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1일, 상급종합병원인 A병원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다. 단 하루의 수습 기간도 없이 내과 병동과 중환자실에 투입됐다. 의지할 것이라고는 전날 저녁 인계해주던 레지던트의 모르겠으면 전화하라는 말과 열댓 페이지 정도의 업무인계장 밖에 없었다. 맞게 하고 있다는 확신도 없이 밀려오는 일들을 꾸역꾸역 해 나갔다.
오전 10시쯤, 혈변을 본 환자가 있었다. 인계장을 보니 항문 검사를 하고 결과를 담당 레지던트에게 전화로 알려주라고 되어 있었다. 전화를 걸어 내과 인턴이라 자기소개를 하고 용건을 말하려는데 날카로운 남자의 목소리가 말을 끊었다.
“지금 코드블루 안 오고 뭐해요?”
“네? 방송을 못 들었습니다… 혹시 어딘지…” 나는 당황하여 어버버 했다.
그는 차갑게 “8층 서병동이요”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코드블루는 병원 내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음을 알리는 방송이다. 내과 인턴은 방송이 나오면 즉시 방송에서 알려주는 위치로 달려가야만 했는데, 혈변 환자에 정신이 팔려 순간 청각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하던 것을 내팽개쳐 두고 계단을 통해 황급히 8층 서병동으로 달려갔다.
8층 서병동으로 갔더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스테이션 뒤에서 큰 소리가 들리길래 가봤더니 십여 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후에 그 공간을 ‘처치실’이라 부르며 심폐소생술 등의 큰 처치를 시행하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분주히 움직이는 십여 명 중, 나와 같은 인턴들은 환자의 양 옆에 줄을 서 있었다. 2분마다 돌아오는 흉부 압박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었다. 눈치껏 줄을 맞춰 섰더니 앞에 있는 다른 인턴이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라고 알려주었다. 혹시 모를 감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흉부압박 시행자는 항상 보호 장비를 착용하게 되어 있다. ‘아, 맞다’ 생각하고 마스크와 장갑을 찾는데, 위치를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덜 바빠 보이는 간호사에게 물어 겨우 찾아 착용하고 줄로 돌아갔다.
줄로 돌아가는 짧은 길에서, 정신이 갑자기 확 들었다. 날카로운 레지던트와의 차가운 통화 이후로, 너무 당황해서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도 인지하고 못하고 있었던 거다. 잠시 마스크와 장갑을 찾으며 숨을 고르는 사이 정신이 돌아왔고,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게 되었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다른 인턴들에게 진작 느껴야 했던 감정이 찾아왔다. 흉부압박 대기줄을 새치기하여 바로 다음 차례로 들어갔다.
흉부압박 자세를 잡으며 확인한 환자는 작은 체구의 할머니였다. 힘주어 압박을 시작하는데, 첫 압박에서 우두둑 소리가 들리며 자세가 무너졌다. 갈비뼈가 부러져 있었다. 앞에 있었던 흉부압박에서 부러진 듯했다. 갈비뼈가 부러지든 말든 똑같이 흉부압박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얼른 자세를 고쳐 잡고, 누군가가 틀어 둔 분당 120회의 메트로놈 소리에 맞춰 흉부압박을 시작했다. 교육도 받았고, 학생 때 실전 경험도 몇 번 있었지만, 오랜만에 하는 격한 운동에 금방 호흡이 가빠오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자세가 흐트러지고 속도가 느려지자, 제대로 하라는 레지던트의 호통이 들려왔다. 겨우 정신을 붙잡고 압박에 집중했다. 2분이 참 길게 느껴졌다.
인턴 다섯 명이 2분씩 돌아가면서 20분 정도 했을까, 할머니의 갈비뼈는 몇 번을 더 부러졌고, 우리는 땀을 비 오듯이 흘리고 있었다. 그때, 할머니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우리가 해냈다’ 생각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는데, 현장을 지휘하던 내과 레지던트들은 오히려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우리에게 말했다.
“이제 정형외과에서 알아서 할 거니까 인턴 선생님들은 가서 일 보세요.”
할머니가 원래 정형외과에 입원한 환자였던 것을 그때 알았다. 정형외과의 일은 정형외과에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심정지에 한해서는 내과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지원하게 되어 있었다. 그제야 구석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애원하고 있는 정형외과 레지던트가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으나, 밀린 일이 산더미라 왔던 병동으로 급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30분쯤 지났을 때, 레지던트들의 표정이 착잡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8층 서병동에서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다는 코드블루 방송이 들려왔다. 병원 전체에 크게 울려 퍼지는 소리였다. 아까는 어떻게 이 소리를 못 들었을까 생각하며 8층 처치실로 달려갔다. 10분 정도 열심히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데, 분노에 찬 외침이 들려왔다.
“왜 너희들이 안 하고 내과에서 하고 있어!” 정형외과의 높은 교수님이 정형외과 레지던트에게 하는 말이었다.
몇 걸음 떨어져서 보고 있던 정형외과 레지던트들이 황급히 달려와서 우리가 하던 것을 이어받았다. 그리고는 울상을 지으며 작게 말했다.
“내과 선생님들은 가셔도 될 거 같아요.”
돌아가는 길에, 내과 레지던트들의 대화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에휴, 저 목수들, 왜 저런 환자를 수술하겠다고 입원을 시키지?”
‘목수’가 정형외과 레지던트를 비하하는 말임을 알 수 있었다. 뼈를 자르고 붙일 줄만 알고, 환자를 관리할 능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으로, 의사답지 못하다는 의미였다. 정형외과 레지던트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한창 바쁜 시간에 다른 과 환자 때문에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는 사실에 내과 레지던트들이 화가 많이 난 듯했다.
“차트 보니까, 원래 심장에 문제가 있었던 거 같은데.”
할머니 환자가 정형외과에 입원한 목적은 고관절 수술이었는데, 처음부터 그런 대수술을 받을 만한 몸이 아닌 상태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였다. 80대의 나이에, 심장에도 기저질환이 있었고, 오랜 침상 생활로 전신 기력 역시 매우 떨어진 상태였다. 아마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다 해도 비슷한 시기에 심장이 멈췄을 만한 환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론적인 이야기로, 정형외과의 수술 판단이 틀렸다고 볼 근거도 없었다. 수술을 통해 할머니가 운동 능력을 회복했다면 더 오래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참 도와준 내과 입장에서는 정형외과가 원망스러울만했다.
“빨리 보호자 설득해서 CPR 그만하게 해야지, 1년차는 뭐 하고 있는 거야?”
정형외과 레지던트가 전화기에 대고 애원했던 이유를 알 수 있는 말이었다. 실제로 병원에서 했던 심폐소생술 중에, 환자가 살아서 퇴원한 경우는 손에 꼽는다. 심폐소생술을 해도 살릴 수 없는 환자가 태반이었고, 사망을 인정하고 소생술을 끝내야 하는 순간이 왔다. 그런데 그 끝을 결정하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환자의 가족이었다. 의사는 가능성이 전혀 없어도 소생술을 멈출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가족이 환자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심폐소생술을 멈춰달라고 할 때까지 인턴은 흉부압박을 반복해야 했고, 소생 가능성이 없는 CPR 상황에서 환자의 가족을 설득하는 일은 레지던트의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고관절 수술을 위해 입원한 환자가 수술방에 가보지도 못하고 사망했다는 소식을 가족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정형외과 레지던트는 전화기에 대고 애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심폐소생술의 끝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날 오후에 들은 바로는 우리가 떠나고 얼마 뒤 레지던트는 결국 설득에 성공했고, 정형외과 사람들은 그제야 심폐소생술을 멈출 수 있었다고 한다. 그와 별개로 내과에서는 그날 두 명의 심정지 환자가 더 발생했고, 또다시 여러 번의 흉부압박을 해야 했다. 다음날 팔과 어깨, 가슴과 등에 엄청난 근육통이 찾아왔고, 그렇게 흉부압박의 달인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