 것은 오프라인 교실에서 받던 수업을 온라인으로 받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것이 없다. 창의성 있는 인재가 나오기 힘든 환경이다. 한편으로 보면 창의성 있는 인재는 소수로 족하지 너무 많은 창의적인 인재들은 사회 혼란을 일으킬지도 모르겠다. 사회는 기본질서란 게 유지되어야 하고 그것은 쉽게 바뀌어선 안 되는 가치이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창의성은 호기심을 바탕으로 하고 호기심은 배움에 대한 동기를 지속시킨다.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들은 삶에 활력이 있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사실 학생들의 공부 목적은 대부분 동일하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좀 더 크고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 편하게 살아가기 정도일 것 같다. 그냥 배우는 게 좋아서란 말은 적어도 학생들에겐 사치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아무도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중년 이후는 배움 그 자체가 좋아서라는 진짜 공부하기에 딱 좋은 나이이다. 나의 경우 기존의 수업방식은 온몸이 거부하는 것 같다. 가만히 앉아 있는 자체가 고역이니 수업내용이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그래도 배움에 대한 의욕은 남아있으니 이제부터라도 방식을 좀 바꿔볼까 한다. 궁금한 것으로 새로운 주제를 정하고 언제까지 하나의 주제를 마무리 짓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식이다. 그것이 비록 허접하더라도 성장의 마디를 하나씩 만들어 가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고 보니 피터 드러커라는 경영학자도 주제별로 기간을 정해 공부했다는 걸 보면 과히 나쁘지 않은 방식일 것 같다.

오늘날 능력자는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이고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은 다양한 경험과 풍부한 지식으로 다양한 해결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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