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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Kim Apr 18. 2016

BODONI

있는 그대로 가장 아름답고 감각적인 서체

보도니(Bodoni)는 이름 자체로는 굉장히 생소하고 어색하지만 우리가 익히 보았던 패션잡지인 ‘바자(Bazaar)’와 보그(Vogue)를 통해 생각보다 낯익은 글꼴이다. 보도니는 여러 영문 글꼴 중에서 조금 특이한 위치에 놓인다. 지난 시간 이야기했던 세리프(돌기 있음) 산세리프(돌기 없음) 글꼴들의 특징을 하나로 잘 버무린 글꼴이기 때문이고 세리프를 가진 글꼴에서 느낄 수 있는 고전적이고 장식적인 아름다움과 산세리프 글꼴이 가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글꼴이기 때문이다.   

닮은 듯 다른 폰트 보도니와 디도


보도니로 대표되는 디돈(Didone) 스타일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 보도니를 설명할 때 항상 따라붙는 디돈스타일은 프랑스의 피르맹 디도(Firmin Didot)가 만든 디도(Didot)와 이탈리아의 잠바티스타 보도니(Giambattista Bodoni)가 만든 보도니(Bodoni)의 이름을 결합한 이름이다. 디돈스타일은 18세기 수학적 형태와 비례미를 반영하여 완성되었던 왕의 로만체(King's Roman)가 기본이 되었던 스타일로 기존의 글꼴들 보다 더 기하학적이고 수학적 형태 원리를 더욱 극단적으로 끌어낸 글꼴이다. 

 Firmin Didot & Giambattista Bodoni


글자 모양은 기하학적 아름다운 형태에 기반하였고 비례는 수학적으로 정확한 수치를 고려하여 머리카락만큼 가는 가로획과 굵은 세로획이 세리프 없이 직각으로 만나는 절묘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러한 조합은 글자에서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극단적 대비를 보인다. 기존의 글꼴들이 필기구의 발전에 따라 형태적 특징을 가졌었다면 디돈스타일은 펜글씨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진 가장 진보적인 형태의 글꼴이다. 여기엔 많은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얇고 가는 글꼴을 인쇄할 수 없었던 18세기 이전에 비해 18세기 초반 표면이 매끄럽고 질 좋은 종이의 개발과 활자 조각기의 정교함에 따른 활판 주조술의 발달, 광택이 있는 인쇄용 잉크의 고급화가 인쇄술 발전에 크게 공헌했기 때문이다.

왕의 로만체 설계(Typographie, Le Romain du roi)


보도니를 만든 잠바티스타 보도니(Giambattista Bodoni)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살루초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제국이었던 파르마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이탈리아 인쇄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보도니는 소년 시절에 집을 떠나 로마에 가서 로마 교황청의 선교 본부인 포교회의 출판부에서 도제로 일했다. 1768년 그는 파르마 대공(大公)의 인쇄소인 스탐페리아레알레의 경영을 맡도록 요청받았다. 그는 그곳에서 궁중용 이탈리아어·그리스어·라틴어의 책들과 인쇄물을 제작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장식적인 세공이 되어 있는 재래식 활자체를 선호하여 사용했으나 점차 프랑스의 인쇄업자인 피에르 디도의 활자 조판 이론에 동조하게 되었다. 



잠바티스타 보도니는 1787년 드디어 그 자신이 고안한, 장식이 거의 없는 현대적인 활자체로 인쇄물들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보도니'라 이름 지어진 활자체는 1790년 처음으로 선을 보였는데, 이 시기에 잠바티스타 보도니가 제작한 많은 책들에 이 보도니체가 사용되었다. 1790년경부터 보도니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되자 많은 여행객과 저명한 작가들이 직접 그의 인쇄소를 직접 방문했고, 수집가들은 그의 책을 찾아다니면서 마치 컬렉션 하듯 책을 모았다. 이를 알게 된 파르마 대공은 그에게 인쇄소를 더 크게 늘려주었으며 더 많은 독립성을 제공했다. 그로 인해 잠바티스타 보도니는 더 이상 대공의 사업에만 자신의 일을 한정시키지 않아도 되었다. 그가 출판한 책들은 비록 가독성이 떨어지고 원문의 정확성보다 활자체의 미려함과 우수성으로 더 유명했으나, 많은 중요 문헌들이 보도니를 사용하여 인쇄하게 되었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각각 1791년과 1793년에 간행한 호라티우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작품들과 1818년 출간한 호메로스의〈일리아스 Iliad〉의 세련된 판본들을 들 수 있다. 말년에 보도니는 국제적으로 더 유명해졌다. 그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치하를 받았던 미국의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과도 서신을 교환했고, 파르마 시(市)로부터 메달을 수여받았으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로부터 연금을 받았다. 비록 늦은 나이에 빛을 발하긴 하였지만 대기만성이란 이런 인생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잠바티스타 보도니는 단지 꾸준하게 서체가 가진 미학적 완성을 추구하였으나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증명했던 역사적인 인물 중 하나인 것이다.

Giambattista Bodoni, His Life and His Work


보도니와 함께 디도는 인쇄와 출판업을 가업으로 시작한 프랑수아 디도(1689~1757)로부터 기나긴 가문의 가업역사를 통해 탄생한 글꼴이다. 프랑수아 디도는 파리에서 인쇄업과 서적상으로 출발한 인물로 아베 프레보의 총서 20권을 출판함으로써 유명해졌다. 


디도의 큰아들 프랑수아 앙브루아즈(1730~1804)는 획이 굵은 활자와 가는 활자 간의 대비를 보다 크게 함으로써 표준 활자의 모형을 변화시켰다. 또한 푸르니에 표준 활자의 크기를 당시 사정에 맞게 개량했는데 프랑스식으로 1인치를 72포인트로 한 디도식 활자 규격은 현재 활자 크기의 표준단위가 되었다. 프랑수아 앙브루아즈는 또한 '파리지엔', '프티 로맹'과 같은 전통적으로 활자 크기를 가리킬 때 사용해 오던 기존의 호칭을 버리고 대신 현재 우리가 쓰는 단위인 12포인트 활자, 24포인트 활자 등과 같이 포인트 단위로 구분 지었다. 


앙브루아즈는 2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큰아들 피에르(1761~1853)는 앙부르아즈의 인쇄소를 물려받았으며 둘째 아들 피르맹(1765경~1836)은 활자주조공장을 맡게 되었다. 그 둘째 아들인 피르맹을 통해 만들어진 서체가 바로 디도라는 서체다. 디도 가문의 역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피에르의 큰아들 앙리(1765~1852)는 극미(極微) 활자의 발명가로 유명하였는데 긴 막대에 여러 개의 주형 모양을 새겨 그곳에 뜨거운 금속 물을 부어 활자를 제작하는 폴리머 타이프를 발명했다. 이 기구는 한 번작동으로 200개의 활자를 주조할 수 있어 활판의 대량생산에 일조하였다. 


피에르의 둘째 아들 레제(1767~1829)는 현대화된 제지기계를 발명하여 고급 종이를 보급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피르멩 디도의 아들 앙브루아즈 피르멩(1790~1876)과 야생트 피르멩(1794~1880)은 부친의 은퇴 후 부친이 하던 일을 이어나갔다. 이렇듯 디도 가문은 현대 인쇄술의 발전을 주도하였고 현재도 그 기반이 모든 인쇄술에 사용되게 되었다.



그러한 역사를 가진 디도는 보도니와 함께 현재 디자이너들로부터 굉장히 사랑받는 서체 중 하나인데 1783년 개발된 후 현재는 디지털화되어 다양한 버전의 디도폰트가 만들어졌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1960년대 CBS 방송사의 로고가 디도글꼴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CI다.

CBS C.I.


보도니와 디도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진보적 감성을 가진 많은 이들이 사랑한 서체였다. 보도니가 가지고 있었던 형태적 참신함과 기존의 글꼴과 다른 미래적 감성은 19세기까지 널리 쓰이다가 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전반적인 인쇄 수준 저하로 인해 점차 쓰이는 일이 적어졌다. 기억에서 잊혀진 비운의 글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DTP로 대표되는 현재의 인쇄방식이 정착되기 시작하면서 디지털서체로 다듬어져 다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으며 특히 디자인 트랜드에 있어 
가장 진보적인 패션계에서 사랑받은 서체 중 하나였다. 

알렉세이 브로도비치(Alexey Brodovitch 1898~1971)


보도니가 대중에게 다시 선보여지며 사랑받게 된 계기는 독특한 카리스마와 아트 디렉팅으로 유명했던 러시아의 디자이너 알렉세이 브로도비치(Alexey Brodovitch 1898~1971)가 1934년부터 20년 동안 유명 패션잡지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의 아트디렉션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사진과 이미지를 아우르는 서체의 아름다움, 여백의 혁신적 사용을 통해 당시 편집 디자인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 패션잡지 보그(Bogue)는 타이틀용 글꼴로 디도를 사용되며 모던하면서도 장식적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게 되었다. 디돈스타일의 부활인 것이다.



과연 이러한 디돈스타일이 한글서체에 적용되면 어떤 형태를 가지게 될까? 최근 한국의 안삼열 디자이너를 통해 개발된 '310'폰트는 디돈스타일이 가지고 있는 극단적인 획의 두께 차이와 장식적으로 형태의 조합으로 주목받고 있다. 1787년 디자인된 보도니가 기존 로마자 글꼴들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던 손글씨의 흔적을 지우고 알파벳의 수직·수평의 기하학적인 형태를 강조한 글꼴이 었던 것처럼 안삼열 디자이너의 310폰트는 세로획을 굵은 직선으로 표현하면서도 세밀하게 얇은 가로획이 뭉치고 풀리는 힘의 변화를 가지고 있어서 손으로 쓰여진 캘리그래피의 강약 표현과 기계적인 모던함을 함께 보여준다. 그 효과로 여성적인 느낌을 대표하던 명조체와 남성적인 느낌을 대표하던 고딕체를 알맞게 버무린 중성적 아름다움을 갖게 되었다. 비록 310체가 장식적인 아름다움에 기반을 두지는 않았지만 디돈스타일이 가진 극단적이며 조화로운 아름다움이 한글에도 적용되었다는 점은 앞으로의 한글서체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예상된다. 

안삼열 - 310 font


종종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자연에서 비롯된 형태적 아름다움을 비교하곤 한다. 많은 글꼴들이 이러한 자연적인 비율과 대비를 참조하고 있긴 하지만 글꼴의 역사에 있어서 디돈스타일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극단적 대비와 감각적인 둥근형태의 조합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극단적 대비야 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익숙한 모습일 지도 모른다. 자동차의 아름다움은 단지 넓은 면으로 되어있는 강판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강판과 강판을 연결하는 좁은 틈을 통해서 더 도드라진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대부분의 가전제품들도 이러한 면과 선의 극단적인 만남을 통해 디자인적인 아름다움을 보게 되며 자연에 있어서 굵은 나무의 밑동과 가느다란 가지에 열린 열매에서 미학적인이 이와 대비된다. 그런 면에서 미니멀리즘이란 어쩌면 극단적인 아름다움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미니멀리즘의 극한에 다다르면 단지 면과 선이 만나는 단조로움에서 극단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보도니는 바로 그 지점에 서있다. 당신의 명함과 로고에 조금 더 심플하고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가미하고 싶다면 보도니를 추천한다. 보도니는 굳이 어렵게 변형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위 내용은 '아레나 옴므' 매거진에 2014년 12월 연재된 '글자를 위한 글'입니다.


글 : 오영식(토탈임팩트), 김광혁(VMK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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