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이쑤 May 01. 2018

해외취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내게 맞는 회사를 만날때 까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경험하다. #인플루언서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 26살 9월부터 저는 본격적인 취업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몇개월의 고군분투뒤에 나자빠져버린 방송작가와 홈쇼핑 피디 경력, 그리고 영어 라디오 방송국의 피디 최종, 종편 방송국의 피디 최종 시험에서 보기 좋게 떨어지고 난 후 깨달았습니다. 피디라는 직군은 내가 하고 싶어서 지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서 보는 시선과 적당한 현실 타협에 있어서 꽤 사회적 명망이 높고 결혼후에도 전문직으로써 일을 할 수 있는 아주 보통의 대한민국 여자가 살기에 괜찮은 보장된 삶이기에 관심있어 했던 것이라는 걸요. (아, 그리고 지금부턴 남들보다, 남들에 비해, 주위 시선에 라는 수식어들로부터 나를 조금 내버려 두기로 해요.) 

제 개인의 출장도 잦고, 동료의 출장도 잦은 외국계 기업에 다니다보면 출장을 다녀온 동료들이 현지에서 유명하다는 간식들을 자주 접하곤 합니다. @방와수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잡 헌팅에 대한 노력은 결코 몇개월에 이뤄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나에게 꼭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해 많은 경험을 해서 취업할 때에는 절대 잘못된 구멍에서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아래 대학생활 4년을 치열하게 보냈습니다. 시간을 낭비하면 벌이라도 받는 강박증에 걸린 듯이 몇시간 쪽잠에 캠퍼스에선 늘 뛰어다니기 바빴고 쉬는 시간에는 방송제 준비에 섭외전화를 돌리고 학교가 끝나곤 대외 활동 그리고 주말엔 밀린 과제와 대외활동에서의 활동 내용 정리 그리고 블로그까지 꾸준하게 경험했습니다. 대외활동이라는게 대학생으로써 있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고 직접 일은 해보지 않아도 어느정도 그쪽 분야에 내가 몸담을 수 있을지에 대한 유무를 결정하는데에는 시행착오를 덜 겪게 하는 좋은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죠.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서 저는 한국에서의 아주 보통의 대기업, 그리고 늘 저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방송국은 맞지 않은 직군임을 깨달았습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이라는 업무 스콥에서 가장 즐겁게 일할 수 있었던 순간은 인플루언서들과 함께 친분을 쌓고 유투브 채널을 같이 빌드업해나가고 성장해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비글부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유학 직후 2주도 되지 않아 곧장 방송계로 직행할 수 있었던 것은 늘 보고 배운 것이 방송이었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방송이 내 답이 아님을 100% 증명해보고 싶었던 오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란듯이 그 증명을 아주 빠른 시일내에 보였죠. 방송국에 출근하고 이틀째 되던날 옆팀 피디님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쌩뚱맞게 저를 가르키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너는 여기 아니야. 더 화려한 곳으로 가야해."

그때만해도 이틀째 출근한 새내기에게 무슨 그런 쌩뚱맞은 이상한 소리냐고 속으로 생각하고 말았지만 그때의 피디님의 말이 꼭 맞아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화려한 방송계는 아니지만 방송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1년이 안되는 구직이라 쓰고 방황이라 읽는 그 기간동안 점점 취업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아주 보편적인 한국 사회의 회사 생활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니 해외 취업에 자연스럽게 눈이 돌아갔습니다. 어느 나라를 가야하는지, 마케팅이라는 업에 대해서 생각조차 해본 적 없던 저였지만 인문계를 나와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마케팅 부서에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본격적으로 면접을 보고 있었지만 뭔가 이게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음을 느꼈고 마냥 신나는 홍콩, 싱가폴에서의 생활이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취업이라는 것을 해야하기에 하는 것이고, 내가 나로써 존중받을 수 있는 술자리 회식이 없고 사회 생활에 내 젊은 시절을 바치기 싫어서 선택한 차선책이 해외취업이었던 것이죠. 

싱가폴의 유재석이라 불리는 Dasmond Goh와는 그가 한국에 올때 혹은 제가 싱가폴에 갈때 부담없이 행아웃을 하고 현지에서 얼마나 인기있는지 체감합니다.

 그런 마음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쉬지 않고 공백없이 취업을 해야한다는 압박에 해외 취업 면접을 끊임없이 보기 시작했습니다. 싱가폴에 있는 한 마케팅 직군이었는데 인플루언서라는 산업이었고 뭔가 액티브해보이고 그들만의 사내문화로 영하고 힙한 분위기가 한껏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면접은 면접관이 잠시 한국에 올 일이 마침 있으니 다음날 당장 면접을 볼 수 있냐고 물어서 면접에 합격했다는 이메일을 받고 10시간도 지나지 않고 가로수길로 면접장에 향했습니다. 그것도 어떤 카페에서요. 한참을 기다려도 면접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오지 않길래 이상하다 생각하고 두리번 거렸는데 쇼핑백을 가득 들고 화려하게 머리 염색을 한 사람이 아까부터 앉아있었다며 그렇게 면접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면접을 보고 5분도 되지 않아 저는 이 회사와 맞는 사람이라는 답변을 얻었고 저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15분간의 면접은 끝이 났습니다. 그 이후 임원 면접도 스카이프콜로 무리없이 마무리되었구요. 그렇게 첫 출근을 하면서도 긴가민가했었던 외국계 기업을 처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의 첫출근은 싱가폴이 아닌 서울이었습니다. 지금 한국 지사를 오픈 준비중에 있으니 너는 한국 지사의 첫번째 멤버가 될 것이고, 이후에 싱가폴본사로의 이직기회를 약속받았고 그 사이 잦은 해외 출장의 기회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논의했습니다. 

싱가폴 사람이지만 일본 지사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이자 절친과의 출장은 고된 스케줄과 힘든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날릴 수 있는 원천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회사에 첫출근하고 처음 일주일동안 치열하게 내 안의 나에게 질문하고 그 답을 얻는데 집중했습니다.


1) 한국에 있는 외국계 기업이라도 꼰대같은 문화는 없어야하며

2) 쓸데없는 눈치보기와 줄서기로 내 삶을 낭비하는 회사는 아니어야하고

3) 술을 강제로 먹이는 회사도 싫고 

4) 영어를 사용하는 회사라 내가 힘들게 배운 영어를 까먹지 않을 수 있게 해야하고

5) 무엇보다 지금 현재의 내 노력이 나중에 생각하는 내 미래에 직간접적인 도움이 되어서 지금 현재 내가 헛짓하고 있지 않고 계속 발전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하는 


아주 까다로운 조건들을 다 통과한 회사가 이 회사였습니다. 그렇게 완벽한 조건도 아니고 다른 좋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내가 어떤 부분에 있어서 가장 큰 가치를 가지고 회사를 결정하는가에 있어서 그간의 한국 회사들에서의 경험들은 큰 기준점을 정할 수 있는 잣대가 되었고, 그 잣대에서 꼭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추스리고 나니 회사에서 말이 안되는 일이 일어나고 스트레스를 받고 상처받는 일들의 연속에서도 꿋꿋히 내 자리를 지키며 내 장기를 살려 인정받고 일임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즐기는 순간들을 자주 맞이할 수 있는 성취감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2시간의 디너동안 나란 존재를 인플루언서와 셀러브리티들에게 각인시키고 한국에 와서 나를 스스럼없이 찾을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즐거운 기억을 만들수 있게 힘씁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이라는 분야는 참 특별합니다. 정말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속에서 회사의 색깔을 유지해야하며, 그 회사에서도 자신의 개성과 장점을 끊임없이 증명해보여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맥이 전부인 것 같은 친목의 스킬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비지니스 플랜에 대한 굳건한 전략이 필요하고, 하루종일 계약서를 쓰고 수정하고 메일로 이야기하고 직접 만나 미팅하고 메신저로 실시간 응답까지 필요한 Time management가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자리한 직군이기도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다른 나의 여러가지 모습중에 내가 잘하는 모습은 끊임없이 회사와 시장에 증명해보이고, 내가 부족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 생산적인 피드백과 깨달음으로 보완해나가야하지요. 

너무나 인형같이 예뻤던 릴리메이맥과 친구가 될 수있는 화려한 삶을 살고 있지만 물 아래에서는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모습이 보여지지 않기도 합니다.

 방송국에서 일하지 않아도 연예인을 만날 기회는 많습니다. 그것도 세계적인 슈퍼스타와 함께 밥먹고 이동하며 친구가 되는 특별한 순간도 자주 찾아오죠. MLBB 대란을 일으킨 릴리메이맥과 할리우드에서 활발한 호스트로 사랑받고 있는 Jeannie Mai와의 조우또한 인플루언서 마케팅 업계에 몸담고 있기에 일로써 즐거움까지 챙길 수 있는 일 중 하나였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화려한 삶에 늘 다이나믹해서 일이 재밌어보인다구요. 하루에 8시간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시간들 중에 '일'이 늘 재밌으면 참 좋겠지만 늘 일이 즐겁진 않습니다. 지치기도 하고 슬럼프를 겪고 힘들때도 많지요. 하지만 화려해 질 수 있는 그 순간을 즐기고 또 업무에 있어서 완성도를 더해나가는 paper works 들 또한 직장인으로써 그리고 책임감있는 프로페셔널한 사회인으로써 견뎌내야하는 삶의 무게라 감히 부를 수 있을까요.

국가를 뛰어넘는 콜라보레이션의 현장에서 그들의 우정에 내가 도모했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의미를 가지는 보람찬 일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저는 제가 잘 맞는 회사에서 내 자신을 발전시키면서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물론 노동절인 오늘도 회사는 가지 않고 원격근무를 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인플루언서 마케터로써 저는 제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나라는 단추에 꼭 맞는 구멍을 찾기까지 저또한 불안하고 괴롭고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휴가를 가도 인플루언서들의 활약에 반가워 사진을 찍고 이런식의 현지마케팅이 진행되고 있음을 신기해합니다.

 대학생때부터 이리도 치열하게 살았던 이유가 단 한가지, 나에게 맞는 직업을 골라서 나중에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었을때 (아, 서른은 나중이 아니라 아주 곧 펼쳐질 미래가 되겠군요^^;;;) 잘못 살았으니 나에게 맞는 직업에 대한 방황을 그때 하지않고 뒤늦게 깨닫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노력이 너무도 무색하게끔 하늘은 내게 맞는 직업의 기회와 찬스를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원망할때도 있었죠. 하지만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나를 들여다보아서 나라는 존재를 알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내 직업에 대한 확고한 큰 기준 몇가지가 상응한다면 그 직업은 당신에게 큰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제대로 맞는 구멍일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직장에서 100점은 없고 100%나를 만족 시킬 순 없지만 적어도 지금 직장에서 보내고 있는 당신의 시간이 헛되지 않을 수 있는 현재를 보내고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현재의 밑거름이 미래의 내 모습을 밝게 빛나게 해줄 확신도 함께 말입니다.

공항 광고판에서 만날수있는 셀러브리티와 인플루언서들과의 즐거운 식사시간이 회사에서 주로 있는 회식시간입니다.

::: 5년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는 면접을 볼때부터 중간 평가가 있을때 공식 질문이 있습니다. 5년뒤에 내가 그리는 미래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목표설정입니다. 이 목표가 얼마나 현재에 도움이 되는지 회사가 어떤 부분에서 도와줄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 내 스스로가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 말이지요. 외국계 회사라서라기 보다 이건 저희 회사의 특징인것 같지만 월급 협상때 그간의 내 노동과 성과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는 것 그 이상으로 짜릿하고 감사한 순간입니다. 회사의 일원으로써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또 다른 원천은 회사가 나를 개인으로써 내 개인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존재임을 각인시켜주고 서포트해준다는 든든함을 느낄수 있으니까요. 

다국적 동료들의 든든함에 모두가 함께 손잡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해외취업을 고민했던 한 사람으로써 저는 해외취업에 대한 100% 확신없이 해외 취업은 저와 맞지 않는 선택이었고 지금처럼 한국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해외 지사의 동료들과 함께 실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며 일할 수 있고 한국에서 부모님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지금이 좋습니다. 해외취업에서의 장점도 많지만 집을 구하는 것에서부터 아주 간단한 물건을 사는 것들까지 한국에 있을땐 부모님댁에서, 혹은 집에서 가지고 올 수 있지만 해외에 나가면 모든 것들이 다 돈이고 채워넣어야할 것들이지요. 그리고 냉정하게 신입의 월급으로 아주 좋은 조건의 다국적 기업의 회사가 아닌 이상 한국사람이니 한국에 일년에 2번은 들어와야 향수병도 잘 극복하고 살 수 있는데 그 비행기값이며 휴가때 가고 싶은 나라를 마음껏 갈 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보장되기까지 최소 2~3년은 걸린다는게 해외 취업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관점은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고 저의 궁긍적인 취업의 목적이 멋진 직장인이 아니기에 내린 결정인 이유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지원으로 유학생일때도 어려운 것이 많았는데 뻔한 월급에 돈들어가야할 곳은 누구보다 훤히 잘 보이고 앞으로 2~3년이 내가 나아가고 싶은 분야의 일을 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간이라면 해외취업이 잃어버린 나의 2~3년이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프레스 컨퍼런스의 백스테이지를 뛰어다니고 그 행사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인플루언서들과 셀러브리티들을 케어할때의 중압감은 크지만 가장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저의 친한 동료는 한국에서 일하다가 본사에서 자신의 능력과 직군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받아 본사에서 일을 합니다. 제 동료의 안부를 묻는 주윗분들께 본사로 갔다고 이야기하면 하나같이 깜짝 놀란 눈으로 너무 잘된 일이라는 반응에 저는 시큰둥해졌습니다. 모두가 원하는 세계화에서 저는 오히려 한국화다운 것이 저를 더 빛나게하는 가치이고 제가 빛날 수 있는 힘이라 믿고 있기에 이 모든 선택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말입니다. 저의 케이스처럼 해외 취업 이전에 한국의 외국계 회사에서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여 저의 동료처럼 본사로 가서 해외취업을 하게 되는 길도 있고, 저는 오히려 본사로 가라고 해도 조금의 망설임없이 한국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한국에서의 삶을 더 가치에 두고 있습니다. 

 시작이 어디가 되었든 그 기회는 만들어나가는 것이고 자신이 증명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본사로의 이직 기회가 없다면 그 경력을 발판삼아 해외로의 취업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그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쌓아나갈 수 있는 직군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직 사회초년생, 아니 사회에 발을 딛기전 자신이 얼마나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회사의 분위기와 조직이 자신과 얼마나 어울리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확인은 잡플래닛에서 한다고 하더라도 불충분하고 팀바팀이라고 팀마다 달라질 수 있겠지요.

방송국사람들이 될 줄 알았지만 방송과 전혀 다른 분야에서 방송과 가장 가깝게 일하고 있습니다. #인플루언서마케팅

 인플루언서의 채널에 내가 나오고 인플루언서들과 셀러브리티들이 꼽는 함께 일하고 싶은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저는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텔레비전에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인플루언서들이 얼굴을 비추고 제가 그 다리 역할을 잘해내서 지속적으로 업계의 많은 담당자들이 나를 추천하고 다시 나를 찾을때 참 감사합니다. 이메일 쓰는 것조차 제가 회신 받은 이메일에서 어깨너머로 배워야 했고, 한국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일본과 중국, 미국의 문화차이를 빠르게 캐치하여 이해하고 상대를 이해시켜야하는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을 효율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센스로 채워나가기 위해 차분히 고민합니다. 그리고 신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경력과 경험에 비해 올바른 판단을 해야하는 중요한 책임의 무게도 따르지만 그래서 더 바른 생각으로 나를 다독이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한때 해외취업을 격렬하게 꿈꿨던 2년전 나에게 지금의 나는 말해주고 싶습니다. 

해외취업이 답이 될 수 없다고. 해외든 한국이든 기회는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내 자신에 대한 가능성과 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성취하며
만들어나가는 꿈을 만드는 과정속에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 길은 네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거라고 믿자고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동남아문화마케팅 답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