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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May 29. 2020

맥주와 사랑에 빠지다

첫 음주는 스무 살이 된 1월, 고등학교 친구들이 기획한 MT에서 경험했다. 상당히 긴장된 상태로 인생 첫 술을 마셨는데, 그 이유는 술에 매우 약한 가족력 때문이었다. 특히 아버지는 그 정도가 심각하여 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호기롭게 와인을 몇 모금 드셨다가, 돌아오는 내내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속을 비워 내신 경력이 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랐으니 술에 대한 경계심과 공포가 있었다.

 

잔뜩 긴장해서 마신 술은 우선 맛이 더럽게 없었다. 소주든, 맥주든, 뭘 섞어서 마시든 똑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 몸이 예상외로 술에 어느 정도 내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얼굴이 심각하게 시뻘게지는 부작용이 있어서, 대학교에서는 친구들이 ‘성냥’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신입생 때 모임에서 술을 마시고 일어나면 옆 테이블에 있던 선배가 "아니 누가 술을 이렇게 먹였어!" 할 정도였다. 어떤 때는 성냥 부작용을 스스로 이용하여 힘든 술자리에서 만취한 척 빠져나오기도 했다.  

 

대학교에 들어왔더니 술자리가 정말 많았다. 특히 밴드부 관련된 술자리가 많았는데, 매주 금요일은 부원 전체가 모여서 마시고, 그 외에도 연습하다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소모임이 주 2회 정도 있었다. 술을 먹다 보니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음주를 즐기는지 알겠더라. 술 자체의 맛 때문이라기보다는, 취했을 때의 그 알딸딸하니 좋아지는 기분이 계속 술을 찾게 만드는 원인인 듯했다. 열심히 이 술 저 술 먹다 보니, 나름의 술 취향이 생기게 됐다.


당시 밴드부는 1학년에게는 돈을 걷지 않는 규칙이 있었는데, 11년도에는 1학년이 유난히 많이 가입을 했었다. 술은 먹어야 되는데 돈은 없으니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최대한 빨리 술을 먹어서 누구든 만취한 사람을 들여보내는 전략이 실행됐다. 생일이 6개월 남은 사람에게 다짜고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면서 생일주를 먹이거나, 아무 이유 없는 가위바위보를 통해 진 사람이 사발식을 하기도 하였다. 술 값이 더 나오는 거 아닌지 선배에게 물어보니 안주 값이 덜 나와서 무조건 이득이라는 현답이 있었다.


극한의 만취를 추구하는 음주만 하다 보니 무조건 소주만 먹게 되었는데, 드물게 다른 술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술자리가 4차나 5차까지 가게 되면 시간은 새벽 3시가 넘고 남은 인원이 거의 없게 되는데, 그때가 선배들이 맥주를 먹으러 가자고 하는 순간이었다. 술이 강한 편은 아니라 그때까지 살아남기가 참 힘들었는데, 어쩌다 한 번 살아남아서 먹은 맥주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맥주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맥주의 맛을 알기 전에는 모임이 있어야 술을 마시는 수동적인 음주를 했다면, 맥주를 알고 나서 적극적인 음주자가 되었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난 후에는 꼭 한 잔 하고 헤어지는 버릇도 생기고, 단골 생맥주집도 생겼다. 그때는 어찌나 젊었는지, 술을 빨리 많이 마시는 게 친구들과의 큰 경쟁 거리였다. 앉은자리에서 맥주를 3천 cc 넘게 먹고 화장실에 소변만 네 번 보러 가기도 하고, 좋은 성적은 못 거뒀지만 맥주 빨리 마시기 대회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맥주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다. 큰 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 계속될 듯 하다. 다만 과거에는 젊은이의 패기로 열렬히 사랑했다면, 지금은 10년 가까이 지난 연인답게 현실적인 사랑으로 이어 나가고 있다. 내일 일정을 체크하고, 불룩해지는 뱃살을 경계하고, 지갑 사정까지 걱정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맥주와 거리를 둬야 하는 날들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때려 붓던 시절이 그립긴 히지만,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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