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용범 Apr 20. 2023

같은 일 같지만 다를 수 있다

나는 계약직이다. 은퇴 전 근무했던 직장에서 일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내 마음을 살펴보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은퇴하고 다시 들어간 직장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한편으론 좀 이상하다. 나의 외형상 조건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번은 바뀌었지만 건물 출입증을 부여받았고 회사 시스템 접속도 가능하다. 업무상 만나는 직원들도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다만 나의 조건만 바뀌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내가 일에 크게 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매월의 급여 말고는 일을 통해 기대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내 마음이 달라지니 주변의 모든 것을 편하게 대할 여유가 생겼다. 현직에 있을 때 느꼈던 업무에 대한 중압감이나 관계의 불편함도 이제는 덤덤하게 여겨진다. 이것은 참 흥미로운 경험이다. 그동안 30년 넘게 내 삶의 큰 비중을 차지했던 일이란 게 이런 거였나 싶어서다.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는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태어났으니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애당초 없는 것을 찾는 쓸데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삶의 의미는 있는 게 여러모로 좋다. 그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가 남 다르다. 처음부터 있지도 않은 삶의 의미를 가지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수밖에 없다. 각자의 의미는 각자가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나도 일이란 걸 할 때 의미를 하나 만들어 보자. '나는 그 일을 왜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우선, 돈을 주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는 스스로 자립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 일이 좋다 싫다, 적성에 맞다 아니다를 떠나 잘 하는 일, 같은 노력에 비해 돈을 많이 주는 일은 할 필요가 있다. 주인의 입장에서 노동 효율성은 적은 비용으로 노동자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는 것이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적은 노동으로 많은 돈을 받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착각을 했지만 자신이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주인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주인 된 입장에서는 참 고마운 머슴이다. 그러니 상머슴을 시켜 다른 머슴들을 관리하게 한다. 상머슴의 현대적 이름은 경영인이다. 너무 시니컬한가? 그런데 그게 팩트다.


돈이 안되어도 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왜 할까? 그 일이 재미 있거나 아니면 의미 있기 때문이다. 재미로 하는 일의 대표적인 것은 취미 활동이나 관심사 탐구 같은 것이고, 의미 있는 일은 재능기부나 봉사 활동 같은 것이다. 이런 일은 돈이 안되어도 한다. "그래서 그게 돈이 돼?"라고 물을 게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일의 특성은 자발성이 크다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 하는 일이어서다.


'노동 해방'이란 단어에는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노동은 가급적 안 하면 좋은 것이고 노동에서 벗어난 상태를 노동 해방이라고 한다. 그러면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왜 하는가? 먹고살기 위해서, 한 마디로 돈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노동이라도 관점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상황이 된다는 걸 알게 한 사건이 있었다. 직장 내 인연이지만 동생처럼 대하는 개성 강한 직원 이야기다. 그는 억대 연봉의 직장 내 중간 관리자인데 강남에 아파트도 가진 살만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가끔 쿠팡의 물류 센터에 가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한다기에 이상해서 "왜?"라고 물었다. 돌아온 답변이 운동 삼아 한다고 했다. 두세 시간 몸을 써서 땀을 흘리고 나면 돈도 주니 할 만하지 않으냐고 말이다. 남들 기피하는 육체노동이 운동이 되는 순간이다. 한 마디로 대단한 관점의 변화였다.

결국 노동 자체에는 우열이 없다. 선문답 같지만 노동은 그저 노동일뿐이다. 다만 사람들이 일이나 노동에 우열을 정했을 뿐이다. 우리는 일을 대하는 노동자로서의 자세를 좀 단순하게 가지 칠 필요가 있다. 내가 돈 때문에 일한다면 나머지는 좀 무시하자. 그렇지 않고 내가 돈이 아닌 재미나 의미 때문에 그 일을 한다면 돈의 비중을 좀 낮게 두자.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것은 실제로는 돈 때문에 일하면서 거기서 재미나 의미까지 찾으려고 할 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