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의 함정

by 장용범

아니 벌써, 월말?

이번 4월의 끝 무렵은 ‘아니 벌써’라는 말이 절로 나온 한 달이었다. 월초부터 아버님의 입원으로 병원을 오가며 경황없이 지내기도 했지만 출장지역도 강원, 제주, 부산 등 전국을 오가야 했던 한 달이었다. 남들 부러워할 제주나 강릉 출장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아름다운 경치들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걸 보면 다른 지역의 한 달 살이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누릴 수 있는 호사인 것 같다. 월말 본사에 출근해 4월의 출장 보고를 마치고 5월 출장지를 재배정받았는데 이번에도 강원이 포함되어 있다. 출장지가 강원, 제주, 경남인 만큼 아무래도 이번에는 동선계획을 좀 정밀하게 짜야할 것 같다. 지금 나의 업무는 여행과 출장이 결합된 거의 노마드적인 생활이다.


최근 딸아이가 뤼비똥 패션쇼 준비 아르바이트를 한 소감을 들려주었다. 행사 준비를 서울의 신라 호텔과 포시즌 호텔에서 했나 보다. 아르바이트였지만 영어 가능자를 모집하다 보니 지원자들의 이력이 제법 다채로웠나 본데 그중 최근 여행사를 그만둔 30대 여성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본인은 여행이 좋아서 여행사에서 일을 했는데 여행을 좋아하는 것과 여행업에 종사하는 것은 정말 달랐다는 내용이었다. 충분히 이해되는 이야기다. 이렇듯 좋아하는 일도 없는 시간을 쪼개어 하는 취미일 때와 그것이 하나의 직업이 되었을 때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그 분은 여행도 하면서 직업으로 돈도 버는 일석이조의 삶을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런가.

축구를 취미로 하는 사람과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축구를 통한 만족이나 행복의 수준은 조기축구회 회원들이 더 높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을 하라거나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에 지나친 환상을 품을 것도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그것으로 먹고살아야 할 직업이 되고나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의무가 되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자유로움일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은 자신을 구속하는 걸림 없는 삶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종교인이나 자발적으로 궂은일을 하는 자원봉사자 같은 사람들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돈이 되니 더 좋다. 이들에게는 돈 보다는 일 자체가 목적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드물다. 대부분은 돈이 안 되면 안 한다는 입장이다.

비영리 단체의 일을 하다 보니 보편적인 가치관과 좀 다른 인물들을 만나기도 한다. 돈을 벌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내면서까지 일을 맡아 하는 사람들이다. 어찌 보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있다. 임원직을 맡아 틈틈이 실무 일도 하면서 소정의 비용도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 크게 거부감이 없는 것은 그 모임의 취지에 공감하고 끌리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이 먹고사는 일이 되다 보면 어쩐지 처음의 설렘은 사라지는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 또는 “가슴이 끌리는 일을 하라"라는 말은 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인간의 감정은 수시로 변하게 마련이고 지금 좋은 것이 나중에도 좋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러니 자칫 좋아하는 일을 따라가다 보면 크게 실망할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좋아하고 끌리는 일이 아니라 한 평생 자유롭게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