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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Jan 15. 2021

064. 일이 되어가는 재미

일에는 루틴 한 일과 프로젝트성 일이 있다. 루틴 한 일은 일의 성격이 반복적이기에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숙달이 되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프로젝트성 일은 매번 일의 성격이 다르고 그 일을 둘러싼 주변 환경도 변하기에 난이도가 높고 새로운 기획력과 실행력이 필요하다. 일의 난이도와 보상 수준에서 루틴 한 일에 비해 프로젝트성 일이 좀 더 난이도도 높고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경향이 있다.

한창 일을 배울 때 나의 옛 상사분은 나에게 일을 참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셨는데 어떤 보고에 접하면 이 일이 루틴 한 일인지 아니면 프로젝트성 일인지를 구분하셨다. 루틴 한 일이라면 어느 정도 위임을 했지만 프로젝트성 일에는 세밀한 개입을 통해 일을 진행하는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제기하셨다. 좋은 상사분을 만나 일을 단단하게 배운덕에 그 후로 일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들었던 것 같다.

루틴형 일의 특성은 일의 결과를 보통 양으로 평가한다. 반복적인 일이 되다 보니 같은 벽돌을 단위 시간에 얼마나 많이 찍어내는가가 그 일을 잘하고 못하고의 판단기준이 된다. 이런 종류의 일은 보통 매뉴얼화가 가능하고 어느 누가 이 일을 맡게 되더라도 매뉴얼의 프로세스를 밟아가면 거의 동일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게 된다. 노동력의 공급을 보더라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인력들은 시장에 널려있다. 시장원리상 공급이 많다는 것은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급여 수준이 낮다는 말이다. 반면에 프로젝트성 일은 매번 결과물의 성격이 다르다. 과거의 패턴을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결과물이 과거와 같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일은 어느 정도 창의적인 기획력이 담보되어야 한다. 게다가 다양한 사람들의 조화를 이끌어 내는 리더십과 기일 내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자원과 시간을 적절히 통제하는 관리능력도 필요하다. 시장에 이런 종류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드문 편이고 노동 가격도 높게 형성되는 면이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로 대체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업이나 직장의 종류에 따라 루틴형의 일을 하면서도 보수는 많이 받는 경우도 있다. 대개 연공서열식으로 이루어진 직장의 경우인데 일의 결과와 무관하게 근무연한이 오래될수록 급여가 높아지는 특성이 있다. 이런 종류의 일은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일이다. 공무원이나 군대 조직처럼 쉽게 흔들려서는 안 되는 일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도 중앙부처의 공무원들처럼 상당한 기획력을 동반한 프로젝트성 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일선 동사무소에서 민원서류를 발급하는 공무원들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일의 성격과는 무관하게 보상의 평준화가 이루어진 곳이다. 이들에게 일에 대한 보상은 소득이 아니라 승진이라고 해야겠다.

옛 상사의 말을 빌면 일을 잘한다는 것은 프로젝트성 일을 루틴형으로 바꾸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로봇이나 사무자동화를 동원하든 매뉴얼을 만들어 누구나 그 일을 할 수 있게끔 만들든 그 세팅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로젝트성 일을 맡은 사람은 세팅이 끝나면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마치 유목민이 마을 하나를 만들어 놓고 농경민을 정착시킨 후 새로운 땅을 개척하러 가는 모습이다.

요즘 일에 대해 가지는 생각이 있다. 일이란 루틴형으로만 이루어진 것도 없고 프로젝트성으로만 이루어진 것도 없다는 것이다. 루틴형이라고 해도 창의적인 개선 의지로 좀 더 효율적으로 해낼 수도 있고, 프로젝트성 일이라 해도 캐비닛 안의 오래된 자료를 참고해 그대로 베껴하기도 한다. 다만 일을 대하는 마음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나의 경우엔 반복적인 일보다는 새롭고 세팅하는 일에 좀 더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씩 완성해가는 것에 재미를 느끼다가 어느 정도 안정되어 관리 모드로 전환되면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는 자신을 보곤 한다. 나에게 일은 점점 되어가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굳이 피곤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한데 어쩌면 이것도 천성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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