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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호 May 23. 2020

대형 병원, 막아야 산다

코로나19와 인간의 전쟁에서 아무래도 인간은 수비하는 입장이다. 몰려드는 적군을 최전방에서 막아내는 요새 및 성벽의 역할은 전국에 위치한 대형 병원이 수행하고 있다. 한 때 대구에서의 거센 공격으로 요새가 제 기능을 잃기도 했지만, 다행히 지금은 안정된 상태이다. 산발적인 감염은 있지만, 새롭게 추가되는 환자보다 완치 판정을 받는 환자가 더 많다.

 

이미 확진 판정을 받고 병원에 오는 사람은 병원 입장에서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격리 가능한 병실이 비어 있고, 환자를 치료할 인력 역시 충분히 배정되어 있다. 대형 병원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파악되지 않은 감염자가 침입하는 것이다. 땅굴을 통해 요새에 침투한 스파이 한 명이 요새를 무너뜨릴 수 있다. 병원 내의 환자와 의료진이 감염되면서 요새가 무너질 수도 있지만, 요새의 재정이 파탄 나면서 무너질 수도 있다.  

 

최근 한국 최고의 병원 중 하나인 삼성서울병원에 스파이가 침투하고 말았다. 수술 의료진 몇 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수술실 25개를 폐쇄했다고 한다. 삼성병원 정도면 모든 수술실의 예약이 꽉 차 있을 텐데, 방 하나 당 4건으로 잡으면 하루에 100건의 수술을 못 하게 된 것이다. 수술만 못하면 다행인데, 수술을 위해 입원하기로 한 100명의 환자 역시 입원을 안 하게 된다. 그뿐인가, 병원에 가려다가 마음을 바꾼 사람이 수백 명은 될 것이다.

 

수술실에서 일하는 수많은 비감염 의료진의 임금 문제도 있다. 수술실이 폐쇄됐다고 죄 없는 사람들의 월급을 깎을 수도 없고, 혹시 모를 감염 가능성에 함부로 다른 일을 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수술비, 입원비, 진료비, 인건비, 병원 이미지 등 모든 방면에서 손해가 생긴 것이다. 의료진 몇 명이 감염됐을 뿐인데 병원은 ‘억’ 소리 나는 피해를 입게 되었다. 만에 하나 추가로 한두 명 더 발생한다면? 병원의 존망을 걱정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파악되지 않은 감염자가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형 병원은 엄청난 돈과 인력을 투자하고 있다.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모든 입구에 열 화상 카메라와, 호흡기 증상, 여행력 등의 문진표 작성을 위한 키오스크 여러 대가 설치되었다. 하나에 수 백만 원씩 하는 장비들이다. 열이 나거나 호흡기 증상이 있는 환자들을 위한 선별 진료소의 규모도 상당하다. 모든 환자들에게 병원 방역 정책을 알리기 위하여 곳곳에 붙여 놓은 홍보물과 현수막의 숫자도 매우 많다.

 

대형 병원의 투자는 나름 합리적이다. 코로나19는 꽤 오랜 시간 우리를 괴롭힐 것으로 보이고, 그 기간 동안 얼마를 쓰든 간에 모든 감염자를 차단할 수 있다면 이득이라는 판단이다. 이런 투자는 병원 고유의 기능에도 부합한다. 병원의 존망을 떠나 병원은 약자가 모여서 치료받는 장소이고, 다른 어떤 곳보다도 코로나19의 위협에서 가장 안전해야 한다. 병원은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직원, 환자, 보호자 구분 없이 끊임없이 의심하며 혹시 모를 빈틈이 없는지 유심히 살펴야 한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기약이 없지만, 코로나19 진단 기술은 상당한 발전을 거듭해 왔다. 백신과 치료제가 늦어질수록 진단 기술은 더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 더 빠르고, 더 정확한 기술이 개발되어 침 한 번 뱉는 것만으로 1분 만에 선 자리에서 진단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 기술은 모든 병원이 앞다투어 도입할 것이고, 병원 앞에서 침을 뱉어야만 입장이 가능한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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