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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May 22. 2020

대학생 때 받은 예절 교육

의대는 군기가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의사 사회가 워낙 좁기 때문이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붙어 있는 대학병원에 취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 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가 된. 선배 입장에서는 학생 때부터 서열을 확실히 해두것이 여러모로 편할 것이다. 누군가는 의사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군기가 필요하다는데, 솔직히 군기와 의사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졸업한 아주대 의대와 근무 중인 아주대 병원은 불필요한 군기 잡기가 없는 청정 지역이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고, 올바른 생각을 가진 여러 학생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바꾸어 나간 결과이다. 처음 개혁의 바람이 분 것은 2009년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생기면서부터로 알고 있다. 다른 대학교를 졸업하고, 입학시험을 치러 의대 3학년에 해당하는 본과 1학년으로 들어오는 제도인데, 공부한 기간에 따라 선배들보다 적게는 한두 살, 많게는 열 살까지 많은 후배가 들어오게 되었다. 본인보다 나이도 많고, 인생 경험도 풍부한 후배에게 군기를 잡아야 하는 애매한 상황이 펼쳐졌다.  

 

당시 본과 2학년으로 학생회를 구성하던 06학번 선배들의 치열한 토론 끝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예절 교육 외에 불필요한 군기 잡기는 없애기로 결정이 되었다. 전통이라는 미명 하에 3년 간 고생하고 착취를 당하다가, 본인이 결정권자 및 수혜자가 됐을 때 그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내가 입학한 해는 그런 결정이 있은 지 2년 후로, 06학번 선배는 졸업반이 되어 일선에서 물러나고, 08학번이 학생회를 맡고 있었다.


당시 군기 상황은 아직 과도기였다. 점차 줄여나가고 있었지만, 눈치를 봐야 할 윗선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학번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선후배 사이의 군기 잡기는 최대한 없앴는데, 교수님이나 고학번 선배 중에는 그런 상황을 용납하지 않는 분들이 있었다. 학생회 입장에서는 '신입생 환영회'라는 전교생 및 다수의 교수님이 참여하는 행사를 앞두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행사 직전 예절 교육이 진행됐다.


진행 방식은 단순했다. 전체를 한 장소에 모이게 하여 바닥에 무릎을 꿇리고, 무섭기로 유명한 선배(속된 말로 빡센 선배)가 와서 천천히 매뉴얼을 읽어주는 방식이다. 매뉴얼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교내 생활 수칙'과 '주도(酒道)'라는 술자리 예절로 되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용은 오히려 훌륭했다.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내용도 많았다. 스무 살이면 잘 모를 수도 있는, 한국 사회에 통용되는 여러 예의범절이 담겨 있었다.


문제는 그 전달 방식이었다. 과도한 공포 분위기 조성의 장점이 있긴 하다.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점이다. 9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분위기가 생생하게 떠오르고, 매뉴얼이 전부 기억난다. 하지만 단점이 훨씬 크다.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준다.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를 받고 트라우마가 됐다는 뜻이다. 세상 순수한 젊은이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교육 방식이었다.




진지한 얘기만 한 것 같은데, 첫 예절 교육에서 작은 일화가 있었다. 교육 공지를 받고 장소로 가서 잔뜩 긴장해서 있는데, 키는 좀 작지만 다부진 몸에 험상궂은 얼굴을 한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사투리 약간 섞인 걸걸한 목소리로 ‘나는 학생회장 O희원인데, 여기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 없으니까 반말로 할게’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짜고짜 반말은 오히려 이해가 됐는데, 학생회장 O희원이라니?


추가 합격으로 인하여 새터에 가지 못한 죄(?)로 그때까지 한 번도 학생회장 O희원의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과의 인터넷 클럽에서는 그의 글을 자주 봤었다. 항상 친절하고 밝은 어조로 공지와 댓글을 작성해 주어서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어도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특히나 학창 시절에 만난 ‘희원’은 항상 여자였던지라, 스마트하고 똑 부러지면서도 후배들에게는 아주 친절하고 상냥한 여성 학생회장을 상상하고 있었다.   

 

예절 교육에서 교육자로 등장한, 본인이 O희원이라고 주장하는 남자는 정반대였다. 씨름 선수가 본업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몸과 얼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큰 충격을 받고 옆 친구에게 저 희원님이 그 희원님이 맞냐고 물었더니 맞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가 작성한 여러 글과 그의 산적 같은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왠지 모를 배신감이 느껴졌다.


이 O희원 형님과는 이후 밴드부를 함께하며 매우 친해지게 됐는데, 씨름 선수는 아니고 태권도 선수 출신이다. 험상궂은 얼굴과는 달리 아주 고운 심성을 가진, 그의 여러 글에서 받은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팔자에도 없는 악당 역할을 억지로 하느라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9년이 지나는 동안 예절 교육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매년 학생회 구성은 달라졌지만, 예절 교육에 대한 생각은 같았다.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고, 예절 교육은 점점 간소화되다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교육자에게도, 피교육자에게도 큰 스트레스가 되는 예절 교육 포함 군기완전히 없앤 아주대 학생 리더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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