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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호 Aug 23. 2020

바이러스가 바꾼 인간 공존의 진리

거리 두기 시대가 온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태초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인간 공존에 대한 불변의 진리다. 고대의 인간은 험난한 자연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지 위해 뭉쳤다. 그 결과 인간보다 신체적으로 월등히 강한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 지배자가 된 이후에도 인간은 여전히 뭉쳐 있었다. 더 편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삶은 힘들고 위태로워 생존 이상의 발전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함께 사는 삶은 효율적이었고,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었다. 농부는 농사만을 지었고, 사냥꾼은 사냥만을 했다. 누구든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수행했고, 결과물은 모두가 나누어 가졌다. 더 많이 뭉칠수록 능률이 올라 누군가는 일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은 모두의 삶을 지금보다 발전하게 만드는 데에 시간을 썼다.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고, 질서를 유지하는 규칙을 만들고, 행복도를 올리는 문화를 만들어 냈다. 뭉침의 위대함을 깨달은 인간은 계속해서 뭉쳐 나갔다. 그 결과 수많은 국가가 탄생했고, 더 나아가 국가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세계화 시대에 이르렀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는 그랬다.


2019년 말부터 퍼지기 시작한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수천 년간 지속되어온 인간 생존의 진리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번 바이러스만 그런 게 아니라 바이러스는 원래 인간이 뭉칠수록 더 위험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인간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쳤던 바이러스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바이러스처럼 인간 사회를 괴롭히기에 최적화된 특징을 가진 바이러스는 없었다. 또한 지금처럼 많은 수의 인간이 지구를 꽉 채우고 밀접하게 교류하며 살았던 적 역시 없었다. 인간이 사상 최대로 뭉친 상태에서 찾아온 사상 최악의 바이러스. 바이러스를 당장 박멸할 방법은 없박멸이 가능한지도 알 수 없었다. 바이러스로 인해 생존에 위협을 느낀 인간은 뭉침을 포기하기로 했다. 국가 사이의 모호해졌던 경계가 다시 뚜렷해졌고, 도시 간 이동이 제한되었으며, 사람 사이에도 교류가 없어졌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하는 인간 공존의 진리가 되었고, 그 빈자리를 '거리 두기'라는 새로운 진리가 채워나가게 되었다.


새로운 진리인 거리 두기는 아직 완전히 자리잡지 못했지만,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인간 공존의 양상이 급격하게 바뀌는 과도기인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만큼 변화가 주는 고통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인간이 수천 년간 이룩해온 문명과 시스템은 모두 뭉침을 전제로 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미 서로 가깝게 지어져 있는 수많은 건물과 시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진행하는 다양한 행사와 축제, 대면이 익숙하고 당연한 의사소통 방식 등 인간 사회의 모든 요소는 거리 두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 완성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강제되는 거리 두기는 지금까지 인간이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행위이다. 실제로 세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2020년 전 세계 수많은 나라의 경제성장은 마이너스가 예상된다. 경제가 역행한다는 것은 삶이 피폐해진다는 뜻이다.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사회를 탓하며 시스템에 저항하는 사람도 많아진다. 또한 거리 두기는 경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까지 약하게 만든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으로 망가져버린 정신 속에는 긍정적인 유대감이 사라지고, 대신 의심이 자리 잡는다. 정신이 무너져버린 인간은 무력해지고, 집단의 사고가 함께 마비된다면 치명적인 반사회적 집단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반면, 거리 두기에 빠르게 적응하여 가능성을 보여준 경우도 있다. 온라인을 통해 기존의 수많은 대면 행위를 비대면으로 가능하게 만들어 온택트가 그것이다. 거리 두기 전에는 음식 주문과 인터넷 쇼핑에 한정되었던 언택트가, 거리 두기 이후 온라인 비대면 수요가 급증하며 온택트로 진화하였다. 비대면에 익숙한 IT회사에서 우선적으로 재택근무가 시작됐고, 역시 비대면에 익숙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학기가 가장 먼저 시작됐다. 이후 온택트 관련 기술이 곳곳에 빠르게 도입되며 온택트의 문턱은 점점 낮아졌다. 기존에 대면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러 상황에서 비대면 전환 가능성에 대한 고찰이 이뤄졌고, 이제는 '뉴 노말'이라는 단어가 어색할 정도로 사회 전반에서 온택트 방식을 당연하게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온택트가 거리 두기 시대의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커닝, 해킹 등의 온라인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관련 법과 규제의 정비도 필요하다. 또한 절대 온택트로 대체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리 큰 화면과 좋은 스피커를 사용해도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느낌을 능가할 수는 없고, 온택트의 여러 과정 속에는 크고 작은 직접 대면의 과정있을 수밖에 없다. 거리 두기 시대라 해도 어떤 분야에서는 뭉침의 진리가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인간은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와 '거리 두기', 서로 완전히 반대인 인간 공존의 두 가지 진리 중 단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답은 명확하다. 거리 두기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금의 바이러스를 막아낼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막아낸다 하더라도 비슷한 바이러스의 습격이 반복될 수 있다. 거리 두기는 일시적으로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최종적으로는 인간의 생존 확률을 높일 것이다. 또한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머지않은 미래에 지구 어디에서든 뭉쳐 있지 않아도 뭉쳐 있는 것과 다름없는 효과를 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지금 인간이 해야 할 일은 거리 두기가 지금껏 해온 발전에 역행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 온택트, 인공지능 등의 신기술을 적절히 접목하여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의 발전이 시작되게 해야 한다. 인적 쇄신도 필요하다. 거리 두기의 당위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통해 모든 사람이 새로운 행동 방식에 적응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젊은 세대에게는 관련 분야에 대한 조기 교육을 통해 기술 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번 바이러스의 공격은 인간의 역사에 엄청난 대재앙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위기 뒤에는 늘 기회가 온다. 또한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대재앙으로 기록될 이번 바이러스는, 인간 공존의 새로운 진리가 정립되고 인간의 행동 양식이 급격히 변화하여 완전히 새로운 발전이 시작되는 분기점으로도 기록될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그래 왔듯이 앞을 가로막는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고, 더 강해진 모습으로 끝내 생존해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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