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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쑤 Mar 22. 2016

소박해서 거창한 스무살의 생일파티

축하의 마음을 담아 즐기는 모두를 위한 파티

 요즘은 우리나라도 파티에 대한 문화가 많이 친숙해졌지만 여전히 보여주기식 잔치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매년 돌아오는 생일파티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축하만으로 충분히 배가 부른 생일날, 생일파티를 한다셈 치면 기본적으모 생일턱부터 생일자이기에 재정적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동시에 생일 파티에 참여하는 사람들 또한 근사하고 괜찮은 생일 선물을 준비해야함에 있어서 서로가 다 부담을 안고 출발하는데에 있어서 나는 생일날 쥐죽은듯 숨어지낸다. 서로에게 부담이 되기 싫은 마음도 컸고 축하받는다는 것이 참 익숙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잘 되는 일, 좋은 일엔 함께 따라오는 질투와 시기가 따라다녔고 아주 절친한 사람들끼리 만나 생일 앞뒤로 맛있는 밥과 달콤한 디저트를 마시면 그것으로 참으로 충만한 생일이었다. 

 그렇게 생일은 1년 중 하루라고 치부하던 어느 날, 나는 캐나다에서 친한 친구의 생일 파티에 2박 3일동안 초대를 받았고 '내가 그동안 마음의 여유없이 삶을 살고 있었구나.'를 느꼈다.

정말 별거없었다. 정해진 계획도 없었다. 술도 각자가 먹고 싶은 만큼 사다오면 되는 일이었고 배가 고프면 슈퍼에 나가서 모자란 재료들을 사다와 해먹고 배가 부르면 또 음악을 틀어놓고 테라스에 앉아 멍하게 들풀들을 바라보며 또 생각나는 이야기들이 있으면 늘어놓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꽤나 오랜 여운이 남는 걸보니 특별하긴 특별했던 것 같다.


Day1 우리들만의 세상속으로 출발

학교 앞 lcbo(캐나다 토론토가 속한 온타리오주에서는 일반 슈퍼에서 술을 팔지 않고 따로 술을 파는 매장을 두고 전세계 각종 술을 살 수 있다. 신분증 검사도 철저하고 가끔가다 한국 술도 파는데 막걸리가 만원쯤했었다.)에 들러 각자가 2박 3일동안 마실 술을 사고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1시간 30분을 달려 생일자 친구네집에서 가까운 슈퍼에서 빵과 소세지 그리고 음료들을 주워 담았다. 물론 여기서도 먹고 싶은게 있다면 얼마든지 자기가 살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생일자의 눈치 볼 필요없고, 자신이 먹고 싶은 대로 사면 되는 일이니 생일자 또한 100% 모든 이의 취향을 맞춰야 한다는 압박감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집에 도착해서 차 문을 내리자마자 플란다스의 개에 나올만큼 큰 개가 내 앞을 스쳐지나갔다. 어릴적 개에 대한 무서운 기억을 성인이 되어서까지 치유하지 못한 나는 완전 겁에 질려서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채로 미친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처음 본 동양에서 온 여자애가 실컷 집에 초대해줬더니 조용한 캐나다의 시골마을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생각하니 초면에 정말 큰 실례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친구의 부모님께서는 2박 3일동안 늘 큰 개가 내 주위를 맴돌지 않도록 신경써 주셨다. (작은 개 2마리는 최대한 내 선에서 알아서 동선을 피하가며 지냈다.)

 친구의 어머니께서 직접 바베큐 그릴에 소세지와 패티를 구와 근사한 햄버거와 핫도그를 만들어주셨다. 재료를 직접 구워다 플레이팅해주시면 우리는 각자가 먹고 싶은만큼, 원하는 재료들만 얹혀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데 허기진 것도 아니었는데 정말 꿀맛이었다. 넓디 넓은 정원과 호수를 바라다보며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마음맞는 친구들과 히히덕거리면서 한 끼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햄버거의 맛을 더 해주는 최고의 반찬이었던 셈이다. 

 배는 너무 부르고 해가 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네 산책이나 나가자하여 주섬주섬 겉옷을 챙겨입고 다들 집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어쩌면 이게 상대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고 다른 시각으로 보면 타인에 대한 배척일 수도 있는데 이 날 총 우리 학교에서 나 포함해서 4명의 친구들이 내 친구의 생일파티에 같은 차를 타고 갔었다. 그런데 나랑 여자인 친구랑 생일자 친구는 늘 학교에서 같은 수업을 들으며 몰려다니는 친구들이었고, 나머지 남-여 커플은 완전 초면인 친구들이었다. 한국에선 보통, 얼굴 아는 사람들끼리 따로보거나 (밤에 술자리 겸 친구 소개를 시켜주는 자리가 아니면 이렇게 어울려) 순수하게 '친구'라는 목적으로 2박 3일을 노는게 흔한 일이 아닌데 너와 내가 친한 친구면 내 친구 또한 너의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당연한 생각이 있었던 것이라 추측해 본다. 그리고 우리도 막상 첫 인사를 시작으로 친구에 대한 접점이 있어서인지 처음 본 상대에 대한 적대감없이 급격히 친해졌다.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이 곳에서 자신의 모든 학창시절을 보냈다며 20분쯤 걸어가서 나온 학교 놀이터에서 어린 아이들처럼 그네를 타고 미끄럼틀을 타고 놀았다. 오고 가는 길에 진짜 시골이라 그런지 지나가는 차 몇 대를 제외하곤 인적도 드물었다. 정말 평화롭디 평화로운 동네였다. 

 실컷 모래 장난을하고 말도 안되는 농담과 노래를 주고 받으며 집에 도착했더니 친구 어머니께서 간만에 솜씨 발휘를 하셨단다. 직접 만들어 당신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딸기 케이크였다. 겉으론 뚱하고 무뚝뚝해보였지만 이렇게 마음써주는데서 얼마나 내 친구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왔는지 알게 하는 대목이었다. 딸기케이크는 보는 바와 같이 굉장히 맛있었다. 달기도 달았지만 보기에 정갈하고 똑떨이지는 비싼 케이크보다 진짜 생일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생일을 축하해주러 온 사람들이 케익을 먹으면서 진정한 의미에서 생일자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할 수 있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Day2 일상이 주는 행복에 대한 감사


 아침엔 집에 있는 팬케익을 열 몇장쯤 쉴새없이 구워 메이플 시럽에 발라다 먹었다. 집에 메이플 시럽에 떨어져서 집에서 15분쯤 떨어져있는 슈퍼에 잽싸게 들러 시럽을 사다왔다. 오는 길에 슈퍼 옆에 있는 팀홀튼 카페 drive thru에 줄이 길게 서있는 걸 보고 놀랐다. 캐나디언의 soulfood가 팀홀튼이라 할만큼 만만하게 늘 먹는 곳 같다. 맥도날드보다 한 끼 식사로써 인기가 많고, 스타벅스보다 훨씬 자주 볼 수 있다. 출출한 학생이나, 모닝커피가 간절한 직장인들까지 팀홀튼 사랑은 도시, 시골할 것없었다. 서양 음식은 한국음식보다 손이 덜 가니까 상대적으로 엄마들이 조금 더 편할 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아이들 머리만 조금 크면 자기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먹는게 크게 어렵지 않으니 말이다. 다양한 토핑이 없어도, 먹음직스러운 모양은 아니었지만 진짜 캐나다스러운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공기 좋은 하루를 맞이하며 먹는 아침식사는 어떻게 입으로 들어갔는지 모를만큼 맛있게 먹었다. 

 차를 타고 얼마 가지 않아 동네에 저수지같은게 있다하여 잠시 차를 주차해두고 내렸다. 멍하니 흐르는 물을 바라다보는데 괜한 생각이 뒤섞였다. 캐나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내가 가장 간절히 원했던 순간을 드디어 이뤄냈다는 보람이 있었다. 유학의 이유는 영어였고 영어보다 더 큰 목적은 현지 친구들과 신나게 놀러다니면서 학교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학위도 필요없고, 영어나 다른 배움의 목적이 아니라 친구들끼리 노는 것이 목적이라서 더 힘들게 돌아왔던 것 같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은 늘 외롭고 버겁다. 그렇게 5개월을 마음고생 했었다. 유학원은 물론이고 유학원에서 소개시켜준 한인 핸드폰 가게부터 어학원까지 하나같이 책임회피에 남들이 다 가는 길로만 안내했다. 한국말이 통하는데도 한국어를 못알아듣는 듯한 벽에 미치는 줄 알았었다. 비자부터 환율에 학교 입학까지 혼자서 이 곳, 저 곳 수소문하면서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쳐봐도 무슨 일이든 다 꼬이라고 만든 곳이 절망의 땅 캐나다인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다시 가야하나.'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여전히 내가 유학했었던 때 캐나다의 환율은 가장 높았고, 지금은 2/3가격의 환율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래도 캐나다에서 지낸 1년 3개월때문에 남들보다 나이에 있어서 억울하냐고 묻는다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캐나다에서의 경험은 인생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 자부할 수 있을만큼 내면적으로 많이 돌보고 가꾸는 시기였다. 동시에,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전문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시기였다. 한국에 돌아와서 캐나다에서의 삶과 너무 달라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캐나다에서 닭똥같은 눈물 뚝뚝 흘려가며 배운 '나를 존중하는 법'과 삶에 대한 기본 가치는 변함이 없음이 감사하다.

정처없이 카페에 들렀다 또다시 동네 드라이브를 했다. 시간 많은 우리같은 사람들을 위해 골동품을 잔뜩 모아둔 garage sale을 하고 있었는데 진짜 광활한 규모에 없는게 없었다. 하지만 물건의 정교함이 조금 떨어졌다. 그냥 이런, 저런 물건들을 큰 섹션별로만 정리를 해놓고 있어서 그냥 둘러만보는데도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와 뜰에 놓여진 의자에 앉아 또 못다한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과 둘러쌓여있으면서 잠시, 잠시 혼자만의 멍을 때리는 것또한 사회적 인간으로써 최선을 다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내 자신에게도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

 또 먹는 것을 잠시 쉬었으니 먹으러왔다. 어릴 적 가족 외식으로 피자헛을 자주 갔었지만 나는 피자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냥 피자가 싫었고 피자가 맛이 없어서 샐러드바만 가득 먹었다. 그리고 뉴욕에서도 각종 맛집과 트렌디한 것이라면 내가 제일 먼저 해야한다는 사명감에 돌아다녔을 적이도 3대 피자라 불리는 피자 맛집을 일말의 후회없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캐나다 깡시골이라 불리는 온타리오주 arthur에서 동네 사람들이 줄서서 먹는 피자를 먹고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진짜 피자가 이런 맛이구나 싶었다. 금방 구워서 나오는 피자는 두껍지도 얇지도 않았는데 치즈의 풍미와 하와이안 피자라 불리며 올려진 파인애플 토핑의 조화는 앙상블 뺨칠만큼 맛있었다. 아직도 내 친구와 대화할때면 내 인생피자라며 그 피자가 캐나다에서 제일 그립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캐나다 대표음식인 푸틴마저도 먹을땐 그래비하지 않은데 알고보면 칼로리가 폭탄인, 그래서 진짜 얼마나 많이 먹는지 모르게 될만큼 맛있는 메뉴였다. 역시 쌀밥먹고 자라온 내 입에도 이리 맛있는데 현지인 맛집이라더니 사람들 입맛은 하나같이 똑같음을 느낀다.




Day3 먹다 지친 귀신이 될 무렵

 끊임없이 먹어댔다. 그런데 배가 부르단 생각보다 함께 먹는 즐거움때문에 더 먹고 싶단 생각이 컸다. 지난 밤 동네에 사는 친구들까지 모두 모아 술을 마시며 술게임도 하고 다 초면인 사람들끼리 딥톡도 나눴다. 늘 사려깊은 내 친구덕에 우리의 잠자리는 너무도 편했고 안락했으며 그렇게 신경써주는 친구가 있다는게 늘상 밝게 웃는 내 자신마저도 스르르 녹아드는 매력에 더 기대게 되었던 것 같다. 캐나다하면 또 베이컨이라며 입맛 까다로운 친구가 선별한 베이글과 프렌치 토스트로 아침을 해결했다. 두 세 사람이 요리를 하면 자연스럽게 남은 사람들이 설겆이를 하곤 했다. 

동네에서 조금 더 나가면 나름 큰 시가지가 나오는데 그곳에 있는 몰에서 남은 일정을 마무리했다. 맛있는 초콜렛 가게에 가서 구경하고 몰에 들어가 이런 저런 가게들도 둘러보았다. 한국의 대학생활이나 또 대외활동을 쉴새없이 했었는데 그때 mt나 남,녀 함께 우루루 놀러가면 늘 여자들만 모여있는 곳에선 남자들 만나기전에 아이라이너로 화장을 고치고 거울을 보고 팩트를 찍어바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곳에선 그러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다들 그렇게 하지 않으니 말이다. 꼭 남,녀임을 의식해서라기보다 타인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이 자기 만족이라는 이유로 좀 더 정갈하게 보이고 싶은 개인의 욕심인데 모두가 하지 않으니 나 또한 굳이 하지 않아도 크게 이상할 것 없으니 한없이 편해졌다. 

내가 dq(데일리퀸)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하니 내 친구는 너 캐나다에서 헛살았다며 무조건 이곳의 아이스크림을 먹어보라고 한다. 이곳의 아이스크림은 버거킹, 맥도날드가 두번 울고갈 만큼 쫀득하니 알갱이가 얆아서 목넘김까지 부드럽고 완벽했다. 우리나라에도 상하목장 아이스크림이 꽤나 맛있는 축에 속하지만 dq만큼 온전히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대한 완성도 높은 맛은 경험한 적이 없었따. dq 사장님도 내가 한국에서 왔는데 1년쯤 넘었는데 이곳의 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고 하여서 처음 먹어보는 것이라하니까 어떻게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냐며 놀라신다. 이 날 이후로 dq의 맛을 잊지 못해 눈에 보이면 사명감으로 늘 사먹곤 했었고 엄마에게도 맛보여줘야한다며 나이아가라에서도 사다 먹었다. 베스킨 라빈스의 머리 띵해지는 달콤한 아이스크림말고 쫀뜩하고 리치한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진수를 느끼기에 완벽한 dq이었다. 이날 이후로 이렇게 dq을 알게 된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2박 3일의 추억을 머릿속에 묻어두고 시간만 나면 이야기한다. 멋진 호텔을 빌리지 않아도, 비행기를 타고 가는 해외여행이나 심지어 제주도 힐링여행이 아니더라도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이지만 우리들끼리 밥해다 먹고 동네에 슬리퍼 신고 놀러다닌 2박 3일 생일파티는 조촐해보이지만 가장 여운이 진했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어떤 생일파티보다 거창하고 근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진정한 생일파티의 의미, 누군가를 축하하고 기념한다는 것에 대해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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