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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May 25. 2020

게임으로 깊어지는 우정

나이를 불문하고 처음 만난 남자들끼리 친해질 때는 딱 세 가지인 것 같다. 게임과 운동, 그리고 게임이나 운동을 마치고 함께 술 한 잔 하면 순식간에 절친이 된다. 의대생이라고 다를 게 있겠는가? PC방에서 다닥다닥 붙어 앉아 함께 키보드를 두드리고, 농구장에서 팀을 나눠 뛰어다니고, 술집에 둘러앉아 잔을 부딪히면서 처음 만난 남자 동기들과 금방 친해졌다. 

 

11학번 신입생은 20명이 조금 넘었는데, 5명을 제외한 모두가 남자였다. 첫 학기에는 공통 수업이 많았는데 시간 배치에 배려가 전혀 없었다. 매일 공강이 서너 시간씩 있어서, 붕 뜨는 시간에는 자연스럽게 남자끼리 몰려다니면서 시간을 때웠다. 운동보다는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주로 PC방에 가곤 했는데, 10명이 가면 5대 5로 나누어 할 수 있는 게임이 있어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꼭 10명을 맞춰 가는 것이 중요했다. 


다른 친구들은 대학교에 와서 게임에 입문을 했는데,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하던 게임이고, 재능도 있어서 단번에 ‘게임 최강자’ 칭호를 얻어냈다. 남자들 사이에서 게임 잘하는 것은 꽤 큰 능력이라, 순전히 게임으로만 학교 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동기들과도 많이 했지만 선배들이 같이 게임하자고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학교 안에서는 상하관계가 엄격하지만 게임 안에서는 잘하는 사람이 형이다. 거의 친구처럼 재밌게 게임을 하고 나면 선배들이 항상 맛있는 밥과 술을 사줬다. 

 

당시 우리가 하던 게임은 전국적으로 대유행이어서(지금도 인기가 많다) 각종 대회가 많이 열렸다. 우리 과에서 게임 좀 한다는 사람들이 빠질 리가 없었다. 교내에서 학번끼리 대항전을 하기도 하고, 총학생회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대회를 함께 참가한 사람들 사이에는 일종의 전우애가 생긴다. 우리 5명이 힘을 합쳐서 상대 5명을 제압하는 게임인데, 각자 맡은 역할이 달라서 팀워크가 중요하고, 다양한 전략을 상황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컴퓨터 속에서 전쟁을 치르는 것과 다름없으니 게임을 마친 후에는 자연스럽게 가슴이 뜨거워지며 우정이 깊어지는 것이다.

 

게임으로 뜨거웠던 시간도 한 때고, 졸업을 하고 각자의 일을 하게 되면서 함께 놀던 날들은 추억이 되었다. 인간관계가 나이가 들수록 점차 넓고 얕아진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친했던 친구들도 오랜만에 만나면 딱히 할 말도 없고 어색하기만 하다. 하지만 게임 전우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같이 사선을 넘나 들었던 친구들과 형들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얼굴만 보면 그때 생각이 나며 무척 반갑다. 반갑게 인사하고 나면 처음으로 듣는 말은 항상 같다. "아직도 게임 많이 하냐?" 어지간히 많이 하긴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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