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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Apr 22. 2020

인턴들의 입시 전쟁 2

레지던트 입시 설명회: 각론

(1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nisiho11/26


정시에서 평가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내신’은 두 항목으로 구성되는데, 의대 시절 본과 4개년 성적과 의사 국가고시 성적이 들어간다. 내신은 1~9 등급으로 나눠지는데, 의대는 학생 수가 적어서 1등급이 1~2명밖에 없다. 이 말은 1등급 인턴이 어떤 과에 딱 지원한다고 소문이 돌면, 그 과에 관심 있는 낮은 등급의 인턴은 주춤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최종 점수에 들어가는 내신의 비율은 10% 남짓인데, 다른 평가에서 충분히 극복 가능한 수치이다. 하지만 ‘내신 1등급 인턴’이라는 명함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인턴은 기선제압을 당하고 다른 과로 피신하는 경우가 많다.
결론: 내신은 우선 잘해 놓으면 피를 보지 않고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싸우게 되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포트폴리오’는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 간의 인턴 근무 성적이다. 인턴 근무 성적은 한 달씩 돌았던 각 과의 레지던트가 제출하는 점수에, 인턴 전체를 관리하는 부서인 교육수련부(병원에 따라 수련교육부인 경우도 있음)의 점수를 더하여 정해진다. 이 점수를 토대로 전체 인턴을 대략 3:5:2로 나누어서 A턴, B턴, C턴으로 나누게 된다. 이 점수 제도의 문제는 모든 인턴이 다 같은 과를 돌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마다 점수가 후한 과도 있고 짠 과도 있기 때문에 매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그래서 이런 체계에 대하여 아는 의사들은 A턴=B턴 정도로 생각하고, C턴은 정말 어딘가 부족한 인턴이라는 인식을 갖는다. 인식은 그렇지만 최종 점수에서 0.1점 차이로 갈리는 경우도 많으므로, B턴보다는 기왕이면 A턴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론: 인턴 근무 성적은 운이 많이 작용하지만, 그 운마저 컨트롤하여 최대한 잘 받아 두는 것이 좋다. 인턴 근무 시작 전 선배들에게 최대한 정보를 얻을 것.


‘수능’은 12월 초에 시행되는 ‘전공의 시험’을 말한다. 전국의 모든 레지던트 지원자가 동시에 진행하는 시험이다. 응시자 수가 수능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경쟁이 있는 과에 지원한 인턴 입장에서는 피 말리는 시험이다. 최종 점수에서 이 시험의 점수가 가장 큰 비중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기본 점수도 없이 받은 점수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당락을 결정하는 시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무려 시험 6개월 전인 한여름부터 일을 팽개치고 시험 준비를 하는 인턴도 상당수 있다. 이 시험의 특징은 족보(기출문제)를 많이 타면서 난생처음 보는 문제 소수로 변별력을 만든다. 이 소수의 문제를 맞혀야 고득점이 가능한데, 의외로 고급 지식으로 푸는 게 아니라 병원에서 겪었던 진귀한 경험을 통해 맞힐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결론: 시험이 가장 중요하다. 공부는 많이 할수록 좋겠지만, 단순 공부만으로 맞힐 수 없는 문제가 매년 소수 출제된다. 이 문제를 맞히는 데는 찍는 운 또는 특별한 의사 경험이 필요하다.


‘면접’은 병원마다 비중이 다르다. 형식적으로 하면서 작은 점수만 배분하는 경우도 있고, 많은 교수가 들어와서 심층 면접을 하는 경우도 있다. 미리 정보를 얻어서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원서에 첨부하는 '자기소개서'에 심혈을 기울여야 된다. 자기소개서 공략을 말하자면, ‘지원동기’ 부분을 교수님이 보기에 그럴듯하게 써야 한다.

 

지원동기는 3가지로 쓰면 되는데, 첫 번째는 내 생각이 아닌, 교수님이 생각하는 과의 장점을 써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과의 장점이 교수님의 생각에는 단점인 경우도 있으므로, 항상 교수님이 그 과를 선택하신 이유를 알아보고 쓰는 것이 좋다. 두 번째는 그 과에서 다루는 학문에 대해서 써야 한다. 피부과에 지원한다면 ‘피부과학’, 재활의학과에 지원한다면 ‘재활의학과학’을 다뤄야 한다. 대충 ‘~과학이 아주 흥미롭고 매력적인 학문이기 때문입니다’로 문단을 시작하면 되겠다. 세 번째는 무조건 ‘연구’를 하고 싶다고 써야 한다. 돈 잘 버는 인기과의 특징은 전문의가 된 후 나가서 개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교수 입장에서는 졸업하고 나갈 사람보다는 연구하면서 병원에 남을 사람이 더 매력적이다. 실제로는 아니더라도, 자기소개서에서는 연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어야 한다. 연구하고 싶은 주제 한 두 개를 추가한다면 금상첨화겠다.

결론: 면접은 중요도가 병원마다 다르다. 정보를 미리 얻고 준비할 것. 그래도 자기소개서는 잘 써 두는 것이 좋다. 중요도와 관계없이 면접에서 단정한 복장 및 ‘이 과 아니면 안 된다’라는 확고한 마인드는 필수로 가져가야 한다.


‘실기 시험’은 병원마다 가장 편차가 큰 항목이다. 내가 일한 병원은 간단하게 모형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시험을 본다. 실기 시험은 출제 가능한 종목이 매우 많으므로 반드시 전년도 응시생에게 정보를 획득해야 한다. 대부분 점수를 주기 위한 의도의 시험이기 때문에 절대 감점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
결론: 실기 시험은 반드시 정보를 얻고 간단한 연습이라도 하고 가자.


인턴들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다. 어떤 인턴은 '돈' 또는 ‘과’에 목숨을 걸기도 하고, 어떤 인턴은 ‘과에 관계없이 교수가 되어 병원에 남는 것’만 생각하는 경우도 꽤 있다. 별로 하고 싶은 과가 없지만 차마 쉴 수는 없어서 비인기과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비인기과에 간 레지던트는 본인이 갑, 교수님이 을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현재 레지던트 2년 차로서 예비 레지던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하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막상 해보니 너무 힘들고 별로라면, 주변에서 욕할지는 몰라도 중간에 포기해도 된다. 하고 싶은 건 없지만 뭐라도 해야겠다 싶으면, 그냥 편한 과에 들어가서 슬슬 공부해 보는 것도 좋다. 혹시 모른다. 5년 뒤에는 그 과가 필수과, 인기과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자기만의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달려가는 것 역시 매우 대단하고 칭찬받을 일이다. 의사의 길을 걷는 모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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