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지만 즐거운 시간들

by 장용범

한동안 골프 입문 권유를 많이 받았었다. 함께 근무하던 상사가 골프채를 바꾼다며 쓰던 골프채를 풀 세트로 안겨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골프는 별로 끌리지가 않았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 취향이다. 나의 경우 일을 할 때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만 쉴 때는 가급적 혼자 쉬는 게 좋았다. 그래서 운동도 혼자 하는 것을 즐긴다. 상대가 있는 운동으로 승패를 가르는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아서다. 그래서 공도 별로 좋아하지 않나 보다. 남들은 혼자서 뭐 하고 노나라고 하지만 사실 찾아보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았다. 아내도 나의 이런 취향을 존중해 가급적 혼자 내버려 두는 편이다. 내가 늘 감사해하는 부분이다. 그럼 대체 뭘 하며 혼자 놀고 있을까? 내가 주로 노는 방식들이다.

글쓰기

은퇴를 앞두고 뒤늦게 글쓰기에 입문했다. 정말이지 평생을 함께 할 귀한 취미를 얻은 셈이다. 내가 글쓰기 이렇게 빠져들 줄은 몰랐다. 글을 쓰는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글을 쓴다는 게 재미나고 흥미롭다. 하얀 화면에 자음과 모음이 타닥타닥 앞다투며 채워지는 모습이 역동적인 경마 게임을 보는 것 같다. 한글은 자음이 무조건 앞설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내 모음이 혼자 가면 어떡하냐며 따라붙는다. 그래서 가끔 ㅋㅋㅋ, ㅎㅎㅎ, ㄱㅅ 등의 자음으로도 뜻이 통하는 걸 보면 좀 이상하다. 글쓰기는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이나 생각을 현실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제 은퇴까지 했으니 시간은 더 많을 것이고 글쓰기는 앞으로도 좋은 취미로 계속 남을 것 같다.


아침 헬스, 아침 산행

중년의 나이가 되면 운동은 일부러라도 해야 한다. 나에게는 20년을 넘긴 헬스라는 운동이 있다. 그렇다고 멋진 근육을 키우려는 목적은 아니다. 그냥 하루 중 한 시간 정도를 내 몸을 위해 투자한다. 헬스는 사전 준비가 필요 없고 시작과 끝이 깔끔한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다. 개인 PT를 받지 않는 한 누구도 나를 간섭하지 않는다. 가벼운 러닝으로 시작해 적당한 근육 자극으로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하면 운동의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끝나는 것 같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운동 시간을 언제든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좋다. 코로나 시대에는 헬스장 대안으로 시작한 게 아침 산행이었다. 늘 같은 코스로 올라가서는 같은 곳 같은 방향으로 사진을 찍어 ‘봉수대의 아침’이라는 제목으로 SNS나 블로그에 올렸다. 이제는 나의 일상적인 운동에도 선택지가 하나 늘어난 셈이다.

자전거 타기

자전거 타기도 혼자 할 수 있는 활동이다. 예전에는 내 자전거로 움직였으나 요즘엔 공유 자전거를 이용한다. 180일에 15,000원이면 서울 시내 ‘따릉이’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출근길에 이용하기도 했지만 주말이면 한강으로 나가 여의도에서 반납하고는 지하철로 돌아오곤 한다. 몇 년 전에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혼자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 작은 성취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책 읽기

책값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책 읽기는 대표적인 혼자 할 수 있는 활동이다. 특정 주제를 읽는 편이 아니라 잡학이지만 그래도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면 그동안 참 다양한 주제를 접했던 것 같다. 작은 부작용은 들고 다니는 가방이 늘 무겁다는 것이다. 노트북에 책 한두 권을 넣으면 이내 묵직한 배낭이 되고 만다.


여행 가기

여행은 배낭여행이나 자유여행으로 즐기는 편이다. 패키지로 시간에 맞춰 이동한다거나 원치 않는 쇼핑이나 그룹의 분위기에 맞추어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주로 시내를 중심으로 가벼운 여행을 하는 편인데 최대한 짐은 가볍게 떠나는 편이다. 다행히 여행 감성은 아내도 나와 비슷해 함께 가는 여행이라도 따로 함께 같은 여행이 되곤 한다. 지금 이 시간 게스트하우스의 카페에서도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놀고 있는 중이다.


레고조립

레고는 뒤늦게 입문한 혼자 놀기이다. 요즘은 다른 일이 많아 조금 제쳐 놓은 상태이다. 1년째 진행을 미뤄둔 스타워즈 모함의 미완 작품을 보면 저걸 언제 하나 싶기도 하다. 피스가 좀 많아 너무 욕심을 내었나도 싶다. 처음엔 레고 정품으로 조립했으나 가격대가 비싸 중국제 유사 레고제품을 이용하는 편이다. 레고 같은 취미에 큰돈을 쓰고 싶지 않은 때문이다.

요리하기

가끔 요리도 한다. 내일배움카드로 학원도 꽤 오래 다녔었다. 요리를 배운 이유는 사람이 자기 먹거리를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야 한다는 건 독립성에 맞지 않다 여겨서다. 요리의 다른 성과라면 설거지에 거부감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공부하기

공부는 사실 고급진 취미이다. 학교라는 제도가 그 재미를 앗아간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공부는 혼자 할 수 있는 재미난 놀이이다. 이제 시험을 위한 공부는 하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공부 위주로 테마를 정해하는데 이게 소소하게 재미있다. 요즘은 무료 온라인 강의도 널려있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쉽게 배울 수 있는 길이 많다. 특히 외국어 공부는 해외여행과도 연결되어 목적성이 뚜렷한 면도 있다.


혼자 놀기도 하지만 공동 관심사를 지닌 분들과도 자주 어울린다. 동아리나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몇 개의 비영리 단체의 일들도 맡아한다. 사람들과 공통된 관심사로 나누는 대화는 그 자체로도 즐거운 시간이다. 여기에 은퇴 후에도 이어지는 직장동료들은 이제 형 동생으로 남은 고마운 인연들이다. 이런저런 인연 덕에 비록 은퇴는 했지만 교류가 풍성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내가 누리는 혼자 놀기에 적당한 것들을 두서없이 적어보았다. 문득 지금의 여유로운 이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겨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