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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Oct 18. 2023

권위적인 또는 권위있는

초급 장교들 사이에 농담처럼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대대 전술 훈련을 하는데 한 소대장이 소대원을 이끌고 야간에 목표한 고지에 올라야 한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마침내 소대원 모두가 한 명의 낙오도 없이 고지 정상에 섰다. 모두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퍼져 있는데 소대장이 지도를 한참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한 마디 한다. “이 고지가 아닌가벼.” 소대원들은 기가 찰 노릇이다. 소대장은 다시 소대원을 이끌고 정해진 목표 고지를 오르기 위해 산을 내려간다. 어둠 속을 헤치며 기진맥진 상태로 목표한 산을 드디어 올랐다. 소대원들은 거의 초주검 상태다. 그런데 소대장은 또다시 지도를 보며 이리저리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그러면서 하는 말. “아까 그 고지가 맞는가벼”       


짧은 이야기 속에 무능한 리더의 모습을 한 마디로 압축한 예이다. 리더는 이끄는 자이다. 그래서 일정한 권한도 지닌다. 하지만 권한과 권위는 다르다. 권한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권위는 남이 세워준다. 자신의 팔로워들이 인정해야만 권위가 선다. 권한만 있고 권위가 없는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활력이 없고 수동적이다.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구성원들 간에는 험담과 불신이 가득하고 전체적으로 패배의식이 자리 잡는다. 리더의 권위는 어떻게 세워지는 것일까? 무엇보다 팔로워들보다는 나은 구석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이 고지가 아닌가벼"라는 말을 할 수준은 아니어야 한다. 하지만 리더도 인간이다.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니 스스로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귀를 열어 두어야 한다.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외부 영입 부사장님으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은 일이 있었다. 어떤 사안으로 보고를 들어갔는데  "내가 정말 몰라서 그러는데"라며 운을 떼고 몇 가지 물어보셨다. 여태껏 모셨던 상사들은 자신은 모든 걸 안다는 식으로 직원들을 대했던 터라 이 말이 더 신선하게 들렸는지 모른다. 그 후로 그분의 일하시는 모습을 보니 직원들과의 소통에 스스럼이 없었다. 게다가 그분은 보험영업에 대한 오랜 경험과 경륜으로 확고한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구축하고 계신 분이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권위가 느껴졌다.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송길영의 말을 빌면 권위는 경험과 경륜, 전문성에서 나오고 그것을 남이 인정해 줄 때 세워진다고 한다.


권위적이란 말은 좋은 의미가 아니다. 자신의 자질은 제쳐두고 오직 포지션에 대해 팔로워들의 존경을 강요하는 골치 아픈 존재라는 뜻이다. 권위적인 사람에게 없는 것이 권위이다. 그 후로 나는 그런 상사를 만난 적이 없다. 어찌 보면 매우 희귀한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전문성은 분명 있지만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고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 리더를 팔로워들은 따르고 그에게 권위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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