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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쑤 Feb 28. 2016

물건너온 화장품 모음집

나를 아끼는 법 : 이너뷰티의 시작

나는 명품을 거부한다. 아니, 명품이 최고의 품질이 아니라 최고의 브랜드이기 때문에 남이 만들어놓은 브랜드를 따르는 것이 참 재미없는 소비의 시작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들어서 명품이 되고, 나만 아는 명품이자 내 마음속의 명품이 더 의미있어 지고 있다. 그리고 여자의 월급이 스쳐 지나가는 가장 큰 이유인 화장품이 그런 관점에서 소비의 시작이었다. 아주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화려한 브랜드의 명품을 살 여유가 없다. 늘 화려하고 분위기있는 것들을 동경해왔지만 한번도 내 마음속의 드림백이 샤넬백이 된 적이 없고 지금도 우연히 갖게된 명품백은 그리 나스럽지 않고 번거롭단 생각에 자주 착용하지 않는다. 특히나 화장품에 있어서 에르메스 향수나, 샤넬 화장품은 내게 의미없는 존재였다. 화장품을 자주 고치지 않을 뿐더러 보여지기 위한 화장품이니까 효과가 좋아야지, 내가 그 브랜드를 쓴다고 내 얼굴이 그 브랜드처럼 윤이 나 보이지 않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유니베르소(universo) 제품들에 홀릭되어있다. 그중에 최고봉은 알로에 베라 립밤이다. 겨울이되면 늘 립스틱보다 립밤을 먼저 챙기는 입술만 극건성인 타입을 가진 나는 립스틱에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외도하지 않는다. 무조건 촉촉하고 쨍한 발색을 자랑하는 아르마니 301 컬러만 두세개사서 곳곳에 배치해두고 쓴다. (물론 원래 하나만 샀었는데 잃어버린 줄 알고 하루종일 립스틱 없는 아픈 상태를 유지하기 싫어서 급하게 사다보면 또 어디 숨어있던게 나와서 두세개가 된다.)청정 수역에서 나는 해초를 재배해서 제품에 넣었다는 해초크림도 제품력은 확실히 좋고 로즈힙오일이나 7일 산소 마스크팩도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우선 유니베르소 자체가 다른 화학 제품을 넣지 않아 chemical한 향이 없어서 제품이 순하다는 느낌이 참좋다. 특히 바디 크림도 제품이 다 뚜껑이 새서 오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어마어마한 보습력에 향까지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물건너 온 제품이니만큼 현지에 비해선 가격이 비싸지만 남미자체가 물가가 싼 나라라서 로드샵제품 세일 하지 않은 가격대로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피부 미용에 관심이 많은 남자 지인으로 부터 추천받은 립밤은 davi(다비)인데 이거 다 쓰면 꼭 써봐야할 리스트였다. 이 제품을 실제로 써보니 이것도 충분히 좋은데 다비제품이 그 이상을 하는 것 같다는 평을 들었기 때문이다. 공산품에 대한 질은 남미와서 그런지 기대하기 어렵다. 뭔가 플라스틱 통이나 뚜껑의 이음새부분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품의 기능 자체가 오가닉을 인위적으로 표방하지 않아도 충분히 자극적이지 않고 보습과 유수분 밸런스를 피부에 딱 세팅해서 맞춰준다는 느낌이 참 좋은 브랜드다.


 네추라 시베리카(natura siberica)는 매장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다 쓸어와서 써보고 싶을만큼 뭐 하나 빼놓고 설명하기 힘든 브랜드다. 러시아 여행에서 알게 되었는데 시베리아 바람에도 살아남은 식물을 추출해 쓰고 제품마다 다르지만 스위스에서 만든 제품들도 있고 시베리아에서 만든 제품도 있다. 그리고 푸틴이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이 브랜드 자체는 toms처럼 사회적 기업이미지를 표방하고 있는 선진화된 브랜딩에도 앞장서고 있어서 더 홀릭이 되었다. 러시아를 다시 가고 싶은 이유 중 한가지가 이곳의 제품들을 더 쓸어오고, 다 쓸어오고 싶은 마음이 포함될만큼 어마어마한 매력을 가진 브랜드다. 나는 모스크바에서는 이 브랜드 매장을 발견하지 못했고, 러시아의 파리라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파리라고 불리기엔 이 도시의 웅장한 매력과 예술적 풍미는 더 진했다.)의 가장 번화가에 있는 스톡만 백화점을 가던 길목에서 이 매장에 들르게 되었는데 때마침 세일기간이라 신나게 쓸어담았다. 평소 중국인 관광객처럼 쇼핑하는 것을 조롱거리로 삼았지만 네추라시베리카앞에선 제품을 쓸어담는 내 모습이 창피할 새도 없이 집중해서 골라담았다. 핸드크림도 록시땅 핸드크림의 용기와 비슷하지만 훨씬 싼 가격대에 향도 인위적이지 않고 보습까지 끝내줘서 주변 사람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가격대는 우리나라 로드샵가격대인데 러시아 물가가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싼지라 현지에서는 lush보다 조금 싼 가격대로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데일리 크림이 질려서 이걸로 갈아타봤는데 분홍색 크림은 제품명처럼 굉장리 라이트했고 파란색깔 크림이 요물이었다. 제품을 짜면 쫀쫀한 휘핑크림처럼 펌핑할 수 있어서 양조절과 먼지에 대한 염려도 훨씬 줄어들고 나이트 크림으로 발라도 될만큼 장시간 보습을 자랑한다. 백탁현상이 있긴한데 진짜 빨리 흡수가 되서 '이렇게 내 피부에 빨리 흡수가 되는구나.'싶은 생각에 아침에 바르고 나면 하루가 든든하다. 뿐만 아니다. -30 마스크는 직원의 추천을 받아서 샀는데 눈주변에 바르는것만 주의하면 이것만큼 괜찮은 크림이 없다. -30도의 얼음을 내 피부에 가져다 댄 것처럼 시원하게 "화~아"한 느낌이 있는데 양조절을 해서 바르면 밤에 마스크팩떼어내긴 좀 귀찮은 날 잠들기 전에 이걸 발라놓고 잠자리에 들면 아침에 물세수를 할때 '아, 이래서 좋은 크림쓰는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내겐 굳이 갈색병을 쓰지 않아도, 굳이 비싼 세럼을 쓰지 않아도 열세럼 부럽지 않은 크림인 셈이다.


네추라 시베리카가 얼마나 검증된 브랜드냐면, 러시아의 lush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것같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삽싼이라는 고속열차를 타고 오는 길에 옆자리에 앉은 러시아 대학생 여자아이와 친해졌다. 러시아에서 완전 빠진 브랜드가 네추라 시베리카라고 하니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미에 관심이 없는, 모범생 스타일의 친구였는데도 이 브랜드의 샴푸는 진짜 좋다며 엄지를 올렸다. 그러니까 더 써보고싶은 이곳의 샴푸다. 러시아 말이 안통해서 직구하기가 무서워진다. 하지만 러시아에 임페리얼 포셀린 그릇 세트랑 네추라 시베리카 제품들 몇가지는 무서움을 무릎쓰고서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브랜드다. 할인받고 또 추가할인받아서 임페리얼 포셀린 그릇 세트를 50만원대 이하로 사왔는데 (물론 유리라 들고오느라 고생은 했지만) 한국에서 찾아보니 찻잔 하나에 17만원한다. 세상에 폭리가 심해도 그리 심한 폭리가 없다.


이젠 너무 유명해져버린 sabon. 뉴욕여행가면 다들 하나씩 사와서 팬이 된다는 브랜드 sabon이다. 뉴욕을 보면, 서울이 어떻게 발전해나가야할지 해답을 주는것 같다. 우리나라도 뉴욕처럼 관광객들이 왔을때 꼭 들리는 코스가 쇼핑이지만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보다 여기저기 중구남방으로 있는 길거리 매장들 뿐이고 기껏해야 화장품 스트릿브랜드다. 그것말고 좀 더 전문적으로 우리나라의 패션이나 k-beauty의 감각을 담은 브랜드를 지속해서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 가장 가까운 예시로 스타일난다가 있지만 너무 아시안들에게만 국한되어있는 인기와 전반적으로 제품에 대한 story와 브랜딩이 1차원적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남들이 안쓰는 것에 대한 집착은 아주 옛날부터 내 스스로 알아차리기 전부터 남들이 희귀한 것들을 알게되면 내가 좋아할 스타일이라며 먼저 알려주곤 했었다. 대학교 2학년때쯤 뉴욕 인턴쉽을 갔었는데 그때 소호를 먼저 찾았던 일행들이 sabon이라고 이스라엘에서 온 브랜드인데 그 매장에 꼭 한번 가보라고 내게 추천해주어서 알게되었다. 가면 손에대 직접 스크럽 제품을 시연해볼 수 있고 그곳의 디퓨저에 빠져서 유리를 달그락 거리면서 한참을 걸어다닌 기억이 아찔하다. 그리고 배송비를 낸다 치더라도 그냥 세일기간에 맞춰서 배송을 하곤한다. 스크럽 제품도 좋은데 5통, 6통 열정을 다해 연달아 쓰다보니 조금 질려서 다른 스크럽 제품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키위망고향 자체가 너무 달달해서 하루종일 쓰고 나면 아침에 기분이 "내 몸 냄새"로 확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 특히 스크럽보다 샤워 오일의 지속력이 더 강해서 좋아한다. 이곳 제품은 다 좋은데 배송하기에 유리라서 늘 애를 먹지만 부피값만 가득 메기는 디즈니 보단 배송비가 덜 아깝다.

 너무도 간절하고, 진짜 좋아하는 것 앞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소심해지고 약해지는 것같다. 무엇보다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고 완벽한 존재로 기억되기 위해서 발버둥치다보면 나를 옥죄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내가 나를 해친다. 그 결과, 나를 돌보기 위해서 돈을 쓴다.는 이상한 명제에 도달했다. 내 자신을 위한 투자로 닐스야드에 찾았다. 이효리가 홀딱 반한 크림이라고 해서 몇날 몇일을 알아보다 막상 매장에 가니까 나는 순간적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을때 바르는 크림제형의 제품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화장한 상태에서 클렌징 효과가 있다고 하여 일상생활에서 화장이 부분적으로 지워지면 안될 것 같아서 유칼립투스 살브 크림을 사왔다. 사실 온라인에서 미리 확인해본 결과 이 제품이 품절이었고 매장에도 하나 남은 크림이라고 해서 이효리 크림을 포기하고 하나남은 제품의 주인공이 되고자 지갑을 열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잠을 뒤척이는게 괴로워 만원이나 하는 석고 방향제위에다 심신 안정 오일을 몇방울 떨어뜨리면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해서 샀다. 세일도 하지 않는데 꽤나 큰 돈을 나를 위해서 쓴게 사치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 극도의 우울이 앞서 지나가는 말에도 눈물이 핑돌고 모든 것에 화가 뒤섞인 마음상태의 연속이었다. 이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였다. 바른자세를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고 무엇보다 우선인건 내 마음이 안정되고 조금이라도 내가 나를 아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면 지금보다 더 어렵고 험한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단 사실을 이번 계기를 통해서 느꼈다.

 정말 숙면을 취했는데도 만성피로로 또 다시 이른 아침의 하루를 시작해야할 때 얼굴엔 윤이나는 밤을 바르고 그 위에 bb크림을 얹히고 살브 크림을 귀 뒤나 목과 쇄골 뼈주변을 마사지 하듯이 문질러주면 잔뜩 힘이 들어가 움츠러든 어깨에 힘이 빠지고 자세가 발라진다. 손 체온으로 녹이듯이 머리부터 목부위를 독소를 배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마사지해주다보면 굳이 새 마음 새 뜻으로 오늘 하루를 열심히 보내자고 인위적인 다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적당히 활기찬 마음가짐과 기분좋은 안정감으로 하루의 시작을 맞이할 수 있었다.

 아이허브 지옥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 두가지가 치약과 칫솔때문이다. 처음 이 치약을 쓰면 자극적이고 상쾌한 느낌이 덜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게 필요이상의 입 안의 자극이었고 아침에 일어나서든, 혀를 청소할때든, 여행지에서든 늘 쓰는 치약이 만족스러운 것만큼 일상의 행복이 없다. (그러고보니 나 정말 까탈스럽구나. 하아.) 미백효과는 덤이고 양치후 기분좋은 깔끔함이 확실히 있다. 그리고 아래 위로 칫솔질을 하기위해 손목의 스냅을 요구하지 않아도 쉽게 구석 구석 닦이는 radius칫솔을 좋아한다. 칫솔 꽂이는 은근 더럽고 청소하기 귀찮아 간편하게 칫솔을 꽂아 넣어놓고 또 이동도 쉽다. 하지만 솔이 조금 거칠어 좀 soft한 솔을 선호한다. 독일제 치약인데 아침, 저녁으로 완전 상쾌함에 미백효과까지 쩌는 제품이 있어서 아마존에서 직구를 하려고 몇번이나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했는데 역시 언어가 주는 장벽에 돈 거래를 하는게 배송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면 신경쓰일 일이 많아서 망설이다 그냥 아이허브에서만 편하게 쓴다.


어차피 한국에서 사는 치약의 가격에 비해서 커피 한잔 정도의 값이 차이가 난다면 충분히 다른 치약으로 외도하고 싶을만큼 나는 기본적인 생필품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수록 삶의 소소한 행복이 채워지는 것 같다. 대학생이 되고 내 삶의 패턴이 또 하나의 브랜드가 되고 내 자신을 따르는 팔로워가 많이 생기고 싶다는 욕심보다 내가 선택한, 내가 빠져있는, 내가 먼저 알게된, 내 taste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꽤나 꾸준히 했었다. 그리고 27살을 맞이하게된 지금, 어느정도 내가 좋아하는 기준이 생기고 내가 먼저 쓰고 만족하는 아이템들이 또 다른 나를 말해주는 것같아 미소지어진다. 허세가 있다해도 좋다. 다른 걸 아껴서 이걸 산다고 어필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스타벅스를 좋아한다는 여자란 인식은 사치스럽다고 연결짓는 고리타분한 인식에 얽메이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될 일이다. 그리고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으로 이런 재미를 택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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