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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쑤 Nov 23. 2018

길을 잃은 너에게 전하는 이야기

이 세상 모든 인턴분들을 향한 꼰대 정신 한 스푼을!


::: 내게도 '인턴'직함을 달고,

미생에 나를 대입하며 살아갈 때가 있었다. :::

 하루에 꽤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에서 한 공간을 같이 쓰고 인사를 하는 좋은 인연들이 동료라는 이름 아래 두 느낌으로 나뉜다. 함께 으쌰 으쌰 한 배에 올라타 서로 힘든 일이 있으면 다독여주고, 좋은 일에는 같이 기뻐한다. 다른 한 편에선 우리 회사를 함께 경험하고 싶어 서로 약속된 시간 동안만 같이 하는 사이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대한민국 그리고 미국 사회에서 '인턴'이라는 직함을 달고 일한 적이 있었다. 괜히 지나가는 말에도 서운하고 눈치가 보이며 늘 가시방석과도 같은 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벅차 했었다. 한 번은 엄청 바빠 보이는 직원이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와 함께 부대찌개를 먹으며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캐묻던 분이 계셨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선배라 불러야 맞지만, 사실 선배니 오빠니 하는 호칭은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쓸 때 더 의미가 있기에 그분에게는 '선배'라는 존경이 담긴 의미의 호칭을 쓰고 싶진 않다. 그리고 바쁘게 미팅 자리에 가면서 그분은 나에게 온 사무실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인턴아, 저 프린트된 것 좀 가져다가 내 책상에 올려다 줘."


 세상에, 멀쩡한 내 이름을 놔두고 '인턴아'라니. 이건 인권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한 것이며, 이름을 모르면 차라리 부르질 말던가 시키질 말던가 그걸 그렇게 목청껏 인턴 아라고 지칭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 순간 이후로 뭔가 나는 나라는 자아 대신 회사가 잠시 씌어준 인턴이라는 이름과 직함로 숨쉬고 있다는 불쾌함이 나를 집어 삼켰다. 그 후 나는 결심했다. 내가 언젠가 신입이나 인턴을 받으면 그 상대가 낯설어하지 않게 누구보다 소탈하고 편안하게 대해 줄 것이라고 말이다. 항상 이름을 불러주고, 그때의 나처럼 한없이 불편하고 다가가려고 해도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인턴'직함이 주는 방패를 벗어던지고 대할 것이라 다짐했었다. 내가 존중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마음의 벽을 허물수 없는 한계를 헤아려주자고 말이다.


::: 스치는 인연이 될 수도,

다시 반갑게 맞을 수 있는 인연이 될지도 :::

 인간이 간사하게도 자신의 그런 굴욕은 까맣게 잊고, 내게 주워진 임무를 잘 해내기 위해 하루하루 발버둥 치듯이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갔다. 미안하게도, 매일같이 출근하는 사무실에서 인턴기간이 끝나갈 때까지 밥 한번 제대로 같이 먹지 않았다. 고백컨데 부모님 밑에서 예쁘고 귀하게 자란,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이 배우고 똑똑한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는 존재들에게 너무 무관심했었다. 그들은 나와 업무가 겹치진 않았다는 변명이 무색해졌다. 그들은 기회가 되면 이것저것 내게 질문하는 것들도 늘 내가 바쁜지 바쁘지 않은지를 제일 먼저 살피고 있었다.

 사실 나는 인맥관리에 큰 욕심이 없다. 나와 맞는 인연에게만 계산하지 않고 잘해주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그 이상의 인간관계에 있어선 타인에게 누만 끼치지 않으면 된다는 주의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인턴분들에게 나의 인기와 나란 사람에 대한 호감을 얻기 위한 욕심은 꿈도 꾸지 않는다.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서로 존중하며 잘 지냈다는 기억으로 남는 것이 나의 목표인 셈이다.


 :::  꼰대 발령 주의보 :::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지나고 이젠 꽤 많은 인턴분들이 나와 안면을 튼 후 그렇게 회사를 떠났었다. 늘 회사에서 일을 하는 정규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차피 나갈 사람에게 정을 주지 말자는 마음은 먹은 적이 없다. 내게 주워진 일이 바쁘다는 시답잖은 핑계로 해외 출장 몇 번 갔다 오고, 정기 장기 휴가에 외부 미팅 몇 번 갔다 오면 늘 자리했던 인턴분들이 다른 분으로 바뀌어 그 자리를 채워주셨다.

  오늘 문득 그렇게 여유가 나지 않는 하루였지만, 이렇게 이 분들에게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에 대해 궁금해졌다. 순수하게 그들이 어떤 생각과 플랜을 그리고 있는지가 알고 싶었다. 나는 정말 몇 시간을 붙잡고 내가 살아온 이야기, 나의 가치관들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면서 그들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우선 업무시간이라는 시간의 한계가 있었다. 행여나 "나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꼰대처럼 보일까 나의 이야기가 조심스러웠다. 운이 좋게 나의 바람이 맞아떨어졌는지 오늘 우연히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 주시는 인턴분들과 타이밍이 맞아 20분의 break time을 갖고 그들의 고민을 언뜻 캐치할 수 있었다. (내가 평소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충분히 이런 시간과 관심들을 더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 자책했다.) 인턴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헤쳐나가고 준비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원하는 눈치였다. 그들을 붙잡고 나의 비전과 생각과 가장 중요시 여겼던 가치를 하나씩 차근히 이야기해줄 수 없어 퇴근 후 노트북을 켜게 되었다.


삶에 있어서 정답이 없듯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철저히 나의 경험을 토대로 한 삶의 방향성이다.

취업의 이야기에도 역시 정답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들 중 취준 기간에 무엇보다 내게 절절히 진심으로 다가왔던 콘텐츠는 취업의 실상을 담은 블로그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도움을 받은 만큼 나도 이젠 누군가에게 베풀 차례가 온 것임을 직감한다.

내가 회사를 나오고 아무리 현재가 팍팍하고 힘들어도 단 한순간도 후회할 수 없게 만든 이유

::: 직업선택에 있어 나의 기준은

그때도 지금도 변한 적이 없다. :::

 취업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가치는 어차피 9시부터 6시까지 나의 대부분의 젊고 아름다운 날들을 직장에서 보내야 한다면 그 시간이 누구보다 가치 있게 쓰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쌓은 시간들의 합이 단순한 연차로 대변 대지 않길 바랬다. '나보다 배의 시간을 더 많이 일한 사람들보다 더 큰 시장 경쟁력과 가치를 가질 수 있으려면.'이라는 생각을 저변에 깔고 직장과 직군 그리고 직업의 환경을 선택했다.

 내가 몇 년 전의 나의 모습에 대입해서 현재를 그려보자면 대기업에 있었고, 방송국에 있었다면 오늘 지내고 보내야 했던 하루는 적당히 편안하고 안락하게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이 회사의 기로에 있어서 일종의 이미지는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외부와 커뮤니케이션하고 매 순간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내리는 모든 것들은 현실과 미래를 타협한 가장 최선의 타협점으로 계속 안고 나아가야만 하는 상황에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나는 멘탈 관리, 기분 관리, 언행 관리, 컨디션 관리가 중요하다. 내 연차로 따졌을 때 절대 할 수 없는 경험과 배움을 하는 대신 정말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집중력 있게 일한다.

 그래서 나는 오독에 쌓인 자기 평가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시선들을 무릅쓰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현재 쌓고 있는 포트폴리오와 세상에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내 오만한 자만감이 영 독만이 아니라는 반증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정해보자. 미국 시장에서 나를 한국 시장에서만 일한 경력이 있는 5년 차 직장인, 7년 차 직장인과 같은 면접장에서 같은 포지션을 두고 오퍼를 했을 때 나는 그 경력만큼 값지고 귀한 다양한 시장을 represent한 백그라운드가 있다는 강점이 있다. 경력보다 중요한 시장의 수요에 충족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경제의 규모에 따라 돈이 상대적으로 훨씬 덜 도는 한국 시장만을 타겟팅한 decent한 미국 현지의 job이 내가 일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내가 원하는 때에 언제든 open되어 있을 확률은 아주 낮다. 

 그래서 나는 동남아와 일본과 중국 시장을 통틀어 '아시아' 시장에서 일한 백그라운드를 가질 수 있는 이 회사에 메리트를 느꼈다. 즉,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 시장도 잘 알지만 동시에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싱가폴, 중국, 일본 등 브랜드들과 빅에이전시들과 다이렉트로 커뮤니케이션하며 그 시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고의 폭이 넓은 점을 꼽을 수 있다.


::: 회사 이름보다 나란 브랜드가 자랑이 되는 사람 :::

 언젠가 하는 것이 결혼이라면 경단녀가 되기 싫어서 한 선택이 국내나 해외에 당장 나가서도 그 경력으로 내 삶을 회사에 끌려다니지 않고 on, off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지금의 회사다. 그 결과 인플루언서 마케팅 그리고 동남아 시장과 아시아 시장을 커버하고 미국의 시장까지 함께 involve하는 나의 롤이 썩이나 만족스럽다. (물론 회사에 많은 불만이 폭발해버리는 시기도 꽤 자주 찾아오고, 나도 직장인이기에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산다는 말에 늘 공감하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다.)

 불현듯 스치는 생각의 끝엔, 나는 단 한 번도 나의 명함을 주며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우리 회사 소속 내 이름을 말하면서 우리 회사 이름을 자랑하듯 힘주어 말한 적이 없었다. 나의 소속은 나의 자랑이 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우리 회사와 나 자신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현재를 최선을 다해, 혹은 원 없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지금의 시간이 모여 나의 미래를 보다 더 가치 있게 만들 것이란 확신 때문이다. 나의 미래가 지금보다 더 경쟁력 있는 사회인으로 완성하기 위함이다.


 지금 이 순간도 취준생분들, 인턴을 희망하시는 분들, 그리고 현재 인턴이나 비정규직의 상태로 자신에게 꼭 맞는 길을 찾고 계시는 분들에게 주제넘게 말씀드리고 싶은 진심이 있다. 

오늘이 내일의 나를 보다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시간들로 가득 찰 수 있는 직장을 찾길 바라본다. 그리고 이 절절한 진심이 부디 꼰대 중의 한 명이 이야기하는 '내가 그랬으니 너도 그러면 된다.'는 일반화로 비치지 않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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