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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쑤 Apr 08. 2016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요거트

요덕주의, 요밍아웃!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얼른이요. 얼른!
 외국나가면 밥통을 가져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김치에 단무지에 라면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꼭 거기에 가서 밥을 먹어야 속이 편안하다는 증언이 뒤따랐다. 그들에게 밥통 같은 존재가 나에겐 요거트다. 장기간 외국에 체류할 때 김치가 그리웠던 적은 없다. 한번 굉장히 아팠는데 그때 단팥이 그리 먹고 싶어 한인타운의 빵집에서 단팥빵 하나를 개눈 감추듯 해치우고 나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 예외를 제외하자면 내게 밥통같은 존재는 단연 요거트다. 

 맛있는 요거트를 먹을 때 세상에서 어떤 맛있는 디저트를 먹을 때 보다 더 행복하고 외국에 나가서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것들이 제대로 된 꾸덕하고 리치한 요거트들의 종류들을 하나씩 다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 인턴 시절, 회사가 소호 브로드웨이가에 있었는데 말도 안 통하고 시킨 일을 한참 집중해서 하고 있으면 하루 온종일 집중해서 수능을 보고 있는 것처럼 급격한 피로도가 몰려왔다. 잠시 눈치를 봐 점심시간을 쪼개어 써서 길 건너편 딘앤 델루카에서 요거트를 하나씩 맛보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 그때 다른 맛있어 보이는 요거트에 밀려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요거트를 여의도 ifc몰에서 발견했다. 당시 가격은 9000원이었다. 아무리 요구르트 성애자라하지만, 아무리 물 건넣온 유제품이라 할지언정 요거트 9000원은 내게 납득하기 힘든 가격이었다. 그렇게 녀석의 콧대는 재고가 쌓였는지 5000원으로 할인을 하고 있었고 냉큼 집어왔다. 꿀을 섞어 먹으면 극도로 달콤한데 요거트 자체의 맛은 충실하게 부드럽다. 하지만 지방이 0%라 뒷 맛이 영 심심하다. 함께 들어있는 꿀의 양을 한 스쿱당 잘 조절해서 먹는 것이 이 요거트의 관건이었다. 

얼마전부터 한국에도 요거트의 종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을 격렬히 환영하는 바이다. 파스퇴르하면 적어도 유제품에 관해서 밍밍한 맛은 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에 먹었는데 기대를 충족하는 맛이었다. 블루베리가 함께 들어가 있으니 목 넘김도 수월했고 꾸덕하진 않았지만 흐르는 요거트치고는 걸쭉한 맛을 내는 꽤나 괜찮은 요거트였다.

러시아 여행 가서 모스크바에서 현지인들도 하나같이 추천하고 유학생들도 이곳이 소울푸드라며 극찬을 하길래 찾았다. 러시아 여자들은 결혼 전까지 몸매 관리를 한다고 진짜 조금만 먹는다던데 살이 안 찔 것만 같은 건강한 식단을 우리에게도 선보이고 있었다. 다이어트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한국 여자지만 결혼을 위해 살을 뺀다는 러시아 여자에 비하면 넘치는 식욕이었던지라 러시아 스타일의 요거트는 영 별로였다. 사투린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니 맛, 내 맛"도 없는 맛이었다. 샐러드드레싱에 더 가까운 맛이었는데 밍밍하다고 하기엔 요거트 맛이 확실히 나고, 맛이 없다고 하기엔 건강한 맛은 있는 것 같은 내가 지금까지 알아온 요거트라는 맛의 정체성을 헷갈리게 하는 맛이었다. 

 오스트리아 여행 중, 비를 피해 들어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사람 구경을 신나게 하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아서 고고한 자세로 신문을 보는 할머니가 식사대용으로 뮤슬리를 드시고 계셨다. 참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드시길래 그 메뉴 이름이 뭐냐고 물어 시켰다. 달지 않고,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요거트와 뮤슬리의 궁합이 잘 맞았다. 그냥 요거트만 먹을 때는 요거트 자체로 리치하고 크리미한 걸 선호하지만 뮤슬리나 그래놀라를 함께 먹을 땐 덜 꾸덕하고 고소한 맛이 더 짙은 요거트를 선호한다. 

압구정 대로 한복판에서 아침의 피로를 커피로 깨우긴 싫을 때, 배고픔은 아닌데 원인 모를 마음의 허기짐에 키위 요거트를 시켰다. 맛있는 건 비싸도 괜찮은데 맛없는데 비싸면 안 된다는 박형식의 명언이 생각났다. 3800원쯤 했는데 잘게 썰어 넣은 키위에 민트까지 다 좋았지만 요거트의 맛엔 전혀 충실하지 않았다. 꼬모나 요플레로 불리는 요거트같은 걸 함께 넣은 맛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와 나무에서 나온 플레인 맛 요거트보다도 못한 맛이었다. 이 집 샌드위치는 괜찮았는데 요거트는 영 아니었다. 

 나를 요거트 덕후로 인도한 제품이 바로 미국/캐나다 홀푸드에서 파는 the greek gods yogurt다. 진짜 진하게 크리미한데 꾸덕하고 달콤한데 버터리하다. 양도 진짜 많아서 일주일 혹은 열흘은 이거 한통이면 거뜬하다. 이 요거트 두통을 냉장고에 두고 있는 날이면 마치 집에 맛있게 담근 김장 김치로 냉장고를 가득 채운 든든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유학생활의 소울푸드였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괜스레 다운될 때 이거 한 두스쿱 떠서 입안 가득 요거트의 풍미를 느끼고 다시 과제에 몰두하곤 했었다. 특히나 세일할 땐, 쟁여두고 기숙사에 초대해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만 맛 보여준다. 캐나다에서 평생을 살아온 네이티브들한테 토론토 시내의 맛집을 알려주고 내가 좋아라 하는 요거트를 소개해줄 때마다 둘 다 어이없어하면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전도하고 반응이 오면 그것이 그리도 뿌듯했다. 

 2년 전 일이지만, 캐나다 학교 친구들이 자꾸 인스타하라그래서 한 며칠 삘받아서 인스타 계정을 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요거트 계정만 잔뜩 팔로우해 두고 내가 먹은 요거트만 올렸다. 그 요거트 계정 회사에서 내가 먹은 인증샷을 좋아요 눌러주고 댓글을 달아주는데 마치 내가 동경하는 스타가 나를 알아주는 느낌이랄까? 그동안 요거트를 향한 나의 무한한 짝사랑의 결실을 맺는 느낌에 하루 온종일 뿌듯했었다.

 

뉴올리언스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편에 샬롯인가? 환승공항에서 환승을 기다리다가 옆에서 먹는 요거트가 맛있어 보여서 나도 하나 시켰다. 다른 음식은 다 괜찮은데 누가 옆에서 요거트 먹고 있는 것만보면 너무 그 맛이 궁금하고 식욕이 확 돋는 게 요거트에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 세상에 있는 요거트를 다 먹고 죽는 것은 상상만 해도 입꼬리를 올라가게 하는 일이다. 이때부터 요거트 위에 토핑을 얹여서 먹는 것을 가까이했다. 초등학생때 레드망고라는 요거트 가게가 유행이었는데 그때 자주 먹었던 아이스크림 요거트위에 토핑을 골라 먹는 것이 그리도 내겐 인상적이었다. 요거트 아이스크림 치고 입자가 얉고 풍미가 진해서 좋아했는데 요거트는 아이스크림보다 요거트 있는 그대로 먹을때 맛있다. 

 뉴욕 여행 좀 해 본 사람들이라면, 마른 사람이나 살집이 있는 사람이나 하나같이 혀를 내두르는 맛있는 요거트가 바로 쵸바니(chobani)다. 뉴욕뿐만 아니라 시카고나 마이애미 쪽에서도 이 요거트를 계산할 때면 점원들이 하나같이 이거 맛있다고 극찬한다. 안에 과일도 신선하게 씹히고 무슨 맛을 먹어도 다 기대 이상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달라 좋아라 하는 쵸바니 요거트의 선호도가 다른데 나는 파인애플을 좋아한다. 원래 일반적인 요거트는 바닐라맛을 먼저 먹어보곤 하지만 쵸바니는 늘 그날 먹고 싶은 과일을 선택해 그 맛을 따라먹는 편이다. 

백화점 식료품관을 돌 때면 평소에 내가 먹어보지 못한 요거트의 종류가 뭐가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본다. 파스퇴르에서 나온 스타놀 요거트는 요거트치고 흠잡을 때가 없었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꾸덕함도 덜했고 달콤하거나 리치한 맛이 아니었다. 요거트에 충실했지만 다음에 또 찾고 싶을 만큼 끌어당기는 매력은 덜한 맛의 요거트였다. 워낙 요거트에 대한 무한 궁금증 때문에 내가 좋아하고, 내 입맛에 맞는 요거트를 찾을 때 보다 허탕 칠 때가 더 많다. 그럴 땐, 아이허브에서 밥 아저씨 그래놀라를 주문해 내 스타일이 아닌 요거트일때는 이렇게 그래놀라와 함께 먹으면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슈퍼에서 파는 요거트중에 단연 최고인 숲골 요거트다. 다른 마트에선 발견하지 못했고 킴스클럽에 갈 때마다 사 온다. 꾸덕하지 않아도 맛있고, 리치하지 않아도 요구르트의 풍미는 확실히 있다. 자극적이지 않고 적당히 맛있게 달콤해 중독성이 강한 요구르트다. 그리고 자주 할인을 하고 있어서 딸기맛을 즐겨먹는다. 병이 유리라 무거운게 단점이지만 세일가에 비하면 충분히 가격 그 이상을 하는 요구르트다. 양도 많고, 혀끝에 닿는 순간 요거트 본연의 맛이 주는 미각의 즐거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요즘 강남 엄마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마켓 컬리와 배달의 민족에서 나온 배민 프레시가 인기다. 치즈도 맛있고 백화점 식료품관 혹은 동네 맛집에서 파는 것들을 다 구할 수 있어 가격대도 거품이 없고 당일 배송 혹은 다음날 아침에 집 앞에 배송되니까 여러모로 좋다던데 나는 다른 메뉴들 다 제쳐두고 요거트맨이 입점되어 있어서 요거트맨 요거트만 한번 시켜보고 싶었는데 배송비 때문에 요거트값이 거의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될 판이었다. 어떤 맛인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많이 시키기도 그래서 강남역에 나갈 일이 있어서 그때 동선을 잘 파악해두고 요거트맨을 찾았다. 인스타 마케팅을 잘하는 작은 매장이었는데 나름 특허도 받았다고 해서 기대를 했었다.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었다. 친절하고 다 좋았다. 그래놀라도 고소하고 맛있었지만 요거트가 꾸덕하고 질감도 날리지 않고 괜찮았는데 엄청 맛있지 않고 그냥 괜찮았던 맛으로 끝났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끝 맛이 주는 여운이 기대만큼 강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첫맛만큼은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웬만한 요거트 그 이상이었음은 확실했다. 그리고 한 끼로 어마어마한 포만감을 주는 양과 건강해지는 과일의 조화가 좋았다. 하지만 한번 맛본 걸로 충분한, 명성의 이유는 납득이 가지만 내 요거트 신조와는 핏이 맞지 않았던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나라 요거트가 성에 안차 왜 내가 미국이나 한국에서 제일 가까운 미국이 괌이니 그런데라도 가면 맛있는 요거트를 실컷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게 하는 요거트였다. 그래놀라가 들어있다고 하는데 그냥 시리얼 조금 넣은거에 요거트도 진짜 대충 만든 맛이었다. 저렇게 무언가 요거트는 첨가해서 먹으면 맛이 없는 게 이상할 만큼 맛이 없으면 안 되는 조합인데도 그래놀라와 요거트 모두가 awful...그 자체였다. 요즘은 그릭 요거트다 혹은 무슨 목장에서 직접 만든 요거트다 해서 제대로 잘 만든 요거트 경쟁이 치열한데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한, 시대에 역행하는 맛의 요거트였다.

0% 요거트가 이렇게 맛있으면 안 되는데 이 녀석은 맛있다. 함께 들어간 복숭아를 섞었더니 게 눈 감추듯 한 개를 비워냈다. 0%는 요거트 자체가 맛있어도 끝 맛이 딱 떨어지는 느낌이 싫었는데 지방이 없는 요거트에서 이 정도 맛을 내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함께 첨가된 복숭아가 신의 한 수였다. 꾸덕하게 깔끔한 맛과 복숭아를 씹을 수 있는 식감과 요거트 자체가 주는 유제품 특유의 잡내가 나지 않아 신기하게 맛있는 요구르트였다. 제대로 만든 요거트의 맛이 이런 거라고 증명이라도 하는 냥, 제 값을 제대로 하는 요거트다. 

요거트 탐험에 점점 지쳐갈 때쯤, 한국에선 내가 좋아라 하는 요거트는 찾을 수 없을 거란 절망만 가득할 때 ssg마켓에서 기대 없이 습관처럼 사담은 요거트에서 내가 찾던 맛을 만났다. plain맛 말고 오리지널 올가닉 프리미엄 그릭 요거트는(세상에 맛있게 보이는 미사여구는 다 붙여놓은 요구르트 이름이다.) 홀푸드에서 내가 그리 좋아라 방방 뛰던 greek gods yogurt와 맛이 가장 흡사했다. 고소한 풍미와 기분 좋은 달콤함, 그리고 꾸덕한데 진하게 입 안 가득 퍼지는 요거트의 질감은 요거트 하나에 무슨 이런 호들갑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미국에서 먹던 요거트의 맛이 그리워 미친 듯이 새로운 요거트에 대한 탐닉의 결과물로 손색이 없었다. 이 요거트를 먹고 나는 결심했다. 다신 다른 요거트를 찾아 헤매도 되지 않을 만큼 내가 그렇게 찾아 헤맸던 요거트라고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땅도 작고, 요거트의 종류도 외국에 비해 한참 없고 그릭 요거트에 대한 수요도 많이 없는 것 같아 내가 즐겨 먹었던 요거트를 한국에서 먹는다는 것이 사치라 치부했었다. 한국에서도 이리 맛있는 요거트를 맛볼 수 있다는 게 어찌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비행기 값 굳게 만든 효자 요거트다. 

 한살림에서 나온 요거트는 왜 한살림이 주부들에게 그렇게 극찬을 받는지 납득이 가게 했던 요거트였다. 최상의 퀄리티와 양도 많고, 쓸데없이 병으로 장난치지 않으면서 가격은 낮게, 진짜 요거트 좀 먹어본 사람이 만든 요거트란 생각이 들었다. 강남역 요거트맨보다 한살림 요거트가 한수 위였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프리미엄 올가닉 그릭 요거트 오리지널은 특별한 날, 내 스스로에게 상주고 싶은 날 찾고 싶은 요거트라면 일상에서 늘 요거트에 대한 갈증 없이 먹을 때마다 만족스러울 수 있는 요거트의 종착역이 한살림 요거트였다. 다른 과일이 들어가지 않아도 요거트 자체만으로도 리치하고 깔끔하고 담백한데 꾸덕하고 10점 만점의 10점을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최고의 요거트다.

국내 1회 유기농 설목장에서 만들었다는 유기농 올가닉 요거트는 그릭 요거트가 아니라는 점만 빼면 맛 자체는 뛰어난 요거트였다.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조금 부족한 이유는 유제품 특유의 느끼한 잡내를 잡아내지 못한 게 아쉬웠다. 맛있게 달콤한 요거트였는데 2%가 부족한 완성도로 아쉬움이 남는 요거트였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한국에서 내 입맛에 맞는 요거트를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왔다. 지금은 얼추 내가 좋아라 하는, 내가 선호하는 요거트를 tpo에 맞게 꼽을 수 있을 만큼 요거트에 대한 확실한 호불호가 생기고 선택권이 넓어졌다. (예를 들어 편의점에서 요거트를 먹고 싶을 땐 일동제약에서 나온 블루베리맛 그릭요거트를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요거트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요거트 맛에 대한 궁금함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 요거트 사진만 보아도 웃음이 배시시 나오는 가슴 떨림은 당분간 계속될 계획이다. 나 또한, 내가 좋아라 하는 요거트의 확고한 취향처럼 담백하고 여운이 많이 남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 하루도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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