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후 달라진 여행방식

by 장용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것도 좀 잔잔한 여행을 좋아한다. 내가 생각하는 잔잔한 여행이란 꼭 유명 관광지를 찾지 않더라도 낯선 곳에 가서 그들의 일상에 묻어가는 여행을 말한다. 현지인들이 가는 시장이나 마트에 가고, 그들이 타는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며 그들의 음식을 접해 본다. 며칠 전 딸아이와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지난 방학 때 다녀온 유럽 어학연수 사진을 본 게 계기였다. 이야기하다 보니 딸의 여행 취향이 나와 비슷한 것 같았다. 딸아이는 우리 가족 첫 해외 여행이였던 싱가폴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사실 나로서는 가족들에게 다소 미안했던 여행이었다. 패키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탓에 자유여행을 택했고 항공권과 숙소만 예약하고는 그야말로 현지에서 좌충우돌해야 했던 여행이었다. 교통편은 시내버스나 전철을 이용했고 관광지는 몇 군데 가지 않고 주로 시내나 재래시장, 도서관이나 대학을 여행지에 넣기도 했다. 첫 해외여행에서 이것저것 볼 욕심에 초등학생인 아이들을 데리고 참 많이도 걸어다녔다. 딸아이는 우리 가족이 싱가폴 대학의 학생 식당에서 밥 먹던 때를 기억했다. 히잡을 쓴 까무잡잡한 학생들과 어울려 식사하던 한국인 같은 학생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 외에도 가족여행으로 몇 군데 더 다녔지만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자유여행이 익숙한 탓에 성인이 된 지금도 여행을 좀 편하게 대하는 것 같다. 아르바이트 해서 모은 돈으로 혼자서 치앙마이 한 달 살이 간다거나 인도를 단체 배낭 여행으로 가기도 했다. 최근에는 긴장되는 사건도 하나 있었다. 캐나다서 뉴욕으로 넘어갔는데 코로나에 걸려 호텔방에서 혼자 끙끙 앓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이다. 그래도 여자 아이들인데 저렇게 여행해도 되나 싶을 때도 있다. 겉으로는 대범한 척해도 속으로는 조마조마한 게 아빠 마음이다.

딸아이와 여행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느낀 것은 여러모로 어설픈 것 같은데 그래도 잘 크고 있구나 하는 믿음이었다. 여기에는 여행도 한 몫을 한 것 같다. 혼자 여행을 좋아하는 성향은 나를 닮은 것도 같다. 내가 배낭여행에서 느낀 바가 컸기에 아이들에게 여행을 권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경비를 다 대주지는 않고 본인이 아르바이트 한 돈 만큼 내가 보태주는 식이다. 이제는 중년이 되니 해외여행에 대한 설렘도 많이 줄어들었음을 느낀다. 역시 여행은 가슴 떨릴 때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요즘 나의 해외여행에 대한 패턴은 두 종류이다. 하나는 편안한 여행이다. 늘어지게 호텔에 머물며 수영이나 하고 가끔 동네 산책을 하는 수준이다. 주로 동남아 같은 곳을 찾을 때이다. 또 하나는 테마여행이나 트레킹이다. 이런 여행지는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으로 뜻 맞는 사람들과 소그룹으로 가는 편이다. 중국의 창산 트레킹, 따리-리짱-샹그릴라, 무이산, 블라디보스톡-우수리스크-핫산 그리고 최근 다녀온 키르기스스탄이 그랬다. 고생은 좀 했지만 그만한 가치는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몸이 힘든 게 점점 싫어진다. 최근 모임에서 몽골-바이칼 철도기행 가자는 제의에 선뜻 내키지 않았던 이유기도 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