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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쑤 Mar 02. 2016

My Gay Best Friend

섹스앤더 시티가 가져다 준 '게이 베스트 프렌드' 로망에 대한 반성

  나는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라 다양성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고 그게 옳다고 교육받았다. 생각은 자유롭되, 행동은 답답하디만큼 바르고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나로써 게이 베스트 프렌드를 가진다는 환상은 고등학생 시절 고된 야간 자율학습을 끝나면 숨죽여 보곤 했던 섹스 앤더시티라는 '매체'를 통한 환상이었다. 당시 나의 행동은 언젠가 뉴욕에서 꼭 한달을 살아보고 싶다는 다짐과 역행하여 새장속에서 인서울, 들어 봄직한 좋은 대학이라는 정답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간절한 바램이 가져다 준 운 좋은 기회에 뉴욕 맨하튼에서 2달을 인턴쉽을 하며 보낼 수 있었다. 당시 나는 회사에 나가지 않는 날과 주말은 물론이고 회사에 나가는 날까지 "뉴요커"들의 삶을 동경하기 위해 아침 7시만 되면 센트럴 파크에 나갔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가장 쉽게 똑같이 따라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밑도 끝도 없는 달리기에 누구보다 열심히였고 삶을 치열하게 사는 뉴요커들의 숨소리를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엔 기존의 내 삶의 패턴을 모조리 버리고서라도 내가 진짜 재밌어 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것이라면 환장하고 빠져든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그랬듯, 나도 그녀가 먹는 컵케익을 먹으며 화려하게 글을 쓰고 싶었고, 그녀가 가진 게이 베스트 프렌드도 세상의 어떤 절친보다 더 마음이 잘 통할 것 같은 생각에 무작정 "나도 게이 베스트 프렌드가 필요한 것 같아."라고 외치고 다녔던 의욕만 앞서철없고 자존감 낮은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몇개월이 지나 나는 캐나다 토론토 외곽에 있는 한 미술 컬리지에 입학했고 한 학기가 끝날 무렵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1년 휴학을 해서 우리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호리호리하게 마른 놈 하나를 마주했다. 그 당시 나는 교수님들조차 이런 아시안 학생은 처음본다며 희한한 캐릭터로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영어를 완벽하게 못하면 영혼을 담은 표현력과 주눅들지 않는 명랑함으로 옥빌을 휘젓고 다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굳이 힘들게 내 에너지 써가며 새 친구를 알아가기 위해 마음을 열고 서로를 알아가는데 쓸 에너지가 없었다. 하지만 될 인연은 된다고 내가 제일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Al이 한 무리에 들어오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우리는 대화할 시간이 늘어났다. 그렇다. 내 게이 베스트 프렌드의 이름은 Al이다. 

 한국인들에게, 한국어로 "나는 게이 베스트 프렌드가 있어요."라는 말을 한다는 것자체가 커밍아웃에 가까운 일임을 안다. 그래서 나는 내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 커져 혹시나 내가 느끼는 이러한 감정선들을 전달하는 과정에 오해가 생겨 혹시나 게이라고 통칭하는 것에 행여나 역차별이란 생각을 느끼진 않을까 조심스럽다. 물론 여러분의 기대와 달리 그 게이는 한국인이 아니지만 나는 내 친구가 자유자재로 말이 통하는 한국 친구의 누구보다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임은 확신한다. 친구라는 인연이, 이리도 위대한 것인지 이 친구를 통해 깨달았다. 언어도, 문화도,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물리적 거리는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 거리를 이길 수 없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는 꽤나 위트있고 진하게 연락을 주고 받는다. 우리의 우정이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멍하게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순간조차 1%의 어색함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I'm not the only one.이라는 노래로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Sam smith도 커밍아웃을 했다. 그의 음악과 인스타그램에서 보는 정돈된 삶속에 베여든 특유의 gloomy함을 내 친구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사교계의 한가운데에서 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하여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 찾는 존재지만 가장 깊은 외로움을 안고 있고 타인의 시선앞에 당당하지만 알고보면 제일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였다. 우리의 취향은 꽤나 비슷했고 굳이 서로를 맞춰주려고 하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위해주는 마음으로 우리는 끈끈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나는 우정을 나누는 형태가 일정하다. 많은 사람들을 한번에 만나는 것을 선호하지 않고 단체 생활이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소규모, 소그룹으로 두세명에서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좋고 한 모임에서 4명이상 되면 대화가 다른 방향으로 새고 또 끼리 끼리 나뉘면 비생산적인 만남의 빈도가 늘어나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나는 우정은 상대의 근황을 아는 것도 좋지만 상대가 어떤 것에 어떤 가치를 두고 생활하는지 사고를 나누는 과정에서 더 진지하게 이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 있어서 내 친구 Al과 함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의미있게 다가왔다. 

 우리는 처음 소개팅에 나온 남녀처럼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취향과 취미에 대한 질문을 해댔고 지금은 여느 연인들처럼 보고싶다는 말과 함께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미래까지 서슴없이 그린다. 하지만 그 깊이가 얕다. 실제연인들은 보고있어도 보고싶다는 말을 하지만 우리는 보고 있는데 굳이 보고싶은 사이는 아니다. 우리는 같이 살고 싶진 않지만 함께 살아가고 싶은 사이다. 요즘은 어떤 가수에 빠져있는지, 최근에 서로의 머릿속을 스친 아이디어는 어떤 것인지 대화하지 않아도 pinterest로 취향을 공유하고 facebook으로 함께 겹치는 친구들과의 안부속에 또 다른 친구 중 하나로 자리한다. 

 지난 여름엔 이 친구가 한국에 놀러왔다. 내 입장에선 굉장히 감사하고 꿈만 같은 일이었다. 마치 오랜 공을 들인 비지니스가 계약으로 이뤄지는 성취감같은 것을 느꼈다. 캐나다에서 나는 늘 영어를 완벽하게 하진 못하지만 그들의 나라에 살고 있는 만큼 그들이 하는 발음부터 생각까지 shadowing하기 바빴지만 동시에 대한민국에서 온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누구도 시키지 않은 대한민국 홍보대사였다. (우리 반에 아시안도 극도로 적었고 한국인이 나밖에 없어서였던 이유가 가장 컸다.) 그렇게 토론토의 지하철은 3개의 노선이지만 너희가 생각하는 중국 위에 붙어있는지, 일본 밑에 붙어 있는지 모를 한국이란 나라는 지하철 노선이 10개가 넘고 니네의 느려터진 인터넷에는 돈을 쓰는게 아까워 선불폰을 쓴다고 큰소리 뻥뻥치고 다녔던 LTE폰을 3년전에 썼다고 한국을 거의 천상의 나라로 묘사했다. 그런 조미료 가득 친 효과 덕분인지 캐나다에서 나고 자라 미국도 한번 안 건너갔다온 아이가 내가 살고 있는 나라 한국에 3주간 놀러온 다는 것이었다. (사실 처음의 계획은 한국의 어학당에서 남자친구와 같이 1년을 한국에서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항에서 그를 부둥켜 안으며 반갑게 맞이했고 서울 가이드를 자청했다. 한참을 시차 적응도 못했지만 시간이 아깝다며 쪼아붙여 인사동에 데리고 나갔더니 긴 비행때문인지 금새 지쳐한다. 그래서 잠시 카페에 앉았는데 녀석은 때를 놓치지 않고 내게 묻는다. 

그래서 요즘 네 남자문제는 어떻게 되가니?

 갑자기 '훅'하고 들어오는 쨉에 나는 바로 knock down을 외쳤고 나는 웃어댔다. 어딜가나 주눅들지 않고 네 친구들 다 하는 데 왜 너 혼자만 weed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는 굳이 weed없이도 행복한데 돈을 주고 할 필요는 없어.'라고 답했더니 온 아이들이 깔깔대고 웃었던 나였는데 그때도 지금도, 안정된 연애를 하지 않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급박히 꺼낸 돌직구에 나는 곧장 shy asian이 되어 내 감정을 웃음으로 숨기기 바빴다. 예전에 내 이상형이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오바마라고 답했고 요즘 뇌섹남이라고 불리는 Sapiosexual과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래서 너 요즘도 오바마 찾고 있냐고 되물었다. 

 내 친구지만 참 이 놈은 요물이다. 영리하고 영특한데 배려심이 깊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말에도 그냥 흘리는 말에도 센스있게 캐치하는 여심저격수다. 왜 섹스앤더 시티의 캐리가 게이 베스트 프렌드를 외쳐댔는지 Al이라는 내 친구를 만나고 뼈저리게 공감하는 부분은 있다. 하지만 나는 캐리의 외침이 불편하다. 그가 게이라서 여자들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고, 여자들끼리의 묘한 신경전 필요없이 심적으로 치유해주며, 화려하게 돌직구 날리며 쇼핑을 할 수 있는 메이트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를 동성도 이성도 아닌 게이라는 특성을 무기화하여 게이라는 이미지를 규정짓는게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싶다. 세상엔 여러 종류의 인간이 있듯이, 게이도 여러 성격이 있다. 아시안이 수학 잘하고 흑인이 운동을 잘한다는 편견처럼 편견은 편견일 뿐이다. 특히나 사회적 강자가 아닌 집단과 무리를 향한 고정관념은 그들을 차별하는 채찍과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내 게이 친구가 좋다가 아니라, 내 친구 Al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늘 서로를 위할 수 있는 Al이란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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