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퇴원을 하셨다.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완치는 아니고 약으로 관리하며 당신의 몸을 챙기셔야 한다. 일주일 동안 아버지를 곁에서 돌보며 느끼는 바가 크다. 나도 저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공허한 눈빛과 긴 하루를 보내야 하는 무료함, 딱히 할 것도 없고 해야 할 것도 없는 삶이다. 오직 매끼 식사와 약이나 잘 챙겨 드셔야 하는 수준이다. 그래도 주위에선 복이 많은 노인이라고 한다. 건강한 배우자가 곁에 있고, 자식들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어서다. 하지만 한 인간이 살면서 딱히 추구하는 바 없이 하루하루 삶만 이어간다는 현실은 나이와 상관없이 공허감을 주는 것 같다.
의욕이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적극적인 마음”이다. 그런데 그 의욕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의 결말을 미리 아는 경우이다. 병원에서 아버지를 목욕시켜드리면서 잠시 그런 감상에 젖었다. 근육이 빠져 축 늘어진 팔뚝과 허벅지, 듬성듬성 비어버린 머리숱, 틀니를 빼고 히죽 웃으면 모양도 우스꽝스러운 한 노인네가 나의 아버지였다. 어릴 때는 아버지와 목욕탕 가기가 정말 싫었다. 손의 힘이 얼마나 센지 등을 밀면 아파서 온몸이 뒤틀리곤 했는데 이제 그런 힘은 아주 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생(生) 하면 노병사(老病死) 하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아무리 큰 권력을 누리고 재벌 회장이라고 해도 이 길은 피할 수 없다. 아침 헬스장 샤워실에서 문신을 화려하게 한 청년의 등을 몬 적이 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이 저 탱탱한 피부가 탄력을 잃어 축 늘어졌을 때 저 문신 자국은 얼마나 추할 것인가를 그려보았다.
11만 2,000톤과 6만 9,000톤이라는 통계수치가 있다. 2021년도 국내 성인용 기저귀와 유아용 기저귀의 생산, 수입량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성인용 기저귀가 많다. 노인이 되면 괄약근의 수축 조임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본의 아니게 몸속의 배설물이 흘러나온다. 나는 아닐 것이라고 외면하고 싶지만 이게 현실이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앞으로 27년 후, 나 역시 지금의 아버지와 비슷한 모습일까? 공허한 눈빛, 무료한 일상, 축 늘어진 팔뚝과 허벅지 살 그리고 수시로 오줌을 지려 기저귀를 차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