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늦은 시간까지 소주를 마셨다. 올해가 교장 첫 발령이라 일에 대한 왕성한 의욕도 느껴진다. 나는 학교에서 동생이 관리자의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하는지 궁금해졌다. 일단 조직의 성격이 기업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교사라는 직군은 성과에 따른 보상을 하거나 인사상 제재하는 데 여러모로 한계가 있다. 교사 개인에게는 직업적 안정성일 수도 있지만 관리자에게는 이것도 꽤나 머리 아픈 조건이다. 게다가 학창 시절 워낙 공부 잘했던 사람들이라 자존심도 세고 언변과 논리력이 뛰어나다. 성별로 보면 여성들이 많은 것도 조직의 특이한 면이다. 그냥 인사 평점으로 관리하지 않겠나 싶지만 승진 의욕이 없는 교사들도 꽤 있나 보다. 그렇다고 기업들처럼 경영의 어려움을 들어 구조조정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동생도 그런 교육계의 특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여기에 교사들의 세대 갈등도 언급했다. 사범대 졸업하면 전원 교사가 되었던 91년 이전 세대와 임용시험이라는 높은 허들을 넘은 젊은 세대의 간격은 분명 존재한다. 게다가 교사의 정년은 만 62세이다. 이 때문에 승진에서 밀려난 나이 든 교사들은 무탈하게 평교사로 정년을 맞으려는 성향도 있다.
결국 학교의 기피 업무나 자질구레한 일들은 젊은 교사들에게 몰리는데 그들에겐 이게 또 불만인가 보다. 같은 교사 직급이고 돈은 나이 든 교사들이 많이 받는데 일은 더 많이 한다는 불만일 테지. 이런 환경에서 관리자는 대체 무엇으로 동기부여를 하는지 궁금했다. 성과에 대해 보너스를 두둑이 주는 구조도 아니고 그렇다고 좌천이나 해고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조직이라면 흔한 말로 돈줄과 목줄로 직원을 관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의 물음에 동생은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학교는 대체 누구를 위한 기관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아니면 질문을 약간 뒤틀어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로 바꿔보자. 내가 아는 주인을 알아보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것이 사라졌을 때 가장 답답한 사람이 주인이라는 것이다. 학교라는 제도가 없어진다면 세상의 누가 가장 답답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학생보다는 교사들일 것 같다. 교사들에 비해 학생들은 학교 말고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나의 궁금증에 대해 동생의 답변은 명확했다. 이제 학교는 교과의 비중보다는 개인이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한 곳이라고 했다. 지식은 인강이나 학원, 구글링이나 AI에게 물으면 금방 나오지만 공동체에서 조화롭게 사는 법을 배우려면 학교라는 곳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 학교라는 조직도 구성원들이 많이 다양해졌다. 교사도 정규직, 비정규직이 있고 시설관리하는 인원들, 대체직 등 말만 들어도 사회의 작은 축소판 같다.
나도 사람들을 다독이며 조직의 목표를 추구해 봤지만 학교 조직관리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사안일을 추구하면 그만큼 편한 조직도 없겠다. 오후 4시에 퇴근하고 긴 방학의 여유도 누린다. 평균 연봉은 8,000-9,000만 원 수준이다.(구글 바드 인용). 그래도 교사가 교육에 대한 직업적 사명감을 지니고 학생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들면 해야할 게 정말 많은 조직이란다. 하지만 그런 사명감은 강제성이 없다.
학교는 왜 필요할까? 아이들이 공동체 생활을 사전 체험하고 연습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학교의 주인은 누구일까? 그것이 사라지면 가장 답답한 사람들, 즉 교사들이다. 19세기 공장 노동자를 대량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 제도를 21세기에 대체할 만한 대안은 없는 것일까? 아무래도 주인들의 반대가 무척 심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