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당신이
젊은 시절 부터 산악자전거를 타고 국내의 많은 산들을 오르고, 그 자전거로 산티아고 순레길을 거쳐 유럽을 일주하고, 히말라야를 종주하는 열혈 체력이었다고 치자. 그런 강철 체력의 당신이 어느날 세수를 하다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는데 뇌경색 진단을 받았고 자신의 몸 왼쪽이 마비되고 말조차 어눌한 상태에 처했다면 어떨 것 같은가? 그것도 기러기 아빠로 오랜기간 뒷바라지 했던 아이들이 다 성장하고 이제 미국에서 귀국한 아내와 잘 살기만 하면 되는 편안한 여생이 남았는데 말이다.
그런 사연을 가진 선배님을 만났다. 우리는 회사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실무자와 컨설턴트로 만났지만 서로 의기투합해 10년이 넘게 교류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2019년 그 선배님이 뇌경색으로 쓰러졌다기에 병문안을 다녀왔지만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보험계리사이기도 하고 보험사의 임원까지 지내신 분이다. 술도 안 마시고 몸은 또 얼마나 단단한지 허벅지가 돌덩이 같은 양반이었다. 한 마디로 자기관리의 끝판왕 같은 분이었다. 이제 선배님도 끝났구나 여겼는데 글쎄 이 분이 끝내 재활에 성공하셨다. 왼쪽 몸의 대부분이 정상 수준까지 돌아왔고 이제는 직접 자동차를 몰고 전국을 누비고 다니신다.
선배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아우님, 같이 점심이나 먹자. 내가 그 쪽으로 갈게.” 참 오랜만에 뵈었다. 재활 성공 후 두 번째 만남이다. 호텔 레스토랑으로 가자는 선배님을 한사코 만류하여 가벼운 점심으로 대신했다. 아내에게 주라며 선물을 주시는데 그 마음이 감사했다. 점심 후 벚꽃과 목련이 어우러진 공원 벤치에 앉아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우님, 내가 병원에서 재활 할 때 유일한 소망이 무엇이었는지 알아? ‘하나님, 제발 다시 걷게 해주세요’였어.” 그런 선배님은 남산을 드라이브하며 잠시 감회에 젖는 듯 예전에는 자전거로 정상까지 가뿐히 오르던 길이었는데라고 하신다.
우리는 지금도 인생의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만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지금 내가 내딛는 이 한 걸음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소망일 수도 있다는 걸 안다면 좀 더 겸허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 지금 이대로도 너무나 좋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