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틴 에덴> 리뷰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나이, 국적과 같은 일종의 환경보다 사랑, 그 마음의 힘이 더 강력하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실제로 띠동갑, 아니 그 이상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 후 행복하게 사는 커플들도, 지구 반대편에 살았지만 물리적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고 사랑을 이어가는 커플들도 존재하니 이 말이 영 틀린 것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이 '사랑'을 '계급'의 영역으로 가져온다면? 사랑은 계급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영화 <마틴 에덴>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마틴 에덴>의 주인공인 마틴 에덴은 11살때부터 배를 타며 돈을 벌었던 선원이다. 제 1 직업은 선원이지만 그가 선원 일만 하며 지내진 않는다. 때로는 공장 노동자로, 때로는 선원으로. 그는 하루하루 먹을 입을 위하여 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진즉에 그만뒀으며 말보다 주먹이 먼저 앞서는, 조금은 거칠다고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괴롭힘을 당하던 한 상류층 남자를 구해주게 되는데,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남자의 집에 초대를 받는다. 그는 그곳에서 '엘레나'를 만나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녀가 그린 그림, 그 옆에 놓여져 있던 보들레르의 시집, 그리고 그가 평생에 만나본 적 없었을 상류층에게서 묻어져 나오는 우아함과 기품.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그가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당신처럼 생각하고 싶고, 당신처럼 말하고 싶고,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
그녀에게 바쳤던, 마틴 에덴의 고백이다. 마틴은 그녀를 사랑함과 동시에 존경하고 동경했던 것이다. 그는 이 고백 그대로 그녀처럼 되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헌 책방에서 책을 사서 읽고, 서툰 문법을 공부하기 시작하고, 까마득한 어린 시절 그만두었던 학교도 다시 가보려고 한다. 그렇게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꾸던 그는, 이윽고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된다.
이후로 그는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일도 그만두고 글쓰기에 매진하며, 잡지사에 집요하게 글을 보낸다. 하지만 그의 글은 계속해서 반송될 뿐이며, 이와 동시에 엘레나에게는 마틴과 헤어지라는 가족의 압박이 계속해서 가해진다.
결국 마틴과 엘레나는 이별을 하게 된다. 그 둘의 이별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마틴의 계속적인 실패도, 엘레나의 가족도 아니었다. 그저 표면적인 이유였을 뿐, 근본적인 이별의 원인은 분명히 둘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었던 벽과 같던, '계급'이었다.
"당신처럼 생각하고 싶고, 당신처럼 말하고 싶고,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
마틴은 이렇게 말하고 실제로 노력했으며, 심지어 가능성도 있었다. 타고난 머리도 좋았고 인문학적, 사회적 통찰력까지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내내 마틴과 엘레나 사이의 간극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보고 겪은 삶을 써내려간 마틴의 글을 엘레나는 '희망이 없다'라며 이해하지 못한다.
엘레나는 마틴이 학교에 가기를 줄곧 바라고 권유하지만, 지금 마틴의 상태로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학교는 마틴이 가진 '재능'을 인정해주지 않고, 그 당시 교양이라고 인지되던 '지식'만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엘레나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마틴은 수모를 당하며, 사창가와 가까우며 술에 취한 사람들이 가득한 마틴의 놀이터에서 엘레나는 공포심만을 느낀다.
자라왔던 공간의 차이가 그들 사이에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의 간극을 만들었으며, 이 간극은 둘의 마음만으로는, 둘 사이 깊은 내면에 통하던 무언가로는 건너갈 수 없는 너비를 가지고 있었다.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다'
앞서 이야기했던 나이와 국경을 뛰어넘어 사랑의 결실을 맺은 커플들은, 어쩌면 나이도 국적도 달랐지만 단 하나, '계급' 만큼은 같았을지도 모른다.
살아온 시간보다, 물리적 공간과 공유할 수 있는 시간보다, 사용하는 언어보다, 경제적 위치가 사람의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기엔 <마틴 에덴>이 영화가 아니냐고?
<마틴 에덴>은 작가 잭 런던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어쩌면 현실에 신데렐라 스토리는 없고, <마틴 에덴>만이 존재할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