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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Apr 24. 2020

풋내기 의사의 첫 한 달

1인분 인턴 도전기

나는 현재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 2년 차로 일하고 있다. 2년 차에 접어들면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할 때가 많은데, 매너리즘에 빠질 때마다 막 의사가 되어 처음으로 일을 시작한 풋내기 인턴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지금과 달리 모든 것이 처음이라 참 서툴고 많이 부족했던 시기다.


의대를 7년 만에 졸업하고, 의사 국가고시를 통과하여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졸업한 대학교에 속한 병원에서 59명의 다른 의사들과 함께 인턴을 하게 되었다. 인턴을 시작하면서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최고의 인턴이 되자!' 


인턴 근무는 3월 1일에 시작하는데, 시작 2주 전 사전 교육이 진행되었다. 교육 중에는 인턴 선배가 각 과들에 대하여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는 시간이 있었다. 그중 내과에 대한 설명이 흥미를 끌었다. '일은 매우 힘들지만, 앞으로 인턴을 하면서 경험하게 될 모든 일을 한 달 만에 경험할 수 있음. 첫 근무로 시작하기에 나쁘지 않은 과'라는 내용이었다. 최고의 인턴이 되기 위해서는 조금 고생하더라도 일을 빠르게 배우는 게 좋다고 판단하였다. 수십 개의 근무표 중, 내과로 시작하는 근무표를 용감하게 선택하였다.


인턴을 시작하기 2일 전, 1년 먼저 시작하여 이제 인턴을 마치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였다. 어떻게 하면 최고의 인턴이 될 수 있는지, 다른 인턴이나 다른 직종과의 관계는 어떻게 관리하는 게 좋은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환자에게 주사를 잘 찌르는 방법에 대하여 열심히 물어보았다. 


최고의 인턴이 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존재감이 없는 인턴이 되란다. 무슨 뜻이냐면, 알아서 일을 다 해놔서 찾을 필요가 없는 인턴이 최고라는 것이다. '크으~' 감탄이 나왔다. 잘 보이려고 난리 치는 게 아니라 안 보이려고 난리를 쳐야 한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조언은, 나에게 주어진 일만 잘 해낸다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좋아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책임감 없는 사람과는 같이 일을 하거나 친해지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마음속에서 '책임감'에 밑줄을 긋고 별표를 쳤다.


가장 중요한 주사 찌르기에 대한 답은 간단명료했다. '술기는 과감하게!'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의학적인 행동을 '술기'라고 하는데, 나는 의사 국가고시를 통과하며 모든 술기를 연습한 상태였다. 다만 환자가 아닌 '모형'에 연습했다는 차이가 있었는데, 그 차이를 신경 쓰지 않고 연습한 대로 과감하게 찌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이외에도 수많은 조언이 쏟아졌고, 머릿속 깊은 곳에 새겨두었다.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3월 1일 아침 7시, 드디어 첫 출근을 하였다. 그리고 내가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근무 1시간 만에 사고가 터졌다. 병원 전체에 나를 찾는 방송이 울려 퍼진 것이다. 새로 맞춘 전화기가 먹통이 된 게 원인이었다. 순식간에 존재감이 넘치면서 책임감은 없는 인턴이 되어버렸다. 한 번 일이 터지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머릿속 깊은 곳에 새겨 뒀던 조언들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와중에 환자에게 주사를 꽂을 일이 생겼다. 긴장됐지만 '과감하게!' 속으로 외치면서 연습한 대로 푹 찔렀다. 피가 나와야 되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다. 아차 싶었다. 술기를 실패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바가 없었다. 두 번을 더 찌르고, 환자의 화난 표정을 마주하고 나서야 조언 하나가 떠올랐다. '잘 모르겠으면 간호사한테 물어봐라' 우물쭈물 가서 물어봤더니 친절하게 잘 알려주었다. 알려준 대로 했더니 신기하게도 피가 잘 나왔다.

 

초반의 혼란을 간신히 수습하고 12시간 동안 정말 쉴 새 없이 일했다. 퇴근하면서 목표를 수정했다. '1인분이라도 하는 인턴이 되자.' 최고의 인턴이 되는 꿈은 잠시 접기로 했다. 대신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는 것을 새 목표로 삼았다. 목표를 낮추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2일 차부터는 좀 더 여유를 갖고 일할 수 있었다.


마음의 여유와는 상관없이, 몸은 한 달 내내 매우 힘들었다. 하루에 평균 30개의 드레싱을 하고, 10번 피를 뽑았으며, 2명의 죽음을 경험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손은 점점 빨라졌고, 판단은 갈수록 냉철해졌으며, 공격적이던 말투는 느긋하고 친절해졌다. 3월의 끝에 가서는 1인분은 충분히 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인턴이 되었다.


3월의 인턴 근무는 인턴으로 일한 1년 중 가장 힘들었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배운 게 가장 많은 시간이기도 하다. 갓 면허를 딴 풋내기 의사가 의사다운 의사로 성장하는 시간이었고, 나보다 환자를 더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한 시간이었다. 의사 인생 첫 달에 몸으로 부딪히며 얻은 수많은 깨달음은 현재까지도 나를 이끌어주는 굳건한 신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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