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잊히지 않는 환자들
대학병원에는 수많은 암 환자들이 입원하는데, 가진 암에 따라 대략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어떤 환자는 다행히 조기에 발견해서 수술을 하고 몇 번의 항암 치료 후 관찰 단계로 넘어간다. 어떤 환자는 조기와 말기 사이에서 발견되어 현재 진행 중인 치료 결과에 따라 앞으로의 운명이 결정된다. 또 어떤 환자는 너무 늦게 발견했거나, 재발했거나, 치료에 실패하여 말기 암 환자가 된다. 이 글은 말기 암 환자에 대한 이야기다.
말기 암 환자들은 임종이 가까워오면 상태가 매우 나빠지기 때문에 집에서 돌보는 데는 한계가 있고, 보통 입원을 하여 짧은 기간 케어를 받다가 결국 돌아가신다. 병원 일의 특성상 죽음이 가까운 곳에는 항상 인턴이 있다.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드리기 위해 간단한 술기를 할 수도 있다. 인턴은 말기 암 환자가 돌아가실 때까지 꽤나 여러 번, 긴 시간 동안 접촉하게 된다.
인턴을 하면서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지만, 말기 암 환자의 죽음은 다른 질병으로 인한 사망보다 기억에 훨씬 오래 남는다. 그들의 죽음에는 나도 모르게 감정이 섞이기 때문이다. 며칠 또는 몇 주에 걸쳐서 점점 안 좋아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깝고, 해줄 수 있는 게 없기에 찾아오는 무력감이 있다. 그중에서도 30대, 40대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 말기 암 환자들은 남 일 같지가 않아서 더 감정이입이 되고, 몇 년이 지나도 절대 잊히지 않는다. 몇몇 기억들을 나열해 본다.
#1.
유방암이 뇌에 전이된 30대 여자 환자가 있었다. 뇌 전이는 부위에 따라 아무 증상이 없을 수도 있고, 눈이 갑자기 안 보일 수도 있다. 보통은 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이 대표 증상이다. 이 환자는 전이가 된 줄 아예 몰랐던 상태로, 단순한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했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 MRI를 찍어보니 뇌에 다수의 전이가 있었고, 발작을 한 뒤로 갑자기 환자는 의사소통이 안되면서 상황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러 간 의사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갑자기 이름표를 보더니 ‘어? 이름이 웃기다 하. 하. 하.’ 하는 식이었다.
이런 경우는 응급으로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하는데 치료가 준비되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몇 시간 뒤 다시 발작을 일으키면서 순간적으로 숨을 못 쉬는 상태가 되었고, 심정지까지 왔다. 겨우 소생시켜서 중환자실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사망하였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에 가족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못해서 이미 죽은 시신에 한 시간 넘게 소생술을 시행한 기억이 난다.
#2.
췌장암이 복막에 전이된 30대 남자 환자가 있었다. 복막 전이가 되면 아무 증상이 없을 수도 있지만, 장 곳곳이 막히면서 계속 토할 수도 있다. 배에 물이 찰 수도 있고, 엄청난 통증이 동반될 수도 있다. 이 환자는 병원에 십여 번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항암치료를 받다가 결국 포기하고 보존적 치료(병을 치료하지 않고, 환자가 힘들어하는 부분만 최대한 도와주는 치료)를 위해 입원했다. 환자가 예민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운 좋게도 나와는 관계가 괜찮았다. 이 환자는 장이 막혀서 뱃속의 액체를 콧줄(콧구멍으로 집어넣어서 뱃속까지 연결되는 튜브)을 넣어서 빼 주지 않으면 30분마다 구토를 하였는데, 응급실에서 다른 인턴이 콧줄 삽입을 몇 번 실패해서 그냥 안 하고 병동에 올라왔었다. 콧줄을 넣을 때 환자가 상당히 고통스러운데, 다행히 내가 한 번에 부드럽게 성공해서 첫인상 점수가 좋았다.
이 환자는 2주 정도 있다가 돌아가셨는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언제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뼈와 가죽밖에 없는 얼굴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입만 겨우 움직여서 누나 보호자에게 이것저것 부탁을 하였다. 얼굴을 보고 전신이 다 말라비틀어진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소독할 때 보니 배는 만삭 임산부처럼 부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배에 물이 가득 차다 못해 허벅지부터 발가락까지 물이 내려가서 하반신 전체가 땡땡하게 부어 있었다. 이 환자는 첫인상이 좋아서 그런지 나에 대한 의존이 심했다. 내가 쉬는 날인데도 나한테만 소독을 받겠다고 하고, 콧줄 교환도 나에게만 부탁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돌아가실 때까지 잘 챙겨드렸다.
#3.
유방암이 뼈와 폐에 전이된 40대 여자 환자가 있었다. 뼈 전이는 아무 증상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뼈 주변의 신경을 누르면 마비가 올 수도 있다. 폐 전이는 대부분 아무 증상이 없다가, 진행되면 폐에 물이 차면서 호흡 곤란이 올 수 있다. 뼈 전이와 폐 전이는 환자의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긴 하지만, 수명을 급속도로 단축시키지는 않는다. 이 환자는 나와 만나기 수개월 전부터 비슷한 상태로 입원 중이었는데, 이 환자로 인해 고통받은 의사와 간호사가 수십 명이었다.
이 환자는 내가 만난 환자 중에 가장 예민하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환자였다. 뼈 전이로 인한 통증이 심해서 항상 같은 자세로 침대에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엉덩이에 심한 욕창이 생겼는데, 그로 인한 통증 역시 매우 심했다. 이런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곤 하는데, 이 환자는 고용량 마약을 하루에 8번씩 맞았다. 거의 마약 중독자가 되어 아프지 않을 때에도 진통제를 달라고 요구하곤 하였다. 하지만 그 누가 와서 설득하고 노력해도 다른 진통제는 안된다고 무조건 마약 진통제로 달라고 하였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병동 전체가 떠나가게 소리를 질렀다.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아직 치료를 해 볼만한 몸상태였기에, 교수님과 레지던트가 항암치료를 하자고 계속 설득을 하였는데, 몇 주일을 설득해서 마지못해 해 본다고 하고는 항암제가 들어간 지 30분 만에 못하겠다고 하는 부분에서 모든 의료진이 그 환자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모든 치료와 소독을 거부하고 하루에 8번씩 진통제를 맞는 생활을 한 달 더 지속하다가, 욕창에서 생긴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하였다.
#4.
유방암이 뼈와 폐에 전이된 또 다른 40대 여자 환자가 있었다(앞 환자와는 다른 시기에 만났다). 이 환자는 앞의 환자와 정반대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뼈 전이로 인해 하반신 마비가 와서 항상 누워있었는데, 역시 엉덩이에 욕창이 심하게 생겼다. 이 환자는 내가 갈 때마다 항상 반갑게 인사해주고, 소독이 다 끝나면 항상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 번 말해서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보호자 역시 아주 헌신적인 남편으로, 의사가 하는 모든 행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었다.
이 환자는 처음에는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았는데, 입원 후 어느 정도 회복하면서 항암 치료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욕창도 많이 호전되었다. 자꾸 마음에 밟혀서 이후에 다른 과를 돌 때도 간간히 의무 기록을 체크하였는데,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긴 했지만 내가 인턴이 끝날 때까지는 생존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