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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쑤 Oct 20. 2018

한국인이 꿈꾸는 코리안드림

인플루언서와 셀러브리티 에이전트, 거절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다.

::: 자랑스럽지 않은 고백 :::

  슬프게도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베푸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세상이 정의한 착한 사람들처럼 먼저 돕는 것에 익숙지 않았다. 모든 것은 기브 앤 테이크라는 관점에 젖어있었다. 먼저 봉사활동도 하고, 기부도 하고, 같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회임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행동은 늘 나중으로 미루면서 나는 철저히 냉소주의를 띄고 있었다. 모두가 윈윈 한다는 판단이 들 때 나는 움직였고, 내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에서는 60시간의 봉사활동이 나에게도 losing game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그 시간을 채워나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캐나다에서 혹독하게 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 동안 내가 정신승리에 가까운 독기로 버텨내면서 되새긴 결심은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를 도울 것이었다. 

 캐나다에서 나만 유일하게 영어도 이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 모르는 아시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조건 없이 늘 이해해주고, 신경 써주고, 잘해주고, 좋아해 주고, 챙겨주고, 위해주는 이 환경에 있어서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나의 철저한 give and take 철칙에 따르면 그때 내가 받은 격려와 서포트가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는 큰 교훈이 되었다. 한국에 막 돌아와서도 내가 누군가에게 owe 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낄 만큼 누군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아무리 모자란 것 없이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지만 내 나라, 나의 터전이 아니기에 느끼는 공허함을 조금이라도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본인에게는 큰 힘이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역으로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을 조건 없이 지지하고 돕고 싶었다. 내 도움이 얼마나 크게 작용할 수 있는진 모르겠지만 처음 이 회사를 입사했을 때 내가 늘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짐인 한국에서 있는 외국인을 내가 받은 것처럼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설렘이 나를 흥분시켰다.

호주와 한국문화를 잇는 호주사라라는 브랜드를 통해 호주출신의 가수의 앨범을 프로모션하고 호주대사관과 문화교류의 차원에서 좋은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 직업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 :::

 사실 나는 누군가를 돕고 있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그냥 나의 일이자 해야 하는 임무일 뿐이다. 많은 소속사들의 콜을 받았지만 1년쯤 되는 나의 적극적인 구애에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감사한 호주사라는 나와 함께 일하고 있다. 계약을 논의하고, 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나라는 사람과 우리 회사에 대한 신뢰와 인프라가 중요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계약서 이후다. 실제로 인플루언서와 브랜드와 함께 일할 때 나의 역할이 얼마나 '나'라는 존재가 인플루언서로부터 신뢰를 얻는지에 나는 가장 큰 신경을 쓴다. 그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새로운 대안 제시로 대책을 만들고 커뮤니케이션 루트를 투명하게 하는데 집중하다 보면 한참 정체되어있던 그들의 팔로워 수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팔로워 수는 급증한다. 물론 팔로워 수의 증가와 함께 브랜드의 요청과 제안도 함께 따라온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운다. 돈을 벌 때와 벌지 않을 때, 구독자가 늘어날 때와 늘지 않을 때 늘 변함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유튜브에 대한 확신과 자신의 채널에 대한 열정 그리고 팔로워가 크든 작든 가리지 않고 항상 상대를 배려하고 위해주는 마음씨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는 그녀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고 다가온 기회에 현명한 선택을 위한 서포터에 불과하다.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는 철저하게 각자의 롤에 프로페셔널할 것을 암묵적으로 해내고 있으며 이는 팔로워 수, 캠페인 매출 금액 등 숫자로 잔인하게 성공적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호주사라가 늘 대견하다. 나와 함께 일한 후로 팔로워도 일도 늘었다는 이야기를 인플루언서들한테 직접 들을 때 참 뿌듯하다. 


 인플루언서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그 뿌듯함을 이기는 한마디는 "너 없으면 안 돼." 란 말이었다. 나와 함께 성장하고 싶기 때문에 우리 회사를 선택했다는 말에 나는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주워진 환경에서 최대치의 성과를 내야겠단 다짐을 한다. 이 짧은 한마디를 곱씹으며 다시 힘을 내고 그때의 여운과 감동을 곱씹어본다. 나는 정말 해준 게 없는데, 나는 나의 일을 한 것뿐인데 왜 이런 벅찬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은연중에 나는 사려 깊게 바라는 것 없이 누군가를 care해아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그런 케어가 나 스스로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를 대할 때 가리지 않고 진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인플루언서와 나의 신뢰는 돈독해진다. 

 ::: 비혼 주의자들에게 결혼을 결심하게 만들다. :::

 평일 오후에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 참여수가 6,456명을 기록하고 나는 쾌재를 질렀다. 홈쇼핑에 다닐 때 완판 시그널보다 더 큰 짜릿함이었다. 10개월 동안 비글부부를 향한 나의 서포트와 진심 그리고 각자의 영역에서 치열하게 노력하고 최선을 다할 때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나의 신념에 다시금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Parenting업계에서 비글 부부를 세련되면서 프렌들리 한 인플루언서로 각인시키고 싶다. 비혼주의자가 결혼을 결심하게 만드는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펼치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에 누구든 '비글부부'가 떠오를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욱 현명하고 치열하게 선택과 결단을 내릴 것이다.

  한국 그리고 특히 더욱 심한 일본은 케이스 스터디 사회라 클라이언트와 인플루언서들에게 처음 한 분야의 과정의 케이스를 잘 만들어놓고 그 체계를 쌓는데 집중하면 그리 많은 힘과 노고를 들이지 않고 서로가 편하게 안정적으로 자신의 일을 집중하면서 앞으로만 전진해나갈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우리 회사는 최고의 인플루언서이자 셀러브리티 Salsha를 성공적으로 런칭시켰고, 그녀의 유튜브 팔로워 수는 만 2년 만에 100만을 찍었다. 그녀의 이름을 건 애플리케이션과 영화 그리고 각종 방송활동들이 줄지어 활동했고 그 사이에 일곱 명의 신예 셀럽들이 그녀처럼 되기 위해 우리 회사와 일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처음 제안에 성사되지 않더라도 인연이 되고 함께 합이 맞는 인플루언서들과 셀럽들은 결국 시간이 지나고 우연한 보다 더 좋은 기회에 서로에 대한 신뢰감으로 관계가 진전된다. 그리고 인플루언서들과 셀럽들끼리 소문이 돌고 돌아 안 좋은 소문은 더 빨리 좋은 소문과 평판은 뜨끈한 온돌처럼 언젠가는 퍼지기 마련이다. 확실한 사실은 우리 회사든, 다른 동종 업계 혹은 비슷한 업계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건 인플루언서와 셀럽 즉 탤런트와 회사와의 합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 탤런트를 관리하는 매니저의 성향과 가치관이 얼마나 찰떡같이 잘 맞아떨어지는지에 따라 무리 없이 재계약을 할 수 있느냐, 혹은 재계 약전에 서로가 불만만 쌓이느냐 달려있다. 

 ::: 틈틈이 열심히 즐길 수 있는 당신이어야 한다. :::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 일이길 바랬는데 지나고 나도 참 별거였던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연습을 했다. 회사 내부적인 일이든, 외부적인 일이든 늘 문제는 생기긴 마련인 줄 알곤 있었지만 그게 다시 찾아오는 현실이 되면 버거워한다. 늘 반복되는 패턴이다. 외부에서 좀 잠잠하다 싶으면 내부에서 문제가 생기곤 하고 내부에서 좀 살만하다 싶으면 외부적으로 풀어야 하는 과제의 실마리들을 끙끙 앓고 있다. 문제 해결 능력 또한 일정한 방법론이 존재한다면 사람을 쓰는 대신 로봇을 쓸 것이다. 그래서 더 창의적으로 근본적인 대안책으로 고민하고 풀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차라리 외부보다 내부에서 잡음이 들릴 때 그리고 그에 따른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나는 더 살얼음판을 걷는다. 개인적으론 상대가 싫은 게 아닌데 주변의 피드백으로 쌓이고 쌓여 모진 소리를 해야 할 때 현명한 리더, 내가 본받고 싶은 리더는 어떻게 행동할까 떠올려본다. 

 너무 감사한 제안들 속에서 누가 봐도 바보 같은 좋은 기회들을 놓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능력치를 회사에만 가두기 싫어서 세상에 증명하고 싶은 욕심에 무모한 선택들을 이어가는 중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웬만하면 YES맨이 되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는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진짜 함께 일하고 싶은 좋은 사람이자 따르고 싶은 리더는 이 세상 모두가 아는 팩트 덩어리일지라도 거절을 마음 상하지 않게 그리고 상대를 위하는 자세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 인고의 시간의 가운데 나름의 일탈을 계획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혼자 음악으로만 끙끙 앓고 좋아라 했던 케빈 오를 영접했다. 금요일 저녁 그를 만나러 가는 길 시간이 넉넉하리라 안심했다. 하지만 미팅이 끝나고 가는 길에서도 내내 핸드폰을 붙잡고 보고를 하고, 공연장 앞에서도 캠페인 진행에 순서를 정하느라 식은땀을 뺐다. 그래도 밥은 제대로 먹어야 한다며 김밥을 서둘러 먹는데 괜한 보상심리에 더 비싼 김밥을 시켜두고 꼭꼭 씹어 삼키지도 못했다. 그렇게 힘들게 마음졸여 일하는 나에게 보상이라도 하는 듯 운이 좋게 1번을 받아 맨 앞자리에서 앉았다.

그리고 그 꿈만 같은 보상은 현실의 세계로 나를 데려오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공연 시작 직전 오늘 밤 자정까지 처리해야 하는 일에 도저히 지금 연락이 안 되면 펑크가 나서 그 뒷수습이 더 막막했다. 결국 그 좋은 1번 자리는 나보다 더 운이 좋은 누군가가 대신 앉았다. 그 대신 무대 옆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펼쳐 들고선 열심히 피드백을 주고있었다. 고스란히 케빈 오의 음악은 귀로만 듣고 그 귀한 시간 내 눈은 컴퓨터와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행사 담당자가 취재하러 온 미디어 관계자냐고 물었다. (하하하하) 그래도 그 와중에 감사했던 점은 케빈 오가 잠깐잠깐 쉬는 시간 대기실이 바로 내가 앉았던 테이블 앞에 있어 무대 뒤의 모습을 보며 실컷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엔돌핀 충전을 했다. 그의 어수룩한 한국말과 대비되는 완벽한 분위기 그리고 멋을 빼고 불러 더 멋있게 느껴지는 노래에 그날 밤은 혼자 설레서 자정까지 일을 해야 했지만 꿈만 같았던 금요일 밤이었다. 역시 좋은 일과 슬픈 일은 늘 똑같은 정량으로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사실을 증명이라고 하는 듯 그렇게 지겨운 내외부 직장 스트레스를 케빈 오와 함께하는 황홀한 60분으로 녹일 수 있었다. 

 금요일엔 이곳저곳에서 행사와 미팅들이 줄을 잇는다. 유투버들을 만나고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고 그리고 행사 진행을 하는 방법을 어깨너머 배우고 있다. 물론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인플루언스 아시아라는 우리 행사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아찔한 두려움에 하루하루 떨고 있다. 이런 마음과 동시에 지난번보다 더 완성도 있는 시상식이 되었음을 증명해 보이기 위한 자존심을 걸고 싶다는 승부사의 기질도 스멀스멀 자라나는 중이다.

 :::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 :::

 비글부부가 JTBC 랜선 라이프에 나왔다. 처음 출연 회차에 우연인지 감사하게도 마침 랜선 라이프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해서 더욱 값진 뉴스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이틀 내내 밤을 새우고 대책 회의를 하고 전화기를 붙들고 속이 타들어가는 보고와 조언 그리고 또다시 보고와 컨펌의 굴레에서 겨우 몸을 눕히고선 첫방 전 한시간만 눈을 붙이자는 게 다음날 아침이 되어 있었다. 개운한 그 날의 아침 핸드폰을 켜니 온 메신저에 대화창이 몇백 개가 들어와 있어서 깜짝 놀라 사색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늘 방송 후에 피드백 때문에 챙겨봤고 비글 부부도 나도 너무 오글거려서 딱 한번 본방 사수를 했다. 

 날로 자라나는 하준이가 점점 애기티를 벗고 어린이가 되어간다. 나보다 한 살 작은 비글부부를 보면 함께 일하는 파트너이자 때론 함께 고민하고 걱정하고 또 같이 전진해나가는 좋은 친구 같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게 새삼 존경스럽고 대단하다. 그들만의 육아 철학으로 그들만의 룰을 만들어 즐겁고, 유쾌하게 삶을 풀어나가는 비글부부를 보고 있노라면 커플 중엔 누구 하나 아까운 사람이 없이 귀하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서로를 품을 수 있는 그릇의 모양은 달라도 상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는 비슷해야 한다. 정말이지 이 세상을 마주하는 그릇의 크기는 비슷해야 그 시너지는 함께 일궈낼 수 있다는 개똥철학을 되새겨본다. 

 ::: 술자리 그리고 회식이 어색한 당신에게 :::

 게을러서 그리고 스스로 작품에 대한 욕심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유화 작품 하나 완성해두고선 다음 작품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신 비엔나에 가기 전에 우연히 좋은 기회에 VIP 전시회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다. 예술적 영감이 충분한 사람이라 여겼는데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사진작가나 화가의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노라면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와 카리스마가 나를 압도한다. 나는 예술가의 길을 걷지 않은 것이 나 자신을 좌절감에 빠뜨리지 않을 수 있었던 현명한 선택임을 깨닫게 한다. 

 보자 하니, 내 주변엔 참 잘 놀고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들 사이에서 꿋꿋이 술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더 망가지고, 알코올 없이도 한참 취한 것처럼 기분이 업되서 맞장구를 잘 친다. 지난 3년간 내 회사생활에서 회식은 너무 어색한 단어가 되어버렸고 술자리도, 술을 마시는 기회도 거의 없었다. 

 정말 우리 회사에는 회식이라는 단어가 없다. 누군가는 이를 서운해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회식이 없어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회사가 가진 아주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이 회식을 했다, 회식 때문에 다음날 늦게 일어났다, 힘들다 라는 소리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항상 우리 회사에선 회식의 정의가 뭘까? 생각해본다. 대표님이 한국에 오시면 일정 중 하루 점심에 팀원들과 함께 밥집에 가서 스페셜 메뉴 하나 더 시키고선 밥 뚝딱 먹는 것 정도가 떠올랐다. 그런 날도 없을 때도 있고, 그 이후에 항상 미팅이 있어 미안하지만 항상 밥 먹는 중간에 시간을 체크하고 다음 일정을 리마인드 해야 한다. 


 그래도 올해 초부턴 진짜 친한 친구들끼리 모였을 땐 기분 낸다고 몇 년째 무알콜 칵테일이나 코카콜라 제로를 고집하다가 맥주를 몇 모금 마시기 시작했는데 몇 달에 한 번씩 아주 취하고 싶을 땐 맥주 반캔이면 얼굴이 빨개지고 정신을 차리자고 스스로에게 여러 번 다짐을 해야 집에 무사히 찾아갈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시간이 얼마나 가는지, 배가 얼마나 고픈지 깜빡 잊고 빠져있지만 그 이후엔 늘 모든 신경과 집중을 다 쏟고 난 뒤라 너무나 무기력해진다. 그렇게 버겁게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좀 쉬자 싶다가도 다시 그 색감을 만들어내는 희열을 잊지 못해 주말엔 꼭 그림을 그려야지 다짐한다. 그림도 친구들과의 만남도 늘 나를 살아있게 하는 생산적인 활동 중 하나이다. 

 ::: 똑 부러지게 휴가를 잘 쓰는 법을 찾고 있습니다. :::

 일 년에 15일이라는 휴가가 주워지고 1년에 하루의 휴가가 더 생기는 복지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주말이나 공휴일에 일을 하게 되면 휴가를 더 얻게 되는데 일을 하는 법만 배우다 노는 법을 까먹어 휴가를 쓰는 게 겁이 났다. 휴가 가서도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우선 지금 주워진 일을 정리해두면 그때 가자, 그때 가자고 미뤄 두다 보면 일 년 전에 예약해뒀던 날짜가 다가와서 몸을 싣고 떠난다. 연초에 아무 생각 없이 휴가엔 일에서 온전히 벗어날 것이란 발버둥에 그냥 추석엔 모두가 쉬니 이를 악물고 일 년을 버텼는데 써야 하는 이번에 한참을 써도 휴가가 너무 남았다. 

 다시 찾은 비엔나에선 여전히 나를 감동시키는 거리와 작품과 분위기에 나는 또다시 매료되었다. 그냥 길을 걷다가도 문득 감동이 찾아오고, 감사가 찾아오고, 삶의 쉼표에 있어 괜한 여운을 비엔나 곳곳에 흘려두었다. 이 감정을 잊지않고 다시 찾아 올것이란 다짐과 함께 말이다.

  5년이 지나고 다시 찾은 부다페스트에서 그때의 나를 되돌아보니 참 애썼다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한 그 곳, 영어를 배우러 미국에 가야겠다고 지금까지 미루면 내 인생에서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뼈저린 그 때 그 곳에서의 결심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찾을 부다페스트에선 어떻게 달라질 내 모습이 되어 있을지 기대되었다. 


 휴가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나에겐 예외라 여겼다. 충분히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성취하면서 열심히 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아서 나답게 주말도 생산적으로 잘 보내고, 모든 것이 생각보다 그 이상으로 잘 되어가기 때문에 휴가는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여겼다. 쿼터별로 주위에서 아무 생각 말고 일본이나 어디든 훌쩍 갔다 오라고 이야기했던 조언이 스쳤다. 

 그 조언들이 그냥 나를 생각해주는 말이 아니라 진짜 휴가가 필요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란 생각이었다. 휴가를 다녀올 때마다 내가 휴가가 너무 간절하게 필요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해 준다. 아직도 연차를 반차를 그리고 휴가를 현명하게 써야 하는 법을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무작정 비행기표만 끊어대고 있지만, 머지않아 현명하게 나를 돌보며 일을 하는 time management에 settle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다면,

아시아와 할리우드를 잇는 일을 한다 대답합니다. ::: 

 JYP 엔터테인먼트 신사옥에서 JYP를 만났다. Uncle Russell을 한국에 초청하여 모든 일정을 함께 했는데 늘 유쾌하고 easy going 한 할리우드 힙합계의 거장이었다. 나는 연예인들과 일할 때 사실 얼마나 유명한지는 함께 지내면서 알게 되고 실제로 체감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차라리 나와 함께 일하는 연예인들과 인플루언서들이 현지에서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멋모르고 내가 편하니까 그들도 나를 편하게 대하는 장점도 있다. 그렇게 서로 맞팔을 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소식을 보다 보면 내가 생각한 클래스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 회사를 입사하기 한 달 전쯤 JYP 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이 sm, yg에 비해 한참 평가절하되어있는 것을 보고 며칠을 고민했다. 트와이스라는 이미 성공한 걸그룹이 나왔는데 아직 그 주식시장의 값어치는 이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움이 컸다. 그리고 JYP 엔터테인먼트 주식을 사기 위해 주식 계좌를 개설하고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내가 가지고 있던 용돈들의 절반을 거기에 넣었다. 워낙 최저가에 사서 잃을 것도 없었고 항상 올라가고 버티고 올라가고 버티기를 반복하다가 트와이스는 내 예상처럼 보란 듯이 한국과 일본을 제패하였다. 2년 동안 7배가 뛴 JYP의 개미투자자가 JYP를 실제로 만나 그가 treat 하는 organic cake과 주스를 먹는데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내가 본 그는 늘 발전하고 있는 딴따라이자 아티스트였고, 티브이의 이미지가 한치도 꾸밈없었다. 만일 박진영이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우리나라와 아시아가 아니라 전 세계 시장을 뒤흔든 지금보다 더 큰 물에서 더 큰 클래스에서 위치할 것이란 확신과 함께 말이다. 

::: 일과 우정 사이 :::

 누구보다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태국의 인플루언서 Both and Newyear는 늘 좋은 친구다. 일로써 만났지만 그들과 함께 일을 논의할 때 그리고 친구로 서로의 생일과 안부를 챙기며 함께 있는 시간은 나를 힘나게 한다. 똑같이 매일 쉽게 걸을 수 있는 서울도 그들과 함께면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속속들이 힙한 카페와 쇼핑 플레이스 그리고 새롭게 컬래버레이션한 브랜드들에 대한 뉴스를 귀신같이 찾아내서는 나와 동행한다.   한국의 문화와 한국의 것들을 셀링 하는 데에 이것저것 먼저 찾아보지 않아도 철저히 외국인의 관점에서 실시간으로 한국에 대한 어떤 것들에 매료되는지 속성 과외를 받는 기분이다. 그들과 함께 일과 우정을 동시에 나눌 수 있어 그 시간들이야 말로 제일 기다려지는 업무 중 하나다.

:::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인플루언서들 중에 태국에서의 팔로워가 80~90% 되는 탤런트들이 몇몇 있다. 그들을 태국에서 태국 지사의 동료들과 조우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괜한 엄마 마음이 들어 뿌듯하다. 참 감사하고 신기한 일이다. 동남아시아에서 내가 제일 좋아라 하는 태국이란 나라에서 나의 업무가 태국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문득 애틋함이 자라난다.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했다고 하면 4000여 명의 팔로워들이 참가하고 한국뿐 아니라 브라질, 남미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OPPA를 외치는 @boseok_e 와의 협업은 늘 즐겁다. 내가 관리하는 인플루언서들의 든든한 방패막이자 되려고 한다. 그들의 편에서 때론 진지한 조언도 나눌 수 있고 어려운 대화든 심각한 대화든 나는 내 소속 인플루언서들과의 통화나 미팅 이후엔 활기를 되찾는다. 너무 졸리고 피곤하고 머리 아픈 일들로 예민해져 있다가도 20분~30분 서로를 믿고 유쾌하게 해결점을 찾아가는 일이 내겐 비타민 같은 업무인 셈이다.

 ::: 오늘의 매일이 쌓여 내일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는 것 :::

 우리 회사 태국 지사에서 나의 talent 동균님의 태국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Gyunnee Channel을 론칭하였다. 너무도 빠른 시간 내에 영상 두 개 업로드하고 낸 성과라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로가 원하는 접점을 찾아주고 이를 계약과 그 이후에 성과로 한국을 넘어 세상에 증명해 보일 때 나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나를 믿고 마음의 문을 열어준 내 마음속엔 제일 최고 뷰티 유투버 Haley Kim도 face to face 한적 없이 한참 다른 시차에 살고 있지만 함께 일할 수 있어 진심을 눌러담아 감사한다.

 양측이 모두 supportive 한 존재로 나아가고 있다. 그 신뢰를 깨뜨리지 않고,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인플루언서들과 셀러브리티들에게 누가 뭐래도 꼭 필요한 존재로 남아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오늘도 목표로 한다. 물론 아주 화려하고 거창한 기회도 좋지만 지금보다 더 발전적으로 성장해나가는 것은 서로가 느낄 수 있다. 그 돈독한 신뢰가 하루, 하루가 지나고 그 시간들이 쌓여 더욱더 돈독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agent의 롤이라 감히 정의 내려본다. 


 대기업에 있을 땐 한국어가 쓰고 싶을 땐 한국어를 영어를 쓰고 싶을 땐 영어를 쓰고 싶다는 갈망이 컸다. 무작정 노트나 에이포 용지에 쉬는 시간이면 영어로 친구들에게 붙이지 못한 편지를 쓰곤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갈망이 전혀 없다. 전혀 섭섭지 않게 충분히 많은 영어를 사용하고 있기때문이다.

  세상에서 나만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투정처럼 보일지 모른다. (물론, 스스로에게 떳떳할뿐 내 친구들만 해도 나보다 더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든 것을 알고 있다.) 하루 종일 쌓인 이메일을 처리하거나, 하루 종일 16~20통에 가까운 통화를 하거나, 미팅이나 식사 중 혹은 디저트를 먹으면서 진행하는 미팅 중간중간에도 다른 일들이 메시지와 통화로 쏟아진다. 두 눈이 얼얼하고, 목이 따가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기에 올바른 방향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기 위안을 삼는다. 나는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란 명제를 믿는다. 한국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 그와 동시에 아시아와 미국에서도 내 존재의 가치가 대체 불가능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나는 한국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꾼다. 내가 그리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한국인이 만들어나가고 있는 코리안 드림은 전 세계인이 쫓고 있는 아메리칸드림, 차이나드림만큼 가치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 꿈꾸는 코리안 드림이 아메리칸드림과 차이나 드림을 품게 되는 그 날을 학수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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