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낮에 꾸는 꿈

by 장용범

어릴 적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를 접하면서 막연히 킬리만자로라는 산을 동경했었다. 열사의 땅 아프리카에 눈 덮인 산이 우뚝 서있다는 자체로 그냥 멋져 보였다. 이 노래는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모티브를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상을 좇던 한 남성이 현실과 타협해 어느 돈 많은 여자와 사랑 없는 결혼을 했고 비록 부유하기는 했지만 알맹이 없는 삶을 살다가 죽음을 앞두고 후회한다는 내용이다.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먹는 하이에나에 자신을 빗대었나 보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오늘날의 세태로 보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내용이긴 하다.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은 이렇게 시작한다.


'킬리만자로'는 높이 19,710피트 눈에 뒤덮인 산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라 한다. 서쪽 봉우리는 마사이어로 '누가예 누가이' 즉,' 신의 집'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 봉우리 가까이에는 말라 얼어붙은 한 마리의 표범의 사체가 놓여있다. 도대체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설명해 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가슴 저리게 불렀던 조용필이 킬리만자로에 오르지도 않았고, 정작 헤밍웨이도 킬리만자로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조차 가본 적이 없다 하니 그들의 노래와 소설로 한때 킬리만자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었던 나로서는 약간의 배신감마저 든다. 그나마 조용필은 킬리만자로 산이 있는 탄자니아의 정부의 초청을 받아 세렝게티에는 다녀왔나 보다.


킬리만자로 산의 높이 19,710피트는 거의 6,000미터의 산이기에 오르기가 만만치 않은 산이다. 만일 헤밍웨이가 직접 산에 올라 표범의 사체를 보았고, 나중에 조용필이 <킬리만자로의 눈>을 읽고 자신도 산에 올랐다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그들의 노래나 소설로 그 괴리를 보여주는 것 같다.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고 조용필의 노래를 들은 엄한 사람들만 킬리만자로를 찾아 고산병을 견디며 힘들게 오른 셈이다. 나 역시 킬리만자로에 대한 동경을 품었던 터라 한때 나의 버킷리스트에 넣어두기도 했지만 직접 고산병을 겪고 나서는 높은 산에 대한 미련을 아예 접어버렸다. 정말이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비록 트레킹 수준이었지만 고산병의 고통만큼은 확실하게 안 셈이다. 어떤 산은 오르기도 하지만 어떤 산은 바라만 봐야 할 산도 있는 법이다.

나에게 킬리만자로가 그러하듯 인생의 꿈 또는 이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어야 한다. 아무리 대단한 꿈이라도 실현되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그렇다면 꿈이 왜 필요할까? 내가 오늘을 사는 방향성을 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봉화로 변방의 소식을 전하던 사람이 오늘날 휴대폰 영상통화를 보았다면 꿈이 실현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사실 그리 먼 일도 아니다. 조선시대 마지막 봉화가 1894년 일본의 침략을 알렸던 것이라 하니 불과 129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이다. 이제 영상통화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과학자들은 가상세계를 접목한 통신의 다른 모습을 꿈꾸고 있다.

58세, 지금 나에게 꿈이 있는가? 앞으로 흰머리는 점점 늘어나고 노화는 더 진행될 것이다. 꿈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꿈꾸기를 멈추지는 말아야겠다. 그것은 내 남은 삶의 방향성이기도 하니까. 인생은 일장춘몽이라는 말처럼 산다는 자체가 꿈속에서 헤매는 일이기도 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