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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쑤 Sep 29. 2016

추석 피신 여행, 떠나고 보는 상해

중국 속의 또 다른 중국 상해

 김포에서 상해 홍차오 공항까지는 2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비행기가 작아도 충분히 불편한 비행시간이 용납되는 거리였다. 그리고 둘 다 도심에서 가까이 붙어있어 편리했고 추석 연휴 시작 전 날 공항이 굉장히 복잡할 것 같았지만 김포공항은 예외라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라면 중국은 그냥 늘 멀리 크게 있는 나라였다. 옆에 붙어 있다고는 하는데 국제선 비행기라는 것을 타고 가야 하고 북한도 있으니 체감상 일본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중국은 게다가 비자도 필요한 나라라서 상해 여행을 목적으로 한 이번 여행에서 제 3국으로의 환승지로 상해를 정하고 태국으로 가는 비싼 비행이었다. 이번 추석 땐 내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오랜 바람이 하늘에 닿았는지 추석 연휴 이틀을 앞두고 그날 저녁 급하게 75만 원쯤 하는 비행기표를 샀고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비행기에 올랐다. 거기까진 좋았다. 뭐 아무것도 몰라도 든든히 잘 곳이 있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더라도 태국에서 재밌게, 맛있게 놀면 그만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기대 없이 상해 홍차오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70년대를 보는 듯한 지저분함, 공기는 숨이 탁탁 막히고, 정신없이 공사 소리에 귀는 어지럽고 사람들은 불친절했다. 핸드폰 유심을 개통하려니 25달러라는 거금을 지불해야 했고 우버택시는 신용 카드 인증이 갑자기 되지 않아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기대 없이 도착한 중국이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중국이 그럼 그렇지라는 인식으로 굳어졌다.


 ATM 머신으로 가서 돈을 뽑고 맥도널드에 앉아 작은 돈으로 바꾼 후 프렌치프라이를 질근질근 씹으며 인상을 쓰기 바빴다. 공항에서 급하게 사온 가이드북에는 호텔의 주소가 나와있지 않아 무작정 일반 택시를 타는 곳으로 갔다. 진짜 러시아에서 몇 배는 더 주고 사설 택시를 탔는데 그때만큼 바퀴 네 개만 달린 채 겨우 달리는 택시였다. 그때만 그랬고 호텔의 위치가 애매해 택시를 자주 타고 다녔는데 그때만큼 안 좋은 택시는 없었다. 중국의 호텔이 넓고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호텔에 도착하니 중국의 스케일에 압도되는 기분이 무엇인지 실로 체감되는 듯했다. 비행시간이 짧아 덜 피곤할 줄 알았는데 처음 공항에 도착하고 우버가 안 되는 바람에 멘붕을 겪어 녹다운되었다.

 그리고 애프터눈 티타임 때 한번 가서 끼니를 대신하고 호텔 방에서 좀 쉬다가 칵테일 타임에 내려가서 갓 쪄낸 만두를 든든하게 먹고 동방명주로 나갔다. 첫날 이렇게 먹으니 뭘 먹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고, 어딜 찾아다니지 않아도 돼서 좋았고, 호텔 가격에 포함되어있어서 좋았고, 가뜩이나 중국 먹거리에 대한 불신이 있었는데 그나마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디저트도 밖에서 하나씩 사 먹으면 다 비싼데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달콤한 디저트를 종류별로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진짜 맛있는 초콜릿이 그득했고 입에 들어가는 순간 극강의 부드러움과 기분 좋은 달콤함이 뒤섰였다. 그런데 이 선비 놀음도 하루 이틀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호텔에서 묵으면서 신기했던 건 헬스장이었다. 투숙객은 눈에 많이 보이지 않았지만 헬스장에는 투숙객 말고 현지인중에 회원권을 끊어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5명 정도가 운동을 하면 두 세명이 헬스 트레이너라 개인당 지도가 가능하게끔 했는데 진짜 잘 사는 중국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은 막 크고 넓고 좋은 헬스장이 아니라 호텔 회원권을 끊고 프라이빗하게 운동하는 곳에서 함께 땀 흘리며 사교의 장이 열릴 수 있음도 감지했다. 밀라노 호텔에서도 느꼈지만 진짜 잘 사는 중국인들의 삶은 다른 나라의 부호들에 비해 뭔가 모른 특별함이 있고 이를 엿보는 재미가 더해진다.


 상해에서 첫날 밤을 호텔에서 어영부영 이렇게 보낼 수가 없어 동방명주로 향했다. 호텔에서 물어보면 무조건 택시를 타라고 해서 택시를 탔는데 첫날 아직 중국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지하철 탄다고 어두울 때 말도 안 통하면서 길 헤매고 에너지 낭비하기 싫어 택시를 탔다. 역시 퇴근시간이라 좀 막히긴 했지만 가격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동방명주를 보기 위함은 둘째치고 아이폰 배터리가 말썽이라 미국에서 구매한 아이폰을 들고 갔는데 지니어스 바에서는 단호하게 미국에서 샀으면 미국으로 가라고 말해주었다. 아이폰에 애플케어도 먹였는데 억울했다. 맥북은 다른 나라에서 사도 월드 워런티가 되지만 아이폰은 무조건 자기가 머무는 나라에서 사는 게 진리임을 깨달았다. 대부분 지니어스 바 직원들이 영어가 유창하여 내 상황을 설명하는데 ABC(American Born Chinese)냐고 뜬금없이 물었다. 처음엔 그런 생뚱맞은 질문을 듣고 황당했는데 캐나다에서 가장 환율 비쌀 때 눈물 콧물 쏟고 사기당해가며 당당하고 꿋꿋하게 컬리지를 나온 보람이 있나 싶어 괜스레 으쓱해졌다.

우리나라 명동을 보는 듯 화려했고 사람도 많았다. 갑자기 비가 내렸고 챙겨간 우산은 유용했으며 중국 공안이 왜 중국에서 절대적 존재인지 알게 하는 은근 갑질을 거리에서 남발하고 있었다. 미국이나 중국이나 땅덩어리가 큰 나라는 경찰의 힘이 세야 그 다양하고 많은 국민들을 컨트롤할 수 있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동시에 대한민국의 경찰이 진짜 국민들을 위해 일하고 우리를 지켜준다는 감사함을 잊고 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기회였다.

 말로만 듣던 릴리안 베이커리에서 막 꺼낸 에그타르트를 먹고 있는데 분명히 달콤한 디저트를 원 없이 먹고 새우살이 탱실탱실한 만두까지 든든히 먹었는데도 또 부드럽게 입에서 녹는 걸 보면 진짜 잘 만든 에그타르트임은 틀림없다. bake의 에그타르트보다 좀 투박한데 그래서 더 크리스피하고 진하게 달콤하다. 따끈한 에그타르트를 한 입 베어 무는데 배고플 때 먹으면 충분히 샹투스가 울리고도 남을 만큼 맛있었다. 우리나라에선 폴바셋의 에그타르트의 맛과 흡사했지만 우리는 줄 때 따뜻하게 주질 않으니 그 진한 감동이 덜한 것 같았다.

 중국에선 차라리 이게 진짤까? 의심하는 것보다 잘 만든 짝퉁인 미니소가 좋았다. 우리나라 신촌에도 미니소가 들어왔는데 한국보다는 조금 싼 가격이었지만 중국에서 딱히 살게 없어 미니 소에서 중국에 다녀간 기념품으로 블루투스 스피커와 핸드폰 충전기를 샀는데 큰 아쉬움 없이 잘 쓰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봉봉과 같은 오래된 음료들이 미니소에서 팔리고 있어 이젠 음식도 한류의 시대에 도래한 것인가 반가움이 앞섰다.

 중국 하면 어딜 가나 사람도 많음은 당연지사였고, 상해하면 진짜 거대하게 큰 도시임을 느낀다. 중국에서 10년을 살다온 친구가 내가 상해에 가면 참 좋아할 와이탄도 있고 동방명주 뷰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상해에 있다가 서울에 들어오면 너무 시골에 온 것 같다는 말을 처음 듣고 어이가 없었는데 호텔에서 도심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빌딩의 규모를 보니 왜 서울이 시골 같다는 소리가 나오는지 가늠이 되었다.  

 참 지저분한데 또 화려하고,
규모도 큰데 사람들은 정말 못 사는 것 같고,
각종 혼란이 뒤섞인 첫날의 상해에서
나는 부러움 섞인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미래는 누구도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사람이 보기 드물다. 특히나 취업시장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이 좋아질 것이라던지 땅값이 오르고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미래에 대한 좌절감에 빠져 살았다. 하지만 중국사람들은 달랐다. 조금 부족하고 모자라고 문제가 있어도 우리나라는 곧 지금보다 더 잘 될 거야, 세상의 중심이 될 거라는 확신과 기대 속에 소리도 내지르고 당당하게 사는 것 같았다. 낙관적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중국인들에 대한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중국도 추석 3일 연휴를 앞두고 있어서 거리는 평소보다 더 분주하다고 했다. 그리고 연휴가 시작하는 날부터는 거리의 교통상황이 좋아졌다. 상해에 사는 사람들이 다 외곽으로 나가서 호텔 매니저는 늘 45분이 걸리는 출근시간이 20분이 걸려서 너무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당황했다고 했다. 이번에는 중국과 태국을 함께 갔다 와서인지 두 나라가 자꾸 비교가 된다.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엔 상해보다 방콕이 여행지로 적합해 보이고 한참 get inspired 할 수 있는 나이 때의 사람들에겐 상해에서 발전하는 기운과 대륙의 스케일을 한눈에 체감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 같다. 상해의 지하철은 서울보다 더 많은 노선이 있었고 부산의 지하철처럼 가로폭이 좁았지만 굉장히 잘 정비되어 있었다.

 어제 고치지 못한 아이폰 배터리 덕에 동생과 연락이 되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지하철에서 빠져나왔는데 비가 엄청 쏟아지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그냥 시내 쪽으로 걷다가 만나기로 한 은행에 섰는데 생각보다 은행의 규모가 너무 커서 은행 앞에서 보자고 했는데 은행의 어떤 문에 서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아 우선 와이파이가 안정적으로 되는 건너편 큰 호텔 로비에서 배터리 1%에 침을 꼴딱 삼키며 무사히 상봉했다.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여행한 동생은 입이 한 대빨 나와 있었고 겨우 마음을 풀고 고대하던 북경오리 집으로 갔다. 외국인도 많았고 현지인에게도 사랑받는 맛집이었다. 이 집의 파채가 요리되어서 나오는 게 느끼하지 않아 원래 둘이서 가면 오리 한 마리는커녕 딱 세 번 싸 먹고 나면 그때부터 물리기 시작하는데 여기는 파요리가 그 느끼함을 잡아줘서 오리 한 마리 홀라당 다 먹고 예원으로 나섰다. 가짜 계란도 만든다는데 길거리의 음식은 물론이고 식당의 음식도 못 미더워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는데 이 집만큼은 외국인들이 많아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으니 그 믿지 못할 음식에 대한 두려움이 누그러드는 것 같았다.

 소문으로만 듣던 허유산 망고를 입가심 삼아 먹고 예원으로 곧장 달려갔다. 배가 너무 불러 내가 정말 사랑해 마지않는 데일리 퀸이 보였지만 마음속으로 아쉬움 가득 섞인 눈물 찔끔 흘리며 참았고 비도 얼추 그쳐 예원을 돌아볼 수가 있었다.

 하루 종일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지쳐있던 탓에다 비가 와서 예원에 사람이 많이 없어서 휑한 느낌이 감돌았다. 그리고 곧장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상해를 절대 제대로 여행했다고 할 수 없다. 그냥 주위에서 워낙 나에게 상해가 요즘 뜨고 있고, 상해에 한번 가보면 나랑 잘 어울리는 도시 같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여럿 들어 도대체 뭐가 있길래 내가 가서 반한다는 말인지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상해를 두 발로, 그리고 각종 교통수단을 열심히 번갈아타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상해의 좋고 멋진 것들을 둘러보면서 점점 더 뚜렷해진 생각이 있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도시와 나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상해는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도시지만 살고 싶은 도시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 중국을 소화하기에 나의 식견과 문화적 덕망은 부족했고, 여행 내내 목과 눈이 간지러워 피곤이 더 심하게 몰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캐나다 토론토와 중국 상해 둘 중에서 꼭 살아야 한다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상해를 택할 것이다. 우선 한국과 가깝다는 지리적 장점과 도시의 색깔이 캐나다보다는 상해가 더 닮아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천지가 그렇게 좋다길래 신천지를 찾았다. 미래의 자동차로 오르내리고 있는 테슬라의 전기 자동차 매장도 신기했고 신천지는 그냥 다운타운 토론토의 가장 중심가, 정확히 말하자면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온타리오 레이크 호수로 가는 길가의 느낌이 든다. 누군가는 유럽의 한 길거리를 연상케 한다고 했는데 그런 유럽의 고풍스러운 느낌은 없었고 깔끔하게 나무와 잘 우거져 고급스러운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줄이어져 있고 거기서 대부분 식사를 하고 음료를 즐기는 사람들이 외국인, 특히 서양인, 백인들이었다. 신천지를 가보고 스친 생각은 상해에서 살아야 한다면 신천지가 쾌적하고 센스 넘치고 참 좋은 공간인데, 신천지가 좋아서 상해에 살 만큼의 매력은 느끼지 못했다. 바꿔 말하면 이런 것이다. 뉴욕이라는 도시만으로 너무 좋아서 살고 싶은 사람이 전 세계에 많다. 그런데 상해는 어떤 이유에서든 살게 되었고 살다 보니 신천지라는 좋은 공간이 있었다는 정도로만 잘 정돈된 공간이었다. 물론 2박 3일 상해 공기에 콧바람만 넣어본 사람으로서 함부로 훈수 두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름 전 세계 다양한 여행지를 여행한 사람으로서의 느낌 정도라 치면 알맞지 싶다.

 지하철 역은 몇 개 지나지 않았지만 중간에 한번 갈아타야 해서 택시를 탈 가하다가 지하철을 한번 타보았다. 우리나라만큼이나 환승역 간의 거리가 멀었고 감사한 것은 지하철은 잘 정돈되고 깔끔했으며 화장실이 역마다 있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탈 때 공안을 늘 발견하는 것도 중국에 와 있음을 감지하게 해주는 요소였다.

 중국의 날계란들은 저렇게 깨지지도 않고 얌전히 이동한다. 실제 매장에서도 날계란들이 아무런 완충장치 없이 쌓여있는데 조금의 아슬아슬함도 느껴지지 않아 더 신기했다. 어차피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이 치열함이 있고 그 사이에서 주고받는 정과 매너가 있는데 이를 어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느냐의 차이가 있다. 

 특색 있는 가게들은 많았지만 지갑을 열기엔 전반적으로 비쌌으며 엄마가 사 오면 다 먼지 쌓이고 짐 된다고 할 만한 것들이 참 많았다. 그리 심하게 호객행위를 하지 않아 부담 없이 구경할 수 있었는데 사람들이 중국에 가서 사 오는 예쁜 여인들이 그려진 향수나, 핸드크림 등은 눈으로만 중국을 담아 두었다. 중국은 은근히 과감한 색감을 잘 사용해서 그게 의외로 엄청 트렌디한 효과를 나타내는데 강하다는 것을 거리 곳곳에서 느낄 때마다 아름다움에 흠칫 놀랐다.

 프랑스 조계지가 좋다 하여 가이드북의 안내를 따라 타이캉루 텐쯔팡을 찾았다. 좀 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외곽으로도 날 잡아 나가보고 싶었고 그것보다 더 우선순위로 해보고 싶었던 것은 상해의 문화마을이 있다고 하던데 오래전부터 중국이 자본주의에 문을 열기 시작할 때부터 미술에 투자를 엄청 해왔다고 들어왔다. 그래서 그 예술과 문화의 깊이를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타이캉루 텐쯔팡에선 그 갈증을 완벽히 해소하진 못했다. 비도 오고 좀 지치길래 잘 모르는 카페를 찾아 들어가기도 귀찮아 그냥 눈앞에 보이는 화가를 찾았다. 그리고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파리나 다른 외국에 비하면 나름 싼 가격에 초상화를 그렸는데 영 내 모습 같지 않고 너무 미화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리는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실물과 그림을 보고 피식, 피식거리며 웃고 지나가서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도 없지 않았지만 상해에서 특별한 추억 하나를 만들 수 있었던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호텔에서 공항으로 가려는데 자가 부상 열차를 타려고 좀 일찍 로비에 나와 있었다. 큰 짐을 싣고 가려니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했지만 우연히 내가 도어맨에게 가는 곳을 이야기하고 바로 뒤에 독일 아주머니로 보이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아줌마가 공항에 가신다고 하는 것이었다. 함께 여행 다닌 동생에게 겨우 양해를 구하고 아줌마와 셋이서 동승했다. 당연히 1/3씩 내면 된다고 생각했고 예상보다 더 빨리 도착하게 되었는데 아줌마는 어차피 회사에서 출장비를 지불해서 내준다고 돈을 결코 받지 않으셨다. 자기부상 열차를 타고 싶어서 기존의 플랜과 달라져버려 입이 삐쭉 나와있던 동생도 아줌마의 호의에 마음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이드북도 하나 없이 땡모반(수박주스) 맛있다는 말 하나 믿고 태국 방콕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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