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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Jul 25. 2020

코로나 시대의 돈과 사회 이야기

올해로 3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2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세상만사 어떤 일이든 돈을 빼고 논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깨달음을 얻고는, 돈과 사회에 대해 뭘 좀 아는 사람이 됐다는 착각을 해버렸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는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최근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몇 차례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있었고, 이제는 돈과 사회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지 않았나 싶다.


처음 눈이 떠진 계기는 재난지원금 때문이었다. 결국 전 국민에게 지급되었지만, 처음에는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하여 소득 하위 70%에게만 준다는 말이 있었다. 그 소식을 듣고는 일말의 의심 없이 재난지원금을 받겠구나 했다. 나 정도면 가난한 건 아니지만 부자도 아니라서,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웬걸, 후속 기사에 적혀있는 수령 기준을 보니 1인 가구 하위 70%의 기준은 내 생각보다 훨씬 낮았다. 좀 더 찾아보니 나의 소득 수준은 1인 가구 상위 10% 안으로 들어갈 정도였다. 알고 보니 부자였던 것이다.


오해의 이유를 설명하자면, 병원 안에는 나보다 돈을 적게 받는 의사가 거의 없다. 나는 경력도 짧고, 일과 배움을 병행하는 포지션이니까 당연하다. 그렇다고 의대 교수들이 엄청난 연봉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병원 밖으로 나가 잘 풀린 의사들의 소득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준이다. 주변에 워낙 고소득자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를 중간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가난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상위 10%인 나도 항상 돈에 허덕이는데, 진짜 중간에 위치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진짜 가난한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다음 깨달음은 전혀 모르고 있던 사회의 약한 고리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찾아왔다. 우리 사회는 내 생각처럼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리 강한 사슬이어도 하나의 약한 고리가 있으면 끊어질 수 있는데,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약한 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게 코로나로 인해 드러났다.


전국 각지의 집단 감염 사례는 항상 사회의 약한 고리에서만 발생했다. 사이비 종교라고 손가락질당하던 신천지는 전국에 30만 명의 신도가 있었고, 거부당했지만 120억 원을 현금으로 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사회가 지켜주지 못한 약자들을 신천지가 흡수했고, 이들을 이용하여 엄청난 돈을 축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태원 클럽 감염에서는 성소수자가 조명됐고, 우리 사회의 그들에 대한 인식을 확인했다. 수많은 기사에서는 '게이 클럽', '동성애 성향' 등의 차별적 단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했고, 국민들은 '확진자=게이' 낙인을 찍기 바빴다. 드러난 인식으로 봤을 때, 성소수자는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조차 없는 완벽한 사회적 약자였다.


국가는 익명 검사를 도입하여 이태원 감염을 잡아보려 했지만, 클럽에 방문했던 인천 강사의 거짓말로 인해 방역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왜 직업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을까?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직장에 알려지면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에게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거짓말의 원인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인천 강사의 거짓말은 결국 코로나를 널리 퍼뜨렸고, 사회의 또 다른 수많은 약한 고리를 확인하게 해 주었다. 나라에서는 아프면 일을 며칠 쉬라고 했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프다고 쉴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택시기사는 부업으로 돌잔치 사진사가 됐고, 콜센터 직원은 쉬는 날에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열이 나고 기침이 나와도 단 하루의 휴식조차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삶이었던 것이다.


이들의 일터는 또 어떤가. 국가에서 정한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은 일터였다. 고용주가 노동자의 건강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일 거다. 일하겠다는 가난한 사람은 널렸고, 아픈 직원은 바꿔버리면 그만이니까. 결국 스스로 건강을 지켜야 했을 텐데 몸을 많이 쓰고 말을 많이 하는 일이니만큼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결국 코로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몸짓이 되고 말았고, 이 몸짓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정리하자면, 코로나 시대에 와서 느낀 점은 이 사회에는 내 생각보다 사회적 약자의 비중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 가족,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아이유는 모두 실존 인물이었고, 그 숫자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그리고 이런 약자들은 폭우가 오면 반지하부터 물이 차듯이 코로나 같은 국가 재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존재들이었다.


이들의 존재가 만천하에 드러난 이후, 수많은 사회적 의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각 의제마다 수많은 이해 관계자들이 달라붙어 토론하고, 때로는 투쟁한다. 과거에는 이런 토론과 투쟁에 무관심했었다. 지금은 나를 비롯하여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 관심이 생기고, 의견이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의제들이 어떻게 해결될지는 모르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활발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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