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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호 Sep 13. 2020

의대생과 환자의 첫 만남

의대 본과 3학년부터는 강의실에 앉아서 듣는 수업 대신 병원을 빨빨거리며 실습을 하게 된다. 실습에는 다양한 목적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예비 의사인 의대생을 환자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교수님은 학생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다양한 과정을 만들어서 자꾸만 학생을 환자 앞에 갖다 놓는다. 다짜고짜 환자 앞에 놓인 학생은 자신의 부족함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최선을 다해 환자를 만족시키려 노력한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어설프다고 욕도 먹어보고, 교수님한테 지금까지 뭘 배운 거냐고 혼도 나면서 열심히 환자를 만나다 보면 어느새 환자를 대하는 것이 편해지게 된다.


물론 환자 앞에 던져지기 전에 진료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진료는 우선 환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문진'과 손이나 기구를 이용해서 환자를 검사하는 '진찰'을 한 뒤, 의심되는 병을 진단할 '검사'와 함께 약이나 수술 등의 '치료'를 처방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과정 중 검사와 치료는 학생의 영역은 아니고, 학생은 주로 문진과 진찰을 통해 환자와 상호작용하는 연습을 한다. 이후 교수님의 진료 후, 교수님이 의심하는 질환과 처방한 검사 및 치료를 보고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 비교하면서 배운 지식을 실전에 적용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고작 문진과 진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학생 입장에서 처음으로 환자를 대하게 되면 문진과 진찰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우선 마음가짐의 문제가 있다. 처음에는 보통 '나는 학생인데... 의사가 아닌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환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 생각은 진료를 소극적으로 만든다. 꼭 필요한 질문을 못하게 되고, 환자의 질문에 어설프게 답을 해줬다가 교수님 진료에 방해될까 봐 대충 얼버무리게 되며, 환자의 몸에 손을 대는 게 왠지 두려워 필수적인 신체 진찰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학생을 포함하여 교수님과 병원에 대한 환자의 신뢰를 잃게 만든다. 


두 번째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문진과 진찰을 배운 대로 정석으로 하려면 보통 2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는 바쁜 병원에서는 너무 긴 시간이다. 입원 환자는 입원하는 과정에서 이미 다른 의사에게 이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학생이 쭈뼛쭈뼛 찾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하자고 하면 비협조적일 수밖에 없다. 외래 환자는 보통 의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한데 어리숙한 학생이 하나부터 열까지 엉뚱한 것만 물어보고 있으면 빨리 교수님을 보게 해달라고 재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환자의 부정적인 태도를 경험하고 나면 다음 진료에서도 소극적인 태도가 나오기 쉽다.


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환자에게 당당하게 학생인 걸 밝히고 협조를 구하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OOO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는 학생 박시호입니다. 교수님 지시로 몇 가지 여쭈어보고 진찰을 하려는데 괜찮으실까요?" 정중하게 요청하면 이를 거절하는 환자는 거의 없다. 이후 진료 과정에서도 어설프다고 욕하지 않고 오히려 괜찮다고 웃어주며, 버벅대면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크게 불만을 표하지 않으며,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을 하지도 않는다. 긍정적인 진료를 몇 변 경험하고 나면 진료 실력이 상승하는 것은 물론, 환자를 만나는 게 즐겁고 설레는 일로 변하게 된다.


최근 코로나 및 투쟁으로 인하여 의대생들의 병원 실습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감염 위험으로 인하여 올해 초부터 의대생과 환자의 접촉을 제한해온 데다가, 근래에는 의대생의 투쟁으로 인하여 병원 실습을 포함한 대부분의 교육 과정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일이 어떻게 해결되든 간에, 환자와 대화나 접촉이 어색한 의사가 탄생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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