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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호 May 31. 2020

적당한 비관론자의 미래는 밝다

세상에는 수많은 문제가 있고, 각자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어떤 문제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이 본인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낙관론자다. 그들은 문제가 결국 올바른 방향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문제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이기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관론자다. 그들은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악화될 것이라고 믿는다.


비관론과 낙관론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선택할 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비관론자는 문제 해결에 소극적일 것이고, 낙관론자는 역경에 부딪혀도 쉽게 굴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타인의 비관론과 낙관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국가의 수장이나 어떤 분야의 저명한 인사는 한 마디만으로 세계인의 행동 양식을 변화시킨다. 


비관론의 근거에는 동의한다. 세상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다. 다만 결과는 낙관론에 동의한다. 문제는 결국 해결될 것이다. 세상 사람은 모두 이기적인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적당한 수위의 비관론을 제시하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지 않을 정도의 비관론은 그 사람을 변화시켜 좋은 결과를 만들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의대생 시절 얘기다. 신입생이 들어오고, 같은 동아리가 되어 몇 개월 시간을 보내다 보면 느껴지는 게 있다. 경험에서 비롯된 능력인데, 이 녀석이 앞으로 본과에 가서 유급을 할 지 안 할 지 신호가 온다. 그런 친구들에게는 모두가 듣는 자리에서 반농담으로 '너는 무슨 짓을 해도 유급하겠다'라고 말한다. 그 말은 들은 친구는 매우 당황하며 절대 아니라고 답한다. 결과적으로, 그 말을 들은 후배 중에 유급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후배 중 누구도 나에게 찾아와서 내 말이 틀렸다고 하지 않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웃으면서 '잘 돼서 다행이다' 말했을 것이다. 내 비관론의 목적은 어두운 미래를 알려주는 것이라 아니라, 후배의 진급을 기원하며 행동이 변화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의도적인 비관론을 통해 낙관적인 미래를 꿈꿨던 것이다. 


암 환자에게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치료가 잘 진행되고 있음에도 걱정에 가득찬 환자가 많다. 암 환자에서 스트레스의 부정적 영향은 정확히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에게 '치료 잘 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먼저 하지만, 효과가 없을 때가 많다. 그 때는 오히려 '걱정이 많은 사람일수록 치료 결과가 안 좋습니다'라는 말로 환자의 적극적인 개선 의지를 끌어내기도 한다. 


이 방법은 최근 코로나19 관련 메시지에서도 많이 보인다. 감염자 100만명이 될 수도 있다는 말 속는, 국민과 국가가 좀 더 노력하게 만들어 감염자가 최소화되기를 바라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국민들은 항상 경고만 하는 리더가 미울지 몰라도, 리더에게는 비난을 감수하고 던질만한 최선의 메시지인 것이다.


이 방법은 위험 부담이 적다. 실제로 나쁜 결과가 나오면 미래 예측을 잘하는 사람이 된다. 반대로 좋은 결과가 나오면 승리에 도취되어 과거의 비관론은 잊혀진다. 위험 부담 면에서는 모두가 비관론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업적을 인정받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결과가 나오고 나서 그때 이런 의도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로우-리스크, 로우-리턴의 방법이다.


이 방법은 '적당한' 비관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렵다. 선배가 후배에게 '너는 무슨 짓을 해도 유급하겠다' 아무 맥락 없이 말하면 효과가 없다. 학생회에 신고 당하거나 치고 받고 싸우지 않으면 다행이다. 상대방과 현재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비관론이 미칠 영향에 대해 깊게 고민한 뒤에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수위 조절도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코로나19 감염자가 될 것입니다'라는 비관론은 국민 모두의 협조보다는 무정부 상태같은 역효과를 불러오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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