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후반에 접어드니 누군가를 부러운 눈으로 보는 경우가 드물어진다. 이 나이가 되면 너는 너의 삶, 나는 나의 삶이라고 분리해서 보는 성향이 고착되는 것 같다. 최근 들어 누군가를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던가 돌아보면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했던 사람들에게 잠시 그런 감정을 가졌던 것 같다. 그것 말고는 딱히 부러움의 대상이 없었다.
엊그제 아내와 산책하는데 복권방이 보였고 아내의 제안으로 두 장의 로또를 구입했다. 아내가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그 돈으로 뭐 할 거냐고 묻는데 정말 별생각이 없었다. 당첨될 거라고 구입한 게 아니어서다. 그래도 1등이면 실수령액이 꽤 될 터인데 제대로 그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없어서인지 가늠이 안 되었다.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아내는 그냥 가볍게 이야기하면 될 것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한다며 어이없어 했다. 이것도 성향 탓인지 그만한 돈을 벌 궁리를 하는 건 하겠는데 갑자기 돈벼락 맞는 상상은 잘 안된다. 그래서 평소에도 복권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가 보다.
2023년 로또 1등 당첨자들을 찾아보니 모두 120명이라고 한다. 이 중 1명이 1등이었던 경우는 한 번이었고 수령액은 47억 원이었다. 나머지는 1등의 당첨금을 나누어야 했던 복수의 당첨자들이었다. 그들이 가졌던 실수령액은 평균 7억 7,000만 원 정도였으니 생각보다 많지가 않다. 현실적으로 이 정도 금액이면 서울의 아파트 하나 구입하기도 모자란 형편이니 이제 로또로 인생역전이란 말도 옛말인가 보다.
내친김에 당첨금 10억 원이 통장으로 들어왔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 쓸지 상상해 보았다. 대개 자신의 땀이 들어가지 않은 돈은 휘발성이 강하니 내 것으로 만드는 숙성기간이 좀 필요하다. 그냥 3개월 정도 통장에 가만히 내버려 두면 된다. 그래야 남의 돈 같지 않고 비로소 내 것 같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지났으면 이제 돈을 운용하거나 사용해 본다. 제일 먼저 빚이 있다면 그것부터 정리하겠지만 없다면 자산 배분의 7:3의 원칙을 적용하겠다. 즉, 70%는 원금 손실이 없는 안정자산에 두고 30%는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투자자산에 배분한다. 목표수익률은 정기예금금리 + 3~5% 정도로 할 것 같다. 이것은 돈을 운용한다는 차원이고 이제는 돈을 쓴다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역시 7:3 정도의 비율이다. 70% 정도는 의미 있는 일에 30%는 재미난 일에 쓸 것 같다. 100% 모두 유흥비나 재미난 일에 쓴다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아서다. 그리고 좀 길게 돈 쓰는 재미를 누리기 위해 한 번에 다 쓰지 않고 매월 500만 원씩 총 200개월 동안 나눠 쓰는 걸로 하겠다. 그래서 매월 300만. 원 정도는 기부나 후원 같은 곳에 사용하고 200만 원은 나의 재미있는 삶을 위해 쓴다. 지인들에게 밥이나 술도 사고 문화활동도 즐기면서 여행도 떠날 것 같다. 이것을 200개월 동안 할 수만 있다면 내 나이가 74세가 된다. 아이들이나 가족들에게 떡 나눠주듯 그냥 주지는 않을 것 같다. 설령 준다고 해도 목돈으로는 주지 않고 한 달의 가용 범위 내에서 쪼개어 주겠다. 이리 보면 역시 나는 월급쟁이 마인드인가 보다.
로또 당첨을 가정해 상상해 본 그림이지만 한편으론 지금의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의미 있는 일에 쓰는 돈의 규모가 차이 나는 정도이다. 이렇게 내 마음대로 로또 당첨금을 사용하려면 당첨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아내에게는 알려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