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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쑤 Sep 27. 2016

어느 더운 여름날의 디저트

2016년 어느 더운 여름날. 남들이 맛있다는 달달구리는 다 먹어보자!

 나는 참 달달구리가 좋다. 밥 배 따로 있고 디저트 배 따로 있다지만 밥 배 전에 디저트 배를 먼저 채울 때도 의외로 든든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언젠가부터 밥을 먹으면 디저트를 먹으러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배가 충분히 부름에도 우리의 진한 우정과, 우리의 진한 관계와 만남이 온전함을 증명하는 마침표가 디저트를 먹는 행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줌마, 끼리 있어요?" 늘 뒷북이다. 인스타그램을 하진 않지만 인스타를 하지 않는 나마저도 이게 인스타에서 인기 있다 것을 알게 되는 정도면 끼리 kiri 크림치즈는 인스타의 인기를 뚫고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원래 딥핑해서 먹는 스틱 과자류를 좋아하는데 그냥 크림치즈였다면 그저 그랬겠지만 찍어먹는 비스켓이 얼마나 고소할지 궁금해서 (완전 핑계) 사 먹어봤다. 스위스에서는 정말 흔하게 슈퍼마켓에 유제품의 한 코너에 가득 쌓여있던데 우리나라는 어쩔 때 보면 너무 살기 좋은 나라이지만 유제품의 종류가 많지 않은 점은 참 외국여행만 가면 많고 많은 유제품의 종류 중에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몇십 분씩 그 앞에 앉아 성분을 따지고 디자인과 회사를 따져가며 꼭 하나씩 사 먹어보게 만든다. 

 이걸 먹어본 누군가의 평이 웃겼다. 내 돈 주고 사 먹으면 아까운데 남이 사서 하나 먹으면 정말 맛있게 먹는 맛이란다. 어느 정도 공감은 가고 좀 비싼 감은 없지 않아 있지만 4팩이나 들었음에 위안을 느낀다. 끼리 이전엔 요즘 정말 열 일하는 요구르트를 보다 보면 지금처럼 요구르트 아줌마를 애타게 찾았던 때가 있었던가 싶다. 유명세만큼 고소하고 리치한 크림치즈의 향이 그득하다. 피크닉갈때, 간단히 가족여행 갈 때 혹은 출출할 때 하나씩 넣고 함께 나눠먹으면 잠시 허기를 떼울 수 있는 찰나를 바람직하고 알차게 만드는 선택이 된다.

밀탑빙수를 먹기 위해 몇 년 전 추운 겨울날 두툼한 오리털 파카를 입고 코가 빨개져 압구정의 한 백화점을 찾았다. 그때는 밀탑 팥빙수를 먹기 위해 찾아간 터라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그 맛의 감동이 두배, 세배였지만 이번엔 현대 시티 아웃렛에서 앉아있을 곳을 찾기 위해 잠시 들려 맛본 밀탑 빙수는 전반적인 타 빙수의 퀄리티가 높아진 탓인지 여기까지 찾아서 밀탑빙수만 고집할 만큼의 메리트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집에서 만든 것처럼 많이 달지 않아 좋았고 팥 자체는 다른 빙수가게들에 비해 참 좋은 걸 쓴다는 것은 다시금 인지하게 되었다.

줄 서서 먹는다는 대구의 한 빵집에 통옥수수빵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엄마, 이거 유명하대!"라고 엄마를 꼬드겼다. 옥수수 참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이 왜 이 삼송 빵집의 통옥수수빵에 열광하는지는 도무지 가늠하기 어려울 일이었다. 세상엔 유명하지만 내 입맛엔 맞지 않은 디저트도 있음을 알게 한다.

건강을 지킨다며 견과류를 사야 하는데 막상 살이 찔 것 같고(디저트는 그리 죄책감없이 먹으면서) 견과류 사는 것을 계속 미적거리고 있었는데 아끼는 친구로부터 한 줌 견과를 몇 줄 선물 받았다. 인터넷에서 옛날에 나도 견과류 한번 사봤는데 오래되었는지 눅눅하고 오래된 쿰쿰한 냄새가 나서 있던 것도 그대로 버린 기억이 있는데 이 산과 들에 제품은 해바라기씨와 아몬드, 크렌베리 그리고 고소한 호두까지 그 비율이 부담스럽지 않고 고소함만 모아 놓은 것 같았다. 너무 맛있게 잘 먹어서 내가 또 사야지하고 쿠팡에 장바구니를 담아 뒀는데 막상 사려고 하니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미적거리고 있다. 역시 몸에 좋은 디저트와 친해지는 것은 어색한 사이의 사람과 친해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신세계 강남 한 모퉁이에 자리 잡은 미스터 홈즈 베이커리의 크러핀과 브리오슈를 먹어보았다. 크로와상과 머핀이 한 번에 합쳐진 것인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명하고들 유투브에서 하나같이 먹어보길래 한국에 들어와 있는 반가움에 덮석 샀다. 늘 메뉴가 바뀐다고 하는데 누텔라 가득 들어간 초코 크러핀은 시간이 오래되어도 맛있었다. 설탕이 떨어지니 먹는데 애는 좀 겪었지만 격하게 달콤한 설탕에 내 혀를 다이빙시키고 싶을 때 안성맞춤인 디저트다. 가격에 비해선 보이는 비주얼 때문에 트렌디한 것까지 감안한다 해도 좀 비싸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까늘레가 너무 좋아졌다. 한때는 당근 케익이 그리 좋더니 요즘은 세상에 맛있다는 까늘레는 찾아서 먹어보고 싶을 만큼 까늘레의 매력에 빠졌다. 이 까늘레는 테라로사에서 6시인가? 저녁 시간대에 마감세일을 할 때 남은 빵들을 사 오면서 하나 가져온 것인데 고소하고 쫀득한데 진한 맛까지 너무 쫀득해서 떡인가 싶을 만큼 쫀득하면서도 또 깔끔하게 손에 묻지도 않는 기분 좋은 달콤함의 끝을 달린다. 디저트는 먹으면 먹을수록 많이 달지 않으면서도 깔끔하게 뒷맛을 자랑하는, 굳이 목이 막히지 않는 그런 맛을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여의도에 가면 테라로사를 자주 찾게 된다. 뭘 시켜도 다 기본 그 이상을 하니까 어떤 디저트를 먹어도 실패하지 않으니까 즐겨 찾게 되는 것 같다. 밥도 맛이 없으면 밥값이 아깝다고 느껴지지만 밥은 최소한 억지로 좀 먹다 보면 배라도 불러서 억울함이 덜한데 디저트는 막상 갔는데 맛이 없으면 진짜 돈이 아깝고 시간이 아깝고 화가 치밀어 오를 만큼 납득이 안 가는 배신감을 느끼곤 한다. 그런 점으로 보아 역으로 테라로사는 찬양에 가까울 만큼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디저트면서 가격 가지고도 장난치지 않고 카페의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10점 만점에 10점에 가까울 만큼 자꾸 찾고 싶은 카페가 되었다. 티라미수처럼 크리미하고 부드러운 디저트를 좋아하는 아이를 데리고 테라로사를 찾았는데 이번에도 역시였다. 원래 이곳의 티라미수가 유명하다고들 하는데 왜 유명한지 한 입 먹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극강의 부드러움이다. 그리고 커피 맛있다고 소문난 이곳의 에스프레소향까지 겹치면서 부드럽게 넘어가는 목 넘김까지 테라로사는 이번에도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의리!

1, 2년 전만 해도 설빙을 엄청 자주 갔던 것 같은데 올해는 빙수를 먹을 일이 있어도 굳이 설빙을 찾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이 멜론 빙수가 올여름 처음이자 마지막 설빙에서 먹은 것이었다. 유투브 채널을 보다 보면 watermelon challenge라고 해서 수박 두 통을 사서 저렇게 동그랗게 빚은 다음에 남은 반통을 파내는 게 유행이었는데 이것은 멜론 한통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맛이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기계가 파진 않았을 것 같고 이 멜론 판다고 누군가는 정말 욕튀어나오면서 팠을 생각을 하니 고달파졌다. 나의 삶도 함께.

상수동의 유명한 카페 앤트러사이트. 대림창고는 아직 가보지 않았는데 거기도 여기처럼 폐공장에 뭔가 모자란 듯 깔끔한 '빈 공간'이 또 하나의 센스와 감성이 되는 곳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앤트로폴로지라고 내가 한때 애정 하다 못해 환장했던 미국의 편집샵이 있는데 이곳 카페 이름을 들을 때마다 거기가 생각났다. 이 날의 당근케익은 달지 않아 맛있었고(사람들이 많이 찾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맛을 자랑하는 거구나 느껴질 만큼) 견과류가 듬뿍 들어가 있었다. 디저트나 실험실의 비커같은 잔에 담긴 신선하고 새큼한 밸런스를 잘 맞춘 티나 어떤 카페에서도 따라 할 수 없는 맛의 비율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공간까지 독보적으로 만드니 짝퉁이 나와도 진짜의 클라스에는 오래 살아남는다.

압구정 배드파머스에서 연어 그득 들어간 샐러드를 배불리 먹고 이태원으로 이동해 베이커스 테이블에서 캐럿 케이크와 초코케이크를 먹었다. 가격 대비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고 많이 달지 않은 독일식 디저트를 알게 되어 너무 좋다. 한결같이 부담스럽지 않고 맛있어서 테이크 아웃해서  친구, 어른들께 드려도 너 나 할 것 없이 이곳의 케이크를 좋아한다. 독일 프랑크 푸르트에서 이주 넘게 머무르면서 눈에 보이는 맛있게 만들 것 같은 디저트 집을 찾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가격은 3500원대이면서 하나같이 달지 않고 조금은 투박하지만 그래서 더 맛있다는 것이다. 조금 덜 예쁜 맛과 모양의 독일식 디저트가 오히려 밥 따로, 디저트 따로가 아니라 든든하고 달콤한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늘 독일식 디저트가 그리울 때마다 거침없이 이태원이든 서울역이든 들려 이곳의 디저트를 맛볼 수 있음이 감사하다.

윤씨밀방이 유명하다고 해서 몇 십분 웨이팅을 하고 겨우 들어갔는데 사당의 겁 없는 토끼 부엌만큼 못하단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터벅터벅 테라스가 잘 되어있는 카페에 들어가 빙수를 먹었다. 과일도 푸짐하게 들어가고 먹을 때는 너무 잘 시켰다며 좋아했는데 먹고 나니 또 하나 더 시켜먹을 만큼의 감칠맛 같은 게 없었다. 디저트는 밥집 이상으로 또 생각이 나고 또 찾고 싶어 져야 하는 게 나에게는 더 중요한데 그 대체 불가능한 맛있는 빙수를 파는 곳은 아니었다. 그리고 과일이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가격이 비쌌다.

너무 급하게 녹는 것만 아니었으면 1500원의 호사를 맥도날드에서 누릴 수 있다는 것에 찬성하지만 두 세입 입쯤 베어 먹는 순간부터 미친 듯이 흘러내리는 바람에 단짠단짠한 캐러멜 솔트 아이스크림의 맛을 즐기기보다 흘러내리기 급급하여 내 손에 묻고 땅에 흘릴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머리가 띵해질 만큼 빨리 아이스크림을 먹어치워야 하는 게임을 하는 것만 같아 괴로워서 다신 사 먹지 않았다. 

이태원에 루프트바로 유명한 our commune에서 명성만큼 루프트바는 더웠고 막상 뷰도 그리 감동적이진 않았지만 (이곳의 버거도 별로...) 이곳의 건강한 요거트만은 최고 점수를 주고 싶을 만큼 맛있게 상큼하고 리치했다. 돈을 좀 추가하면 프룬 같은 과일을 좀 더 올려주는데 충분히 가치 있다. 요거트 좀 먹어봤다, 요거트에 쓰는 돈만큼은 아깝지 않음을 자부하는 만큼 일동제약에서 나오는 요거트맛과 제일 비슷한 형태의 꾸덕한 달콤 새콤한 그릭 요거트를 자랑한다. 

 커피빈은 의외로 맛있는 것이 많다. 스타벅스에 비해서 조금 비싸긴 하지만 스타벅스엔 좋아하는 음료나 디저트가 없다. 즐겨 먹는 샐러드가 하나 있긴 한데 조금 비싸고 늘 블루베리 베이글과 함께 먹는 리코타 샐러드여야 해서 음료까지 시키면 만원은 훌쩍 넘어 부담스러워서 스타벅스는 잘 안 간다. 커피빈은 디카페인이 되니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이곳의 오레오 가루 가득 올린 크림치즈케이크도 필라델피아 크림치즈케이크가 울고 갈 만큼 풍미가 일품이었다. 음료나 디저트나 뭘 시켜도 기본 이상을 하는 게 개인적으론 스타벅스보다는 커피빈 같다.

신세계 강남 지하에 이 정도면 인기가 끝날만도 한데 그 인기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일본에서 온 디에그타르트 bake는 깔끔하게 진한 에그타르트다. 릴리안 베이커리에서 며칠 전에 에그타르트를 먹어봤는데 입에 녹는 것이야말로 맛있다는 에그타르트 집이 다 하나같이 자랑하는 맛이지만 릴리안은 좀 더 달콤함과 크로와상처럼 빵이 바삭거려서 그 달콤함의 밸런스를 너무 잘 조절해 극강의 맛이라고 평한다면 bake는 똑 떨어지는 깔끔하면서도 진~한 풍미를 자랑하는 에그타르트다. 두 곳다 다 맛있는 에그타르트지만 어디든 나오자마자 곧장 먹는 에그타르트만큼 맛있는 게 없다. 

테라로사의 비트 주스마저 맛있었다. 호두파이도 크런치하면서 호두가 아낌없이 들어가 씹히는 맛이 있고 미국에 아주 음식 솜씨가 좋은 친구 집에 초대받아 그 친구의 엄마가 제일 자신 있어하는 호두파이를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테라로사의 티라미수보다는 호두파이를 선호할 만큼 호두파이가 만족스러웠다. 사람들이 테라로사 하면 맛있는 티라미수로 유명하지만 그 맛 이상을 충분히 자랑하는 이 곳의 호두파이는 다른 곳의 파이류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덜 느끼하면서 막 달콤하지 않아 한 조각을 홀라당 첫 입부터 마지막 입 끝날 때까지 맛있게 한 조각을 먹을 수 있어서 유독 좋았던 것 같다.


요 며칠, 샐러드로 한 끼 식사를 대신하고 탄수화물을 일부러 적게 먹으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디저트를 찾는 일도 줄어든다. 굳이 디저트를 찾지 않아도 될 만큼 당이 땡기는 일이 없고 꼭 당이 땡길때는 좋은 것만 넣고 만들었다는 다크 초콜릿 한 조각을 베어 물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당충전을 대신한다. 디저트를 이토록 craving, 갈구했던 게 평소 meal식사를 할 때 너무 자극적이거나 고 탄수화물 혹은 GI가 높은 음식들을 먹고 혀를 한 껏 자극시켜놓고선 그 자극 이상을 충족시키기 위한 달콤함을 찾아 헤맨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언제나 건강하게 내 몸이 원하는 음식을 충분히 집중해서 먹고 즐기고 운동하다 보면 정신마저 자연스레 건강한 love yourself루틴이 자리 잡을 것이다. 오늘도 내 몸이 원하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되고,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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