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 가즈오 이시구로
2017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 문학상 연설집이 민음사 출판의 ‘쏜살문고’에서 나왔다.
아주 귀엽고 컴팩트한 사이즈에, 예쁜 디자인, 내지 종이 재질도 좋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재생지 느낌의 재질이다)
가격도 저렴하니 쏜살문고 시리즈는 참으로 매력적인 것 같다.
구하기가 조금 어려운 것이 단점인데, 특히 동네 서점에 은근히 없다... (ㅠㅠ) 왠지 동네 서점에서 사고 싶었던 책인데.....
아무튼 책이 굉장히 얇기 때문에 금-방 읽었다.
가즈오 이시구로가 본인의 인생에서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준 순간들을 담담하게 말해나가는 연설이었는데,
그 영향을 준 ‘순간들’은 굉장히 찰나이며, 그의 말에 따르면
“종종 사소하고 추레해 보이는 순간들”이다.
소파에 누워서 듣던 노래 속 가수의 목소리, 아파서 누워있던 침대 옆에서 우연히 집어서 읽게된 책, 견학으로 가게 된 박물관,
그가 어떠한 영감을 얻고자 의식적으로 듣고, 읽고, 갔던 게 아닌
우연히 듣고, 읽고, 갔던 것들이 작가로서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그 전환점들이 쌓여 그의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그의 위대한 작품들이 그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만들었다.
“한 작가의 경력에서 중요한 전환점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종종 사소하고 추레해 보이는 순간들이 중요한 전환점 역할을 합니다.
이런 전환점은 조용하고 은밀한 계시의 섬광입니다.
그런 순간은 종종 멘토나 동료의 인정도, 팡파르도 없이 그냥 옵니다.
그 순간이 온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순간은 당신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말 테니까요.”
(본문 중)
소위 ‘망생이’에게 심심하고도 따스한 위로를 주는 말이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순간들도 돌아보면 얼마나 시시했던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도, 글을 쓰면서 느꼈던 행복감을 인지했던 순간도 얼마나 사소했던가.
생각해보자면 어떠한 결과도 즉각적으로 주지 않았던 그런 순간들이었다.
다만 그에게서 배우는 건 “꾸준함”이다.
영감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써내는 것.
연설집에서 그의 좌절이나 절망, 고민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겠지?
아직도 알 수는 없다, 나의 순간들이 조용하고 은밀한 계시의 섬광일지, 그저 지나가는 한 때의 욕망일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써내려 가야할지, 내가 해야 하는 일들에 더 집중을 해야할지.
멈추었던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지만... 어쨌든 책은 좋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덕후이기 때문에!
“그 즈음 나는 ‘오직 책을 통해서만’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얻을 수 있다면 소설을 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형태의 매체가 줄 수 없는 고유한 어떤 것을 제공할 수 없다면, 소설이 어떻게 영화나 텔레비전의 강력한 힘에 맞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p. 26~27)
그의 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상상의 세계가 너무 좋다.
앗, 그리고 김남주 번역가님의 번역과 글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