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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쑤 Jan 25. 2018

기대가 없던 여행의 결말

다시 찾은 마카오 처음 홍콩 그리고 12월

하루를 더 알차게 놀겠다는 의지에 늘 아침비행기를 타느라 전날 꼬박 밤을 새고 공항에 갔었는데 이번엔 오후 느지막히 집에서 나와 체크인하고 늦은 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엄마와의 여행이 늘다보면 조급함보다, 한가지 더 좋은 것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발견하곤 한다. 느긋함이 주는 여유 그리고 당연한 것들 사이에서 발견하는 감사함이 있다.

마카오 파리지앙 호텔이 프로모션중이라 이곳엣 이틀을 묵었다. 마카오는 라스베가스를 참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했는데 두번째 찾은 마카오는 라스베가스와는 한참 다른 도시였다. 베네치안으로 건너가 식후에 먹으려던 에그타르트를 하나만 먼저 사뒀다. 다시 이곳을 찾는게 너무 머리 아프고 복잡해서 하나 먹어봤는데 참 잘한 상황이었다. 동남아시아의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하다보면 우연히 이곳의 브랜드를 볼때, 클라이언트로 함께 일을 한 브랜드를 만났을때 너무 반갑다. 고단한 일상이지만 그래도 반가움에 애정이 섞인 눈빛으로 마주하게 된다.

싸이의 뮤직비디오에도 나왔다는 레스토랑에 한참을 웨이팅하고 들어갔다. 원래 인터넷 면세점에서 물건을 사곤 했는데 딱히 필요한 물건이 없어 엄마랑 이번에 면세점은 스킵하기로 했다. 그리고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내다 비행기 타러 갈까하고 나왔는데 엄마와 내가 애정하는 브랜드 camper가 세일중이었다. 무려 두켤레를 사면 할인폭이 더 커져서 엄마랑 하나씩 새신발을 사신고 기분 좋게 여행을 시작했다.

극찬하던 음식들은 그냥 저냥이었고 직원의 추천으로 시킨 탄탄면은 불닭볶음면만큼이나 매웠다. 그래서 계속 기침만 하다 속이 다 뒤집히고 가게를 나왔다.

홍콩을 가본적이 없다던 엄마는 몇년전부터 홍콩을 가고 싶다 하였다. 나는 홍콩에 가본 적이 없어도 홍콩을 가고 싶다고 느낀 적 한번 없었는데 엄마덕에 홍콩을 왔다. 호텔 프로모션 중이라 조금의 돈만내면 페리표를 싸게 구할 수 있어 표값을 많이 세이브했다. 그리고 도착한 홍콩은 어지러웠고 지저분했으며 어렸을적 봤던 조성모 뮤직비디오를 회상하게 만들었다.

역에서 내려 와이파이도 안되는데 미슐랭 덤플링 먹겠다고 그렇게 그 주변을 헤매다 겨우 물어 물어 팀호완을 찾았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거의 두시간을 헤맸을 것이다. 허탈한 마음에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데 바로 옆 팀호완 식당에 웨이팅이 한참이었다.

한국인반 중국인반 사이에서 포크번과 제대로된 딤섬을 싼 가격에 즐겼다. 그 맛이 너무 감동적이라 마카오 팀호완도 찾았는데 고기 비릿내도 나고 훨씬 덜 신선해서 지점마다 맛의 차이가 확연히 있음을 느꼈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주말이라 그런지 온 홍콩 도심에선 메이드로 일하는 외국인 여성분들의 축제를 하고 도시를 점령했었다. 명품 가게들 사이에서 있었던 아이러니에 우리나라였으면 장사 안된다고 당장 구청에 민원신고하고 난리쳤을것 같은데 이 광경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홍콩에서 평생 살았던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매 주말마다 이런 광경이 펼쳐진다고 어쩌면 홍콩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였다. 매주마다 이렇게 명품거리에 통행이 어려울만큼 거리를 점령하면 그 상인들이 잠잠한 것이 참 이상하게까지 느껴졌다. 어쩌면 지역 이기주의, 그리고 우리나라가 조금 더 자기 밥그릇에 피해주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액션을 취하는 것이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얼마전 긴자에서도 메인 거리를 주말엔 통제했었는데 우리도 보행자들, 사회 약자들을 위한 일상적인 배려와 관용이 한참 모자란 사회였다.

애프터눈티를 예약해둬서 그 시간에 맞춰 특별한 목적지 없이 걸어다니다 성당에도 들어가보고 이곳 저곳 구경하기 시작했다.

오후 세시에 나온다는 따끈한 스콘에 꽂혀 애프터눈티를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시켰는데 엄마한테 욕만 엄청 들었다. 로즈잼도 영 입맛에 맞지 않아 역했고 샌드위치도 라운지에 비치해둔 샌드위치가 더 신선했다.

안좋은 기억과 경험은 빨리 잊고 털어내야 새로운 미래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행때마다 배우지만 현실에선 다시 쉽게 털어내지 못하고 힘에 겨워한다.

홍콩의 소호거리는 티비에서 소개된 그대로 였고 가끔가다 보이는 힙한 카페와 가게들이 있었다. 커피를 마시지도, 술을 마시지도 못하는 나에겐 이 모든 것들이 시선을 끌기엔 한참 부족했다.

홍콩하면 높은 집값이 떠올라 내겐 살아봄직하지만 집값이 무서워 도망가게하는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 해외 취업을 생각했을때 홍콩은 내게 기회의 땅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제시하는 연봉에서 집값을 빼고나니 한국에 돌아올 이사비용도 없어 보였다.


시장 골목 골목마다 좁은 빌딩숲 사이에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카페들이 많았다.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길거리 노점상 과일 가게에서 엄마랑 체리 한움큼을 사다 우물거리며 먹었다.

아딘지 모르고 지나는 거리 곳곳을 걷다보니 홍콩의 단면을 빠르게 느낄수 있었다. 정처없이 그냥 이쯤이면 점점 가까워질거라 무작정 내려가다 예쁜 골목앞에선 사진도 찍고 겨울의 홍콩을 즐겼다. 홍콩에서 평생을 산 친구가 홍콩을 여름에 가면 같이 간 동행인과 싸우러 가는것이라고 말한 명언이 떠올랐다. 빌딩과 빌딩을 마주보며 뿜어대는 에어콘 환풍기들만 보아도 무시무시하게 습하고 더운 홍콩의 여름을 가늠할 것만 같았다.

지오다노에서는 홍콩 주민들이 다 줄서 있을만큼 세일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고 주말 도심 한가운데를 점령했던 각 국에서 온 아주머니들은 이제 자신이 깔았던 돗자리를 챙겨 하나둘씩 집으로 향하셨다. 빠르게 거리는 한산해졌다.

평소 핸드크림을 잘쓰지 않는데 우연히 crabtree&evelyn 핸드크림을 선물받아 써보았다. 진짜 향이 고급스러운데 자극적이지 않고 보습력도 좋았고 향의 종류도 많았다. 그중에 제일 나를 기분좋게 하는 향 하나를 찾아내 그 매장을 찾느라 이곳 저곳 물어봤다. 어떤 몰에서 겨우 찾았는데 세네개 쓸어오려고 했는데 하나도 겨우 살만큼 록시땅과 가격이 맞먹었다. 러시아에서 사온 핸드크림이야 말로 가성비대비 너무 괜찮은 아이템이다.

홍콩 거리에 어둠이 깔렸고 밝을 땐 보이지 않았던 건물의 디테일과 크리스마스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잠들지 않는 도시로 유명한 홍콩이라지만 오전과 확연히 다른 늦은 오후는 생각보다 정적이었다.

매체에서 자주 보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게 내겐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여행의 재미다. 그런 의미에서 홍콩은 가깝고도 먼 당신이 내게 너무도 빨리 익숙해진 특별한 도시였다. 자판기에서 동전이 없어 못먹었던 초코우유를 손에 들고 내일 먹을 주전부리와 오늘 간단히 해결할 버터 가득 바른 토스트를 홍콩에서 마카오 가는 길에 먹고 나니 하루가 저물었다. 로망도, 힙함도, 쿨함도 없는 비싼 도시 거리 골목 골목을 걸을때마다 빌딩과 빌딩 사이에 다닥 다닥 붙어있는 에어콘 기계를 볼때마다 나는 깨달았다. 도시를 동경한 죄를 달게 받고 있는 중이라고. 화려한 도시의 네온사인만이 나를 가슴뛰게 만드는 이유는 될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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