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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Oct 25. 2023

새가 알에서 깨어나려 한다

그와 나는 한 살 차이로 그가 위다. 정규직으로 은퇴한 나와 달리 그는 영업실적만 유지되면 계속 근무가 보장되는 사업가형 지점장이다. 그의 지점이 출장지로 잡힐 때면 그를 볼 생각에 약간 설레는 면도 있다. 함께 한 세월만큼 서로가 지내온 이력과 고충을 이해하고 있음이다. 어제는 같이 저녁이나 할 겸 일부러 오후 늦게 지점을 방문했다. 우리의 대화는 주로 현재 일어나는 일들이다. 나는 이런 대화 시점이 좋다. 아무리 과거의 인연이라지만 대화의 내용이 과거에 머문다면 소재가 빈약하고 다음 만남에 회의가 든다. 그는 나를 역까지 바래다주며 이런 말을 남겼다. “부장님, 이제 우리 나이는 다 끝난 나이에요. 좋은 건 후배들에게 밀어주고 뒷전에 앉아 있어야 해요.”  

돌아오는 기차간에서 마지막 그의 말이 생각난다. 듣고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회사 안에서의 이야기다. 그도 나처럼 은퇴를 하고 자신이 근무했던 회사를 달라진 관점에서 본다면 좀 다른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으니까. 30년 넘게 생활의 큰 비중을 두고 보냈던 회사였지만 이렇듯 나와서 보니 그곳은 참으로 작은 세상이었다. 소설 데미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새가 알에서 깨어나려 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에게 직장은 편안하고 안온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알과 같은 세계였다.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그 알 속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불철주야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알의 세계는 한시적인 곳이다. 새는 언젠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다. 새가 껍질 깨는 것을 힘들어하기에 알껍질을 대신 깨어 꺼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새는 스스로 깨고 나온 다른 새와 달리 비실비실 환경에 적응을 못하더니 이내 죽고 말았다고 한다. 알을 깨는 작업은 스스로 해야지 안타깝다고 도와줄 일이 아닌 것이다.

아직 계약직으로 근무하고는 있지만 은퇴 후 지금의 삶은 알에서 갓 깨어나 적응하는 과정 같다. 여전히  껍질 속의 세상에 미련을 두고 알 속의 평온함을 그리는 새는 혼자 날지 못한다. 그나마 나에게 그런 감정은 없으니 다행이다. 나는 것도 날갯짓을 연습해야 날 수 있다. 스스로 날지 못하는 새는 천적에게 잡아먹히거나 결국 떨어져 죽고 말 것이다. 자, 지금은 유유히 날며 자유로운 비행을 즐길 때이다. 얼마 만에 나온 바깥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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