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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Apr 29. 2020

인턴의 변심은 무죄?

파란만장 레지던트 도전기

보통 인턴의 중반이 넘어가면, 레지던트 도전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모든 인턴이 본인이 하고 싶은 과를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도전'이라 표현하는데, 어떤 과에 지원할지 고민하고, 다른 인턴들이 어디에 지원하는지도 알아보고, 연말에 있을 시험도 준비하는 등 도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 바쁜 인턴 일의 와중에 레지던트 도전 준비도 부족함 없이 해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나는 다행히 레지던트 도전에 성공하여 현재 방사선 종양학과에서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다. 다음은 방사선종양학과에서 일하게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과정이다.


본과 3학년 때 병원 실습을 나가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다가 외과 의사들에게 일종의 동기부여를 당했다. 외과는 대표적인 비인기과로, 외과 의사들은 만나는 모든 학생에게 칭찬을 하며 외과로 유혹하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학생 시절의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교수님과 레지던트의 칭찬에 넘어가 외과에 지원할 뻔했다.


외과 실습은 대부분 수술 참관으로 진행된다. 교수님은 수술 중 다양한 수술 기구들을 만져보게 하면서 흥미를 유발하고, 기구를 잡고 있으면 힘 조절이 일품이라고, 외과 오면 잘할 거라는 칭찬을 한다. 수술이 끝나면 외과 레지던트와 함께 환자 배를 닫는데, 별생각 없이 가위질 몇 번 했더니 ‘오! 진짜 소질 있는 거 같다’하는 레지던트의 감탄이 이어진다. 이쯤 되면 학생 입장에서는 혹할 수밖에 없다. ‘내가 정말 재능이 있나 보다’ 생각이 들면서, 외과 의사가 되어 위태로운 대한민국 외과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꿈을 갖게 된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외과에 대하여 깊게 생각했었다.     


6개월 만에 외과를 포기한 이유는, 남들이 볼 때는 우스울 수 있지만, ‘다리가 아파서’ 포기했다. 평소에도 평발이 심해서 오래 걷거나 서있지를 못하는데, 외과 수술은 짧으면 3시간, 길면 12시간이 넘어가고, 의사는 그 시간 내내 서있어야 한다. 외과를 실습하면서 수술을 오랜 시간 참관하다 보니 몇 개월 되지 않아서 다리와 허리가 많이 아팠다. 평생 외과의사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외과를 포기하게 됐다.     


신체적인 이유로 외과를 포기하고 나니, 몸이 편한 과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본과 4학년 실습을 돌던 중, ‘직업환경의학과’를 발견했다. 직업환경의학과는 보통 ‘직환’이라고 줄여 말하는데, 병원에서 가장 편한 과로 유명했다. 당직 없이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중에만 일하고, 레지던트를 마친 후에는 검진 센터에서 건강한 사람 위주로 보면서 편하게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레지던트 지원을 결심했다.     


졸업을 하고, 3월에 인턴을 시작하여 7월까지만 해도 직환에 대한 마음이 확고했다. 인턴 일이 힘들면 힘들수록, 편한 직환에 대한 열망이 커져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두 가지 악재가 발생했다. 첫 악재는 경쟁자의 등장이었다. 작년에 직환에 지원했다가 아쉽게 떨어진 지원자가 올해 다시 지원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번째 악재는 마음이 약간 식어버린 것이었다. 새로운 다크호스 '내과'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3월 내과 근무 후, 8월과 9월에 내과 근무를 다시 하게 되었는데, 처음이라 힘들기만 했던 3월과는 달리 8월, 9월의 내과는 아주 재밌었다. 내과는 병원에서 가장 많은 환자가 사망하는 과인데, 그만큼 노력에 따라 살릴 수 있는 환자가 많았다. 환자를 살리는 느낌이 짜릿해서 두 달간 정말 적극적인 인턴이 되었다. 편한 과만 찾던 마음에 회의감이 생기면서 고민이 많아졌다.     


회의감이 점점 커져가던 중, 9월 말에 직환에서 지원자 2명에 대하여 사전 면접을 시행한다고 하였다. 지원서에 첨부할 자기소개서를 쓰려는데 뭔가 잘 안 써졌다. 환자에 목숨 거는 과인 내과가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으니, 정반대에 위치한 직환에 대하여 진심 어린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이후 진행된 면접도 비슷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 말만 하다가 나왔고,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처음 가고 싶은 과를 정할 때는 그 과의 장점만 보이다가, 그 과에 실제로 갈 가능성이 생기면 그 과의 치명적인 단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직환에 떨어지고 내과에 갈까 고민을 하였더니(당시 내과는 경쟁이 없어서 가려면 바로 갈 수 있었다), 내과의 짜릿한 기억은 퇴색되고 내과의 치명적 단점이 너무 크게 보였다. 살인적인 근무 환경, 만연한 꼰대 문화 등이 내과를 향해 내딛으려던 내 발목을 잡았다.     


마음이 혼란한 와중에, 방사선 종양학과(줄여서 방종)의 한 교수님이 작성한 홍보글로 인하여 나의 도전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방종은 전국적으로 인기가 없는 과로, 우리 병원 방종은 당시 5년째 레지던트 신규 지원이 없는 상태였다. 나 또한 방종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고, 심지어 방종이 어떤 과인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홍보글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 글에서는 방종을 편한 근무 환경을 보장하고, 암 환자를 치료하는 과로 소개하고 있었다. ‘직환의 편함’과 ‘내과의 보람’을 적절하게 섞어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방종에도 물론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방종이 전국적으로 비인기과인 이유는 ‘돈’을 많이 못 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큰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과에 가더라도 미래는 불확실하기 마련이고, 당장 편하게 지내면서 학문적 내실을 다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괜찮다 생각되었다. 일주일 정도 고민 후 방종 교수님을 찾아가서 지원 의사를 밝혔고, 6년 만의 레지던트로 환영받으면서 방사선 종양학과에 입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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