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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Aug 11. 2023

삶의 의미는 스스로 만드는 것

한반도를 종심으로 관통하는 태풍 칸눈이 지나갔다. 잔뜩 긴장은 했지만 염려한 수준의 피해는 아니었나 보다. 새삼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의 나약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이번 주 강원도 출장 일정이 모두 끝났다. 춘천과 강릉, 원주까지 마치고 나니 어느덧 주말이다.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나의 성향에 이렇듯 출장이 많은 일은 딱 제격이다.


주중에 어머님으로부터 걱정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아버님이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고 하셨다. 게다가 병원도 안 가시겠다고 하고 기존에 드시는 약도 안 먹겠다고 고집하시나 보다. 코로나로 병원 안 가시겠다는 것은 좋으나 약은 드셔야 하는데 우려가 된다. 지난번처럼 응급실에 가야 할 상황이 떠 올라서다.  이유를 들어보니 당신의 마음이 느껴진다. 큰 아들 직장 생활 잘 마쳤고 막내아들 교장 선생 된 것까지 살아생전 좋은 모습은 다 보았으니 이제 그만 죽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나 보다. 형제분들은 다 돌아가셨고 친했던 벗들도 하나 둘 사라지니 점점 마음이 약해 지시나 보다.

그 시절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랬겠지만 내 아버님의 인생 역경도 만만치 않은 분이셨다.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가장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었다. 가끔 추억 삼아 이야기하시는 것이 전쟁 당시 신문을 팔려고 허리춤에 들고 달리는데 처음에는 차마 “신문”이라는 말이 안 나와 냅다 뛰기만 하셨단다. 그래도 야간학교를 다니며 겨우겨우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건졌다는 게 자랑이시다. 하지만 돈벌이 때문에 거의 출석 반, 결석 반이었나 보다. 학교에서 제대로 배운 게 없다는 말씀을 곧잘 하신다.


한 인간이 세상에 내던져지는 이유는 정말 모를 일이다. 내 아버님이 그 시대에 태어나고 싶어 나신 것도 아니고, 그런 집안 환경이 보편적인 상황도 아니었지만 주어진 운명의 패를 들고 인생이란 게임을 잘 개척하신 것 같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에게 삶의 의미란 원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의미 없는 삶을 힘겨워 하는 것이 또한 인간인지라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낸다. 내 아버님은 인생의 의미를 어떻게 만드셨을까? 아니 의미를 생각하기 전에 일찌감치 먹고살기에 바빴던 퍽이나 고단한 삶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중년 이후엔 사업체가 안정되었으나 사망까지 갈 뻔한 교통사고도 세 번이나 겪으셨고 암 수술까지 버텨내신 걸 보면 여태 살아계신 게 기적 같은 분이다. 그런 아버님이 드셔야 할 약까지 안 먹겠다고 하니 염려가 안 될 수 없다. 게임으로 말하면 당신의 미션을 이제 완수했다는 뜻이겠지.

영화 국제시장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숱한 어려움을 거쳐 이제 노인이 된 주인공 황정민이 전쟁통에 헤어진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했던 말.


“아부지, 이만하면 저 잘 살았지예. 그런데, 그런데 저 진짜 힘들었거든예.”


어쩌면 내 아버님도 당신이 중학교 때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를 저승에서 만나면 저런 말씀을 하지 않았을까. 없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장이 없는 한 집안의 무게를 어린 나이에 고스란히 짊어졌어야 했던 그 운명. 아무래도 주말에 부산에 다시 내려가야겠다. 이번에는 정말이지 두 분을 모시고 가까운 여행이라도 좀 다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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