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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Sep 18. 2023

말기암 판정을 받은 큰 처남

큰 처남의 췌장암 판정

아내의 큰 오빠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오랜 공직 생활을 떠난 지 불과 5년 된 시점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죽음에는 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들의 죽음이 있다고 했다. 그들의 죽음은 뉴스에 매일 질리도록 나오지만 그저 덤덤할 뿐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너의 죽음은 언제나 깊은 슬픔으로 다가온다. 지금 형님은 조금씩 죽음의 문턱에 다가서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상황들이 너무 당황스럽다. 울산에 사는 형님은 일본으로의 부부여행을 앞두고 소화가 안된다고 했고, 병원에서도 이상했는지 MRI를 찍었는데 급히 서울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시킨 것이다. 그게 불과 3주 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나 역시 죽음이란 게 얼마나 허망하게 다가올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불과 7초 상간에 벌어진 자동차 전복사고를 당하면서 인생은 언제 죽더라도 하등 이상하지 않음을 늘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그 후로도 부정맥과 담낭제거 때문에 수술대에 두 번 누웠던 경험은 다시금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었다.


큰 처남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을 고려해 일찌감치 9급 지방공무원으로 나서신 분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도청에 재직하며 창원에 유치된 F3자동차 경주대회를 치르기 위해 실무자로 일하시던 모습이다. 자정 넘어 귀가해서 잠시 눈 붙이고 다시 출근하는 형님을 통해 공무원 생활도 저런 삶이 있구나 싶었다. 그 성실함을 인정받으셨는지 그 후로도 꾸준히 승진하시어 최종적으로 부이사관으로 공직생활을 마치셨다. 은퇴 후 연금도 나오겠다 본인도 부담 없는 은퇴생활을 즐기는가 싶었는데 이내 취업이 되어 지금껏 현역으로 일을 하신다. 이번 암판정이 더욱 기가 막힌 건 12월에 딸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어서다. 불과 3개월 정도라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냐고 병원 측에 알아보니 장담 못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가족들로서는 그저 가슴이 먹먹할 지경이다.

죽음을 맞는 마음이 이랬으면..

최근 아버님의 병원동행과 큰처남의 사례를 보며 또 한 번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모두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다만 시기와 방법을 달리할 뿐이다. 아버님은 오줌주머니 차고 매일 한 움큼씩 드시는 약이 질리셨는지 이제 좋은 모습 다 보았으니 그만 죽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반면 큰 처남은 살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전해 들었다. 살고 싶다고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죽고 싶다고 죽어지는 것도 아닌 게 죽음이다. 같은 죽음을 바라보는 입장이 이렇게도 다르다.


장차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맞을 것인가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를 보면 된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맞고 싶은가? 적어도 마지막 순간에는 미소 지으며 “모든 게 고마웠다. 덕분에 아쉬움 없이 잘 살았고 재미있고 행복했었다”는 말을 했으면 한다. 인공호흡기를 댄다거나 목구명에 구멍을 뚫어 죽을 공급받는 모습은 정말 싫다. 그래서 사전연명치료의향서를 일찌감치 제출했다. 적어도 내 죽음이 임박하면 연명치료를 않고 순순히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죽음을 직시하며 사는 삶은 하루의 의미가 정말 다르다. 살아있음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일인가를 알게 된다. 죽음을 통해 자신의 한계성을 인정하며 영적 성장과 마음의 평안을 얻는 일, 소중한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일,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성장하는 모습 그리고 어떤 활동이든 조그만 경제적 활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은퇴를 하고 보니 이것은 다른 가치들보다는 후순위로 두게 된다.


나 스스로 죽음에 대한 예방주사를 세게 맞은 탓인지 죽음이 다가와도 어쩐지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 같다. 지금껏 웬만한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보았고 주변에 맞추기보다는 내가 만족할 삶을 지향했다. 이런 평탄한 삶이 어머님의 매일 아침 기도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나의 삶에 감사함이 크다.


내가 아는 큰 처남은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하신 분이다. 하지만 그건 밖으로 드러난 모습이고 나머지는 어떠셨는지 잘 모르겠다. 그건 오직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다. 인생은 참으로 허망하고 우리는 당장 내일 일도 모른다. 형님이 비록 말기암이긴 하나 좀 오래 버티셨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최소한 고이 키운 딸의 손을 잡고 아빠가 결혼식 행진은 하셔야 하지 않겠는가. 부디 그러시기를. 그리고 나에게 또 한 번 다짐하는 말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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