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에 의하면 내 나이는 최소 80세 이상은 살 것 같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큰 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이미 은퇴는 했지만 아직은 나의 일을 스스로 해결할 정도는 된다. 새로운 것과 배움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ICT 환경에 익숙하고 몇몇 사적 모임의 운영진으로도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은퇴 후 겪는다는 우울감 같은 것은 느낄 겨를이 없다. 새로운 배움이 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이 많아서다.
이번 토요일에도 두 개의 모임이 있었다. 오후의 대학원 동문 운영진 모임과 저녁 시간의 동아리 회원들 출간 작업 줌 회의였다. 동문회 웹진 발간 작업을 비용이 안 드는 블로그형 홈페이지로 만들기로 하면서 그 작업을 내가 진행하는 것으로 했다. 뒤풀이 자리에서 동문회장이 나를 소개하며 ‘함께 하면 책을 한 권씩 출간시켜주는 사람’이라는 통에 약간 당황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문창과의 특성상 글쟁이들이 많고 당연히 POD 출간에도 관심을 보였다. 내일배움카드로 학원 쫓아다니며 영상편집이나 ICT 활용능력을 배워둔 덕에 작은 재능이지만 모임 운영에 도움이 된다 하니 보람도 있다. 재능을 팔아 돈을 얻지는 못해도 무상의 가치도 큰 보상임을 알게 된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은퇴자들에게 조언하는 내용과 지금의 내 생활이 어느정도 궤를 같이 하고 있어 소개해 본다.
1. 재능을 나누어라
평생 돈 받고 자신의 재능을 팔았다면 은퇴 후에는 이 사회를 위해 그 재능을 좀 나누어라. 이를테면 강연이나 교육, 자원봉사 등을 말한다.
2. 새로운 것을 배워라
배우는 것은 고급진 취미이다. 시대가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어느날 메타버스가 뜨더니 이제는 챗GPT, 구글 BARD 등 개인 인공지능 시대가 열리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배울 것들이 늘려 있다. 여행도 저가 항공의 등장으로 비교적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어 견문을 넓히기에 좋다. 외국어나 새로운 취미도 내일배움카드를 이용하면 본인 부담은 거의 없다시피 하니 배움은 본인의 마음 문제같다.
3.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
직장의 인연들은 그곳에 있을 때만 의미가 있고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은퇴하고 나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럴때 동호회나 모임, 여행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은 새로운 인연이 된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그 관계가 좋다. 이런저런 모임에서 활동하다 보니 그분들과의 만남은 늘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어지고 만남의 비용도 큰 부담이 없었다.
4.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일
직장 생활 중에 시간이 없어 이루지 못한 꿈들이 있다면 이제 펼쳐도 될 시기이다. 나의 경우 그것이 글이라는 형태로 다가왔다. 읽고 쓰는 리터러시 활동은 지금의 내 생활에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여기에 더 해 책 쓰는 모임까지 운영하니 보람이 더 한 것 같다. 아직은 전 직장의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보한 상태지만 유라시아 대륙을 육로로 횡단하는 꿈은 여전히 지니고 있다.
이 모든 활동에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워 두었다. 일단 잘 하려고 않는다는 것이다. 이 일로 세상에 알려져 인정받고 싶다거나 큰 돈을 번다는 생각이 없으니 모든 시작을 좀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나는 아마추어를 지향한다. 끌리면 시작하고 재미있으면 계속하고 아니면 그만 둔다는 식이다. 꼭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니 마음이 가볍다. 세상에 날고 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 실력으로 그들과 경쟁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나만 즐거우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보니 삶에 생기가 돋는다. 사실은 이게 더 신기하다. 은퇴 후 이런 생활도 즐길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