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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Aug 17. 2023

그 시절을 돌아보니

1.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환경들(1980년대)


개인에게 있어 신체적, 정신적 독립성이 느껴질 때가 청년기일 것이다. 나의 청년기인 1980년대의 그 시절을 회고해 본다.

80년대는 컬러 TV 보급으로 이전에 비해 훨씬 다채로운 세상으로 시작되었다. 흑백에 익숙해있다 컬러를 보는 느낌은 많이 새로웠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생의 머리 스타일은 중학생보다는 상당히 진보한 스포츠 스타일이었다. 빡빡 머리에서 그 정도로 머리 길러도 된다는 게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학생 교복과 두발 자율화가 이루어졌다. 콧수염 김동길 교수의 누님인 김옥길 씨가 문교부 장관일 때 단행되었다. 어른들은 정부가 청소년 탈선을 조장하는 쓸데없는 짓 한다고 반대가 심했다. 그런데 막상 시행해 보니 그것보다는 모두가 같은 교복을 입고 있을 때는 안 보이던 각자의 집안 형편이 교복 자율화, 두발 자율화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이키와 프로스펙스를 신을 수 있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유사품인 나이스나 프로스포츠를 신어야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가방도 옷도, 운동화도 하나하나가 차별화되어갔다.

매스컴에서는 대학생 데모에 연일 부정적인 기사들을 쏟아냈다. 고등학생, 대학생을 둔 부모들은 자식들이 데모할까 봐 늘 우려하던 시절이었다. 5공화국이 열리고 대학은 늘 전투경찰이 정문 앞에 상주하고 있었다. 은색 헬멧에 청바지를 입은 시위 진압 경찰을 백골단이라고 불렀는데 평시에는 대학생처럼 캠퍼스에 잠입해 학생들의 동정을 살피다가 시위 진압 때는 앞장서서 시위 주동자들을 색출해 냈다.


개봉작 비디오를 틀어주는 지하 다방들이 여럿 있었다. 콜라 한 잔 가격에 당시 개봉작인 천녀유혼, 영웅 본색 등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당구장은 대학생들의 아지트였다. 수업까지 빠지고 당구에 심취한 학생들도 꽤 많았다. 586세대들이 모두 민주화 투사 같고 시대정신을 가진 것 같지만 내가 볼 땐 아니다. 대부분은 자기 앞가림하느라 취업과 자격증 준비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래도 취업 여건은 좋았다. 국민연금 관리공단, 건강보험공단 등 공기업들이 연이어 설립되어 직원들을 채용했었고 한국통신공사(현 KT)도 많은 인력을 뽑던 시절이다. 경제는 단군이래 최고의 호황이었다.

88년도 올림픽을 유치했는데 외국 손님들 온다고 전 국민의 손님맞이 준비를 시키던 때였다. 아침이면 MBC 민병철 영어가 흘러나오고 택시 기사에게 영어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가장 잘 했던 일이라 여겨지는 건 전국의 화장실을 대대적으로 개보수 한 것이다. 우리나라 화장실이 재래식에서 수세식으로 일거에 바뀐 계기가 되었다. 경제는 좋았지만 시위는 일상이었다. 간접방식의 대통령 선거를 직접선거로 바꾸라는 이슈가 제일 컸다. 결국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이를 수용하면서 시위 이슈는 가라앉았지만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 김영삼의 분열로 대통령 직선제의  열매는 노태우 후보가 챙겼다. 88올림픽은 해외여행자 유화를 불러왔다. 그전에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만 가는 것이 해외여행이었다. 대학생들의 배낭여행이 붐을 일으킨 시대였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외교 성과는 탁월했다. 대만을 버리고 중국과 수교 관계를 맺었고 소련 해체 후 러시아와 동유럽,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도 외교가 확대되었다.

삼성, LG전자 외에 삼보컴퓨터, 현주 컴퓨터 등 개인용 조립 PC가 보급되었고 하이텔, 유니텔, 천리안 등의 PC 통신 서비스로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세상을 처음 접했다.  


2. 나에게 미친 영향


민주화 시위가 끊이지 않던 시기에 20대를 보냈다. 대학시절 ROTC로 시위 참여는 안 했지만 사회 분위기는 권위주의 시대를 벗어나 서서히 자유와 민주의 시대로 넘어가는 것을 직접 보았다. 최소한 자유와 민주의 가치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님은 알고 있다. MS-DOS와 개인용 컴퓨터, PC 통신을 처음으로 접한 세대다 보니 지금의 노트북, 태블릿, 인터넷, 스마트폰에 익숙한 편이다. 귀찮아서 안 하는 거지 마음먹으면 새로운 앱이나 프로그램에 적응은 빠른 편이다. 다만 SNS는 여전히 어색한데 어릴 적 유교적, 권위주의적 분위기에서의 성장 환경은 지나친 자기 홍보에 거부감이 든다. 여행 자유화를 처음 경험한 세대다 보니 외국에 대한 동경도 실제로 가서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보고 듣는 것도 많아 이전 세대에 비해 사고의 확장성이 커진 면이 있다.


20대 때 경험한 80년대 대한민국의 시대 전환기적 경험은 개인적으로 큰 자산이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익숙한 것도 그 영향일 것이다. 10대와 20대를 돌아보니 지금의 나를 좀 더 이해하게 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나의 과거를 통해 현재를 재조명하는 계기로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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