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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쑤 Oct 29. 2017

내겐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중요했다.

감사한 인연, 웃음지을 수 있는 이유

토론토에서 실컷 웃고 먹고 마시길 반복하며 곳곳을 둘러보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끊기질 않았다. 걷다 지쳐 옥빌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고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맡겨둔 짐을 찾아 유니온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유니온스테이션에서 옥빌로 가는 go train을 기다리며 우리는 센스있는 친구의 게임기덕에 바닥에 철푸덕 앉아 내 캐리어를 테이블삼아 레이싱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누구보다 어른스럽게 자신에 대해선 엄격하고 미래를 이야기할땐 진지하지만 이럴때 보면 셋다 하염없이 십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친구들도 나와 같기에 우리는 문화와 언어 국경을 뛰어넘어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 날 밤 선물 증정식이 끝나고 아침 일찍 친구가 해주는 토스트를 만들어 먹고는 옥빌 다운타운으로 나갔다. 학교를 가고 과제를 하느라 늘 쫓기는 삶을 살았던 옥빌이었는데 이번엔 옥빌을 잘 아는 관광객으로써 옥빌은 너무나 느긋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도시였다. 다운타운에서 이것 저것 달라진 가게, 없어진 가게, 새로 생길 가게들 옥빌의 시간에 맞게 조금씩 천천히 변화하는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늘 기숙사 냉장고에 사다놓고 떨어지기가 무섭게 채워넣는 밴앤제리 아이스크림과 나의 주식이 되었던 cobs bakery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요거트까지 20불 안되는 가격에 세상을 다가진 행복과 든든함을 짊어지고 쇼핑을 마쳤다.

할로윈을 맞이하는 옥빌 홀푸드의 자세는 바람직하다. 지금 생각하면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이나 하나 제대로 찍어올걸 후회되는 이국적인 풍경이지만 그땐 또 이게 너무나 익숙한 할로윈 호박들 중 하나란 생각에 무심코 지나쳤다. 이 진한 그리움에 다시 옥빌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옥빌이야 말로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고, 나를 언제든 보듬어주는 그런 소중한 공간의 추억들이 곳곳에 서려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한때 착즙 주스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한국은 아직 종류가 적은데 캐나다나 미국만해도 착즙 주스의 종류가 굉장히 여러가지 있다. 특히 건강에 좋을 것 같은 초록색들을 위주로 가득 마셔볼 심산이었는데 막상 한 두어번 트라이했더니 영 맵고 역한 맛까지 나는 음료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의 사랑 고구마 테라칩은 미국에서 꼭 사오리라 다짐했지만 예상치 못한 큰 선물을 받은터라 캐리어가 모자라 챙겨오지 못한 아쉬운 아이템이다. 그땐 뭐가 그리도 맛있었는지 맛에 심취할때가 있었다. 맛에 연연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지금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게 내겐 소중한 의미지만 지금은 막상 너무 바쁜 일상에 냉장고에 먹을게 없고 물마져 떨어지기 일쑤이고 혼자사는데 여행이니 출장이니 일주일씩 갔다오고 나면 그 이전부터는 음식을 아예 들여놓지않는게 더 편해져버렸다. 그렇게 강박관념처럼 좋아하는 것들을 쌓아놓고 먹던 내게 이렇게 같은 사람이 달라질 수 있는지 환경의 변화가 큰 탓이려니 생각한다.

멀리서 온 나를 위해 손님 대접 열심히 해주는 내 친구덕에 내가 이리도 복받은 사람인지 한없이 행복했던 나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인생 첫요리라는 퓨전 스테이크 우동요리를 친구에게 레시피를 배워와 그대로 요리를 몇시간째 해주곤 그 사이엔 내가 배가 점심 시간을 훌쩍 넘긴 내가 배가 고플까 홀푸드에서 사온 고구마프라이를 오븐에다 바삭바삭하게 굽고선 스리라차소스에 마요네즈를 섞은 황금비율로 마성의 소스까지 만들어주었다.

학교를 그렇게 쏘다니고 수업시간 쉬는 시간 할것없이 학교 주위를 그리 찾아다녔는데 졸업하고 다시 찾은 학교에서 드디어 짐이 어디있는지 발견했다. 기숙사 안에 짐이 있어서 이리 좋은 시설이 우리 학교에 있는지 몰랐다는 정말 궁색한 변명을 늘어 놓는다.

나를 배웅해주러 친구들이 본업을 마치고 늦은 밤 하나같이 모여 우리는 우리끼리 sober up할때 까지 떠들고 놀았다. 마지막 헤어짐이 다가오는 공항 가는 길엔 누가 볼 것 없이 기차안에서 언제 다시 볼지 모른다는 속상함에 눈물을 훔쳤고 다시 또 껄껄거리고 웃기 바빴다.

그 와중에 끝장나게 좋은 날씨와 토론토 도심 공항의 온타리오 레이크 뷰는 최고의 분위기를 선사하고 있었다. 이곳의 아로마 에스프레소 카페야 말로 토론토 최고의 카페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괜히 헤어짐에 덤덤하고 괜찮은척 실컷 셀카도 찍어보았다. 물론 한국에서 급하게 요청한 건들을 처리하느라 대화에 중간 중간 끼지 못하고 노트북을 들고 체크인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세상 따뜻하고 감사한 환대를 받으며 토론토에서 지냈고 그들의 마지막 진한 포옹으로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드디어 내가 좋아라하는 미국을 실컷 누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뉴왁공항에서 아울렛으로 가는 셔틀을 타고 캐리어를 맡겨둘 곳이 없어 망했다싶었는데 친절한 내가 평소 충성하는 브랜드의 가게 언니는 캐리어를 두고 쇼핑하라고 허락해주었다. 우선 일차 쇼핑을 마치고 핸드폰을 개통하러 at&t로 향했다. 어딜가나 뉴저지는 무엇을 사더 택스가 안붙고 제품을 직접 입어볼 수 있는데 많이 넓지 않고 사람도 붐비지 않아 여러모로 좋아하는 브랜드들만 찍고 쇼핑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물론 예정한 두시간은 훌쩍 넘어 캐리어는 더이상 터질 것 같이 빵빵하게 세시간 반이 넘는 바쁜 쇼핑을 마치고 무사히 맨하튼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부탁한 비타민도 뉴저지가 훨씬싼데 아웃렛가격이니 여러개 사면 또 한번 더 할인이 들어가 한국 코스트코와 두배가격 차이를 자랑해 그렇게 무겁게 캐리어를 끙끙거린 가치를 충분히 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침도 요거트 두숟갈에 초코우유 점심은 디카페인 아메리카노에 우유를 넣은 것으로 대신했는데 그렇게 돌아다니고 캐리어를 짊어지고 힘들었으니 당연히 허기가 질만했다. 어둠이 더 내리기 전에 지친 몸을 이끌고 yelp앱을 켜 할렘가이즈라는 할렘의 햄버거가게를 찾았다. 후추 가득한 프라이는 미묘하게 중독되는 강렬함이 있었고 버거야말로 막 만든듯 거친 소스와 패티의 조합은 끝내주게 맛있었다. 오바마의 백만불짜리 미소가 담긴 달러도 기념품으로 팔길래 사왔다. 그렇게 그득하게 저녁을 먹고 밤낮이 바뀐 시차에 회사에서 밀린 일을 처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몇시에 잤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뉴욕에선 내가 몇시에 일어나는지가 중요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여섯시 오십분엔 알람을 맞춰놓고 일곱시에 센트럴파크로 향했다. 어제 홀푸드에서 사둔 뷰티 유투버들이 자주 먹는 naked 쥬스로 배를 채우고 원래 늘 달리던 코스대로 86번가 웨스트에서 부터 겐트럴 파크 초입인 콜럼버스써클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86번가 이스트를 지나 숙소로 돌아왔다.

한시간 반이 넘는 여정동안 여전히 뉴요커들은 일상에 지쳐 힘들어 했지만 그 힘듬 속에서 나를 지키고 내 건강을 지켜내기 위한 체력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일곱시에 센트럴 파크를 뛰는 뉴요커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왜 이리 치열하게 살면서 나를 돌보지느않을까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를 하고 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도 한다. 물론 아침의 찹찹한 공기와 거침없이 달리는 뉴요커들의 활기에 아침이 훨씬 개운해진다.

내가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buchon bakery는 최고의 뷰를 자랑한다. 당이 좀 떨어질땐 이곳의 마카롱을 먹고 보통은 기계 하나에 일억이 넘는다는 커피머신으로 내린 정말 맛있는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쪽쪽 삼키다보면 세상 행복한게 이리 쉽게 얻어지는 것임을 알게한다. 새벽부터 오전 오후 할것 없이 알만한 뉴요커들은 다 알고 있는 fancy하지만 그 가치를 하는 카페다.

그렇게 디카페인 커피를 다시 쥐고 나머지 여정을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오면 올수록 더 예뻐지는 센트럴 파크는 내가 왜 이토록 뉴욕을 갈망하는지, 나를 꿈꾸게 하는 마법을 가진 도시다. 왜 지금의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내가 왜 꿈을 꾸고 살게 하는 힘을 주는지 이유를 가져다주는 감사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이번에도 역시 뉴욕의 매력에 허우적거리고 정떼려고 갔던 도시에 정만 더 붙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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