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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May 11. 2020

추가 합격 전화를 받다

2011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은 난이도가 아주 높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흔히 ‘불수능’이라고 일컫는데, 얼마나 어려웠던지 나보다 3,4년 뒤에 들어온 신입생들도 그 해의 수능이 불수능인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도 당연히 망했다. 정시를 지원했는데 가, 나, 다 군에서 모두 불합격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추가 합격 번호가 나쁘지 않아서 셋 중 하나는 되겠거니 싶었다.

 

부모님은 불안감이 심해서 재수 학원에 등록을 하자고 하셨다. 학원에 등록하러 가는 길에 증명사진을 촬영하였는데(등록 준비물이었다), 그 사진을 운전 면허증 사진으로 해버리는 바람에 꺼낼 때마다 그때 기억이 생각나곤 한다. 어머니와 함께 갔는데, 어머니는 ‘1년만 열심히 해보자, 다 잘될 거다’ 난리였지만, 난 철이 없었던 건지 무의식적으로 결국 합격할 걸 알았던 건지 별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감에 약간 들떴던 것 같다.

 

학원 등록 후 며칠 뒤, 나 군에 지원했던 서울대 수리 통계학과에 추가 합격이 되면서 재수 학원은 해프닝이 되어버렸다. 열심히 놀다가 2월 중순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다고 하여 서울대에 방문하였다. 서울대의 거대한 캠퍼스를 보니 한국 최고의 대학에 입학한 나 자신이 아주 대견했다. 오리엔테이션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과 선배 중에 고등학교 선배 한 명이 있어서 나를 잘 챙겨주었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031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얄궂게도 다 군에 지원했던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이었다. 추가 합격이 됐는데 등록할 것인지 물어보는 전화였다. 당시 아주대 의대는 ‘다 군 최강’으로 평가되어 초고득점자들도 다 군에서는 아주대 의대에 지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합격하더라도 가, 나 군에 있는 더 강한 의대에 동시 합격이 되기 때문에 추가 합격 전화를 등록 마지막 날까지 돌리는 전통(?)이 있었다. 금방 전화를 주겠다고 하고 끊은 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다. 아주대 의대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아주대에 전화를 걸어서 등록 의사를 전달하였다.


거기서 끝을 내고 집에 가는 게 맞았지만, 나는 그새 서울대 친구들에게 정이 들어 버렸다. 한 명 한 명이 다 똑똑하고 재밌고 잘 놀더라. 고등학교 선배에게 은밀하게 상황을 전달했더니 그냥 신나게 놀고 가라고 해주었다. 저녁을 먹고, 뻔뻔하게 서울대의 명소 녹두거리의 술집까지 따라가서 본격적인 신입생 환영회를 즐겼다. 신입생 환영회라고 해봤자 그냥 몇 시간 동안 술 게임을 하면서 서로 왕창 술을 먹이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것만큼 처음 만난 젊은이끼리 빠르게 친해지는 방법은 없는 거 같다.

 

내 입장에서는 다시 볼 일 없는 사람들이니 정말 신나게 놀았다. 난생처음 해보는 술 게임을 빠르게 습득하고, 두 시간쯤 지나서는 몇몇 선배와 눈빛 교환을 하며 타깃으로 정한 신입생 친구에게 술을 먹이는 경지에 다다랐다. 서울대에서 배운 스킬로 이후 아주대 신입생 술 게임계를 평정했으니 말 다했다. 막차 시간이 되어 중간에 나왔는데, 다음날에는 새터가 예정되어 있었다. 불가능한 것을 알지만 ‘내일 뵙겠습니다’하고 나름의 작별 인사를 했다.

 

다음 날 아침, 과 대표에게 문자로 사정을 설명했다. 다행히 잘 이해해 주었다. 그리고 과의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신입생 오티에 참여했던 신입생입니다. 저는 제 꿈을 찾아 떠납니다. 잠시지만 감사했습니다.’ 익명의 댓글로 여러 명이 나의 앞길을 응원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 20대 초반의 아량이 참 대단한 게, 역시 서울대구나 싶다. 가끔 서울대와 관련 있는 사람을 만나면 이때를 회상하며 명예 서울대 학생이라고 우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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