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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Jan 12. 2021

060.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최근 눈이 내린  기온이 영하 10 아래로 떨어지다 보니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세탁기를 돌리지 말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대략 난감해하는 아내에게 코인세탁방에 가자고 했더니 빨랫감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부담스러운지 그냥 손빨래를 하겠다고 한다. 나는 경험 삼아 가보자며 아내를 부추겨 함께 빨랫감을 챙겨 들고 나왔다. 빨래하러 간다면  아낙들이 머리에 빨랫감을 이고 냇가에 가는 모습이 연상되는데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와서는 동전을 넣고 세탁기 앞에 기다리고 있으니 묘하게  시절 풍경들과 대조가 된다. 어른들이 세상  편해졌다는 말씀이 나올 만도 하다.

지난 주말에는 식기세척기를 사러 갔는데 대용량과 작은 크기의 것을 두고 고민하다 일단 대용량을 선택하고는 결제를 하고 나왔다.     알아보니 아무래도 작은 것이  유용할  같았고 아직 배송 설치 전이라 제품 교환과 일부 환불을 받으러 다시 매장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이제는 설거지도 기계에 맡기면 되는 세상이니  편해졌다는 말을 아내와 주고받으며 왔다.

가스레인지에서 라면을 하나 끓일 때도 가끔 생각나는 어린 시절 장면이 있다. 부엌 연탄불 위에 양은 냄비를 올려놓고는 침을 삼켜가며 라면이 끓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연탄은 보통 아궁이에 2단으로 쌓는데 아래에는 불이 붙은 연탄을 위에는  연탄을 넣는다. 연탄의 교체는  타버린 아래 연탄재를 끄집어낸  불붙은 위의 연탄은 아래로 보내고  위에 다시  연탄을 넣는 순환식으로 한다. 만일 교체 시간을 놓쳐  연탄불이 모두 꺼지기라도 하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는데 연탄에 불을 붙이려면 신문지를 태워 눈물 콧물을 꽤나 흘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연탄은 불이  붙지 않는다. 당시에는 연탄불 꺼트리지 말라는 말을  들으며 보낸 시절이었다. 오늘날에는 가스레인지의 스위치를  돌리기만 해도 파란 불꽃이 바로 일어나니 얼마나 대단한 세상인가 싶다.

어린 시절과 비교해 주변을 돌아보면 정말 살기 편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밥은 전기밥솥이, 빨래는 세탁기가 청소는 청소기가 도와준다. 꼭지만 틀면 더운물 찬물이 선택적으로 나오고 스위치를 누르면 금세 전기불이 들어온다.   겨울에 밖은 영하 10 이하로 떨어져도 보일러는 열심히 실내를 데워 따뜻하게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멀리 호주에 살고 있는 동생과도 얼굴을 보면서 화상통화를   있고 코로나 사태로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회의에 참가한다. 저녁에 새벽 배송을 시키면 아침에 물건이 놓여있고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물만 내리면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가 된다. 주차장에는  자동차가 언제든 이동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라즈니쉬의 ‘배꼽이라는 우화집에 나온 이야기다. 사막의 나라에서  선수들이 국제적인 운동경기에 참여하러  사는 나라의 호텔에 투숙했다. 그들은 욕실의 수도꼭지가 너무도 신기하고 좋았다. 틀기만 하면  귀한 물이 철철 나오니 얼마나 좋아 보였겠는가. 마침내 경기를 마치고 그들은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나중에 보니 그들 방의 수도꼭지를 모두 떼어 갔다고 한다.

수도꼭지 하나면 물이 나올까. 지금 나의 편리한 삶은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역할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이 비록 애덤 스미스가 얘기하듯 개인의 이기심이 본의 아니게 이타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다. 밥상 위의 생선  마리를 보더라도  과정을 역으로 추적해 보면 이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 내가 고등어  마리 잡으러 먼바다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 얼마나 대단한 기적인가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이런 사실은 까맣게 잊은  물은 수도꼭지만 틀면 그냥 나오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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