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용범 Jun 25. 2023

혹시, 지난날이 아쉬우세요?

유퀴즈 200회에 피겨의 여왕 김연아가 출연하는가 보다. 예고편을 보는데 그녀의 한 대목이 탁 걸린다.


*조세호: 선수생활 중 아쉬운 점이 있다면?

*김연아: 아쉬운 점? (잠시 뜸을 들임) 없어요. 정말 숨이 탁 찰 때까지 했었고 그래서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어요.


나는 저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아쉬운 점을 찾곤 한다. 그리고 가끔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느 시절로 가고 싶냐는 질문도 받는다. 그런데 지난날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라면 과거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당연히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최근 결혼을 한 김연아는 만일 딸을 놓더라도 피겨는 시키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스 세계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렇다고 한다. 그녀는 피겨에 대해 조금의 미련이 없을 정도로 쏟아부은 게 맞는 것 같다.

출장 중에 모 지점장과 저녁을 함께 했다. 이 분과는 개인적인 인연도 깊다. 과장 시절 내가 채용 관련 일을 했으니 알고 지낸 지도 거의 20년이다. 그분이 나에게 했던 말은 대강 이러했다. 현장을 잘 아는 나 같은 사람이 회사의 CEO가 되었다면 지금처럼 영업현장이 어렵지는 않을 거라는 말. 그래도 내가 사업부장 시절엔 본사와 현장 간 소통이 잘 되었다는 등이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사실 나에게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다. 정말이지 다 쏟아내었다고 할 만큼 진이 빠졌던 시간이었다. 차마 떨치지 못해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었던 FC 영업현장을 떠날 수 있었던 건 얄궂게도 코로나 때문이었다. 무너지는 현장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보다 못한 대표이사가 보직을 바꿔준 덕분이다. 은퇴한 지금도  영업을 함께 했던 이들로부터 연락을 받는 걸 보면 그래도 나의 진심이 전해지긴 했었나 보다. 감사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같은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나에겐 언제나 지금이 가장 좋은 시간이다. 과거 아무리 좋고 힘들었던 일이 있었더라도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리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오늘의 일에다 과거와 미래의 일까지 더한다면 아무리 힘센 장사라도 견디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 보고 가는 것은 그럭저럭 할만하다.

김연아가 선수생활을 돌아봤을 때 아쉬움이 없듯이 나 역시 지난 직장생활에 큰 미련이 없다. 다시 한다 해도 그 이상으로 해낼 것 같지가 않아서다. 덕분에 힘들기도 했지만 배우기도 많이 했다. 그래서일까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맞은 지금이 참 좋다. 그래서 편안히 쉬고 있느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다. 늘 분주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대부분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이다. 사실 일이라는 단어가 좀 낯간지럽기도 하다. 그건 놀이에 가까워서다. 그러니 아주 잘 놀고 있는 셈이다. 맨땅에서 무언가를 하나씩 만들어 가는 창조의 놀이 같은 것이다. 가끔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그때도 잘 놀긴 했다. 많이 몰입했던 시간들이었다. 인간은 뭔가에 몰입할 때 가장 빛나는 법이다.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잘 왔다라며 나를 토닥여 주고 싶다. 그런데 그 일의 대부분은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이제 세상의 일들은 한 개인이 잘해서 해낸다는 마음은 점점 옅어진다. 누군가에게 그때 그 일 또는 그 사람이 다가온 건 우연이었고 그것으로 내 인생의 물줄기는 생각도 않게 이렇게 흘러왔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어머님께 하면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그게 다 부처님 덕분이다.” 나무 불법승

작가의 이전글 내가 세운 디자인 원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