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DECON magazine
by Jake Kim Apr 25. 2016

FUTURA

시대를 아우르는 서체 푸트라

명품의 어원은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것이 고려시대에 명나라와의 상품교역을 통해 국산과 수입품의 구분을 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고려상인들은 명나라의 비단과 고가의 여러 수입품들을 명나라에서 온 상품이란 뜻으로 명품(明品)이라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시대가 바뀐 현대에 와서 우리가 부르는 명품(名品)이란 뜻은 이름이 있는 상품을 뜻한다.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역사와 전통이 있는 유명한 브랜드의 제품을 명품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그 명품을 명품답게 만드는 브랜드란 무엇일까? 브랜드(brand)는다양한 생산자를 구별하는 기호화(Icon)된 이미지와 경험(Experience)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이며 좁게는 어떤 상품이나 회사를 나타내는 상표, 표지이다. 숫자, 글자, 글꼴과 상직적인 로고, 색상, 기호를 모두 포함한다. 그 브랜드를 상징하는 최소한의 단위인 C.I.(Corporate Identity), B.I.(brand Identity) 등은 때로 독특하고 기존에 없었던 글꼴을 새롭게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브랜드들은 새롭게 만들어서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오랫동안 사람들 눈에 익은 글꼴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인지도 및 완성도를 높인다.


푸트라를 사용한 로고와 타입페이스


우리가 종종 유명 브랜드라 말하는 루이뷔통(LOUIS VUITTON),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A), 앱솔루트 보드카(ABSOLUT VODKA), 폭스바겐(Volkswagen), 이케아(IKEA)가 가지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브랜드들은 1927년 파울 레너(Paul Renner)에 의해 탄생한 ‘푸투라(Futura)’라는 서체를 활용해 브랜드의 로고를 만들었다.

많은 영화 감독들에게도 사랑받는 푸투라


위에 열거한 회사 외에도 최근 흥행이 되었던 영화인 그래비티(GRAVITY)의 포스터와 SF영화의 전설이 된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space odyssey)', 에너지 드링크의 대명사인 레드불(Red Bull)의 패키지에서도 우리는 가장 심플하며 모던한 형태의 산세리프 서체인 푸투라(Futura)를 만날 수 있다.


Paul Renner(1878-1956)


1924년 푸투라(Futura)의 디자이너인 파울 레너(PaulRenner)는 바우어 타입 파운드리(Bauer Type Foundry)의 아트디렉터이자 레너의 학생이었던 하인리히 요스트(Heinrich Jost)의 소개로 활판(납활자) 제작소인 'Bauer's che Giessereirk'의 오너였던 게오르그 하트만(Georg Hartmann)에게 푸트라의 첫 스케치를 보여주게 된다. 단지 스케치였던 푸투라(Futura)의 초기 디자인은 하트만의 장인스러운 열정을 불러일으켰고, 약 삼 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납주물의 세공 과정을 통해 푸트라라는 글꼴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다. 푸투라의 디자인적 독창성은 기하학적인 모양인 원, 삼각형, 사각형에서 출발하는데 원의 아웃라인은 살짝 타원형으로 되어있어 가독성을 높여주는데 효과적이며 알파벳 캘리그래피에서 보이는 모든 장식적인 요소를 의도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최대한 기능적인 목적에 충실하도록 만들어졌다. 당시의 예술과 디자인의 트렌드는 바우하우스에 기반한 산업디자인 스타일과 구성주의를 반영한 심플함이 주를 이뤘는데 푸투라는 그 시대적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는 서체로 각광받으며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현재 미니멀리즘이 모든 디자인의 기본이 되는 시대에도 사랑받고 있는 글꼴이다.


아방가르드와 푸투라 비교


파울 레너(Paul Renner)가 푸트라(Futura)를 디자인하며 사용한 원, 삼각형, 정사각형은 지오메트리(geometry)라 불리는 기하학(幾何學)에 기반하고 있었다. 기하학이란 도형의 길이와 넓이, 각도 등을 일정하게 측정하거나 공간에 대비했을 때 수학적 수치를 따지는 분야다. 과거 문명을 구축하면서도 여러 가지 수학적인 측량에 사용하였으며 건축에 활용되면서 더욱 발전해온 학문이다. 피타고라스와 유클리드 등의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이 자연에 숨겨진 수치의 신비를 연역적인 증명을 하며 시작되었다. 현대적인 기하학은 데카르트의 방정식을 통해 더욱 발전하였으며 뉴턴과 라이프니츠, 리만 등을 통해 물리학과 철학적인 영역까지 담게 되었다. 푸트라(Futura)는 구조적 측면에서 지오메트리 이론을 철저히 따르고 있으며 공간에 그려진 도형의 양이 일정해 보이도록 시각보정을 해서 전체적인 무게감이 조화롭도록 설계하였다.

"Latin script" was typified by Antiqua
"German/Gothic script" (blackletter) was embodied by Fraktur


또한, 푸투라(Futura)는 약간의 역사적 지식을 알면 더 재미있는 글꼴이다. 파울 레너의 푸투라 제작 동기는 당시의 독일에 만연했던 안티쿠아체(로만체-세리프서체)와 블랙레터체 사용 논쟁에 기원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국가들은 15-16세기부터 르네상스 열풍과 인쇄술의 발전에 힘입어 로마의 유물들에 남아있던 로마자들을 근현대적으로 개량하고 소문자를 추가한 이른바 로만체들이 표준처럼 되어 사용하게 되었다. 반면 독일에서는 19세기 전까지 블랙레터체(프락투어:Fraktur)가 매우 오랫동안 사용되었고, 나폴레옹의 진군으로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사상 등이 널리 보급되면서 서/남유럽의 서체인 안티쿠아가 조금씩 사용되기 시작된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19세기 초부터 서체에 관련된 논쟁이 시작되는데, "왜 우리만 프락투어를 사용하는가? 다른 국가들처럼 안티쿠아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세계주의적인 입장과 "프락투어는 독일 민족의 서체이며 독일어에 가장 적합한 서체이다."라고 하는 민족주의적 입장, 이 두 가지 입장이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푸투라의 초기 도안들


이런 사회와 역사적 배경이 파울 레너가 푸투라(Futura)라는 서체를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파울 레너가 처음 게오르그 하트만에게 보여주었던 1924년 여름의 스케치 초기 버전에서는 그 고민이 매우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초기의 스케치에는 블랙레터의 딱딱하고 우둔한 느낌이 강하게 살아있었지만 아트디렉터였던 하인리히 요스트의 집요한 수정 요청을 통해 이후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글꼴에서는 초기의 스케치가 느껴지기 힘들 정도로 많은 부분 순화되었다. 디자인의 모든 형태는 시대적 필요성에 기반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푸투라(Futura) 역시 시대가 낳은 훌륭한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


바우하우스 출신 작가들의 포스터
 인간이 달에 첫 발을 내딪었을 때 달에 남겨진 서체 역시 푸투라 였다. "Futura: first font on the Moon"


푸투라(Futura)는 라틴어로 미래를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푸투라(Futura)로 디자인된 여러 작업물들은 특별한 꾸밈없이도 미래지향적이고 현대적인 인상을 풍긴다. 푸투라(Futura) 폰트 패밀리는 1927년에 Light, Medium, Bold, Bold Oblique 등이 발표되었고 3년 뒤인 1930년에는 Light Oblique, Medium Oblique, Demibold, Demibold Oblique 등이 발표되며 어떤 분야에 사용해도 손색없는 탄탄한 글꼴이 되었다. 파울 레너는 화려하게 꾸미는 것에 치중하거나 필요 없는 요소에 공들이는 것을 비효율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러한 장식적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고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성 있는 서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당시 바우하우스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지만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받아들여 과거의 서체를 고쳐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형태로 완전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기계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창조성과 디자인은 이후에 많은 디자이너와 창작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푸투라의 다양한 폰트 패밀리들


푸투라(Futura)를 디자인하는데 기본이 되었던 원, 삼각형, 장방형은 구조에 있어서도 굉장히 기하학적이고 대칭적인 형태가 특징인데, 대칭적(A, O)이며 뾰족한 형태의 모서리(A, V, M, W), 날렵하게 가로지르는 사선의 표현(X, Q), 직선으로 뻗은 획(소문자 i, j)의 세련됨과 과감하게 잘리는 원(소문자 c)의 형태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푸투라(Futura)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주로 출판산업에서 많이 사용됐고 후에 인쇄와 광고 등에서 헤드라인과 본문 그리고 로고 등에 많이 사용됐다. 푸투라(Futura)는 다른 영문 폰트와 비교했을 때 조형적 특징이 뚜렷해 타입 페이스만으로도 여러 가지 느낌을 살릴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푸트라(Futura)로 디자인된 로고들은 글자의 두께나 색, 글자 사이의 간격에 따라 느낌이 확연히 달라져 특정 영역 특정 상표의 패키지와 브랜드 디자인보다는 여러 기업을 대표하는 로고 디자인에서 더 효율적으로 사용된다.


폭스바겐의 로고
앱솔루트 보드카의 로고
레드불의 로고
나이키의 로고
구글의 로고

Futura의 미래지향적이고 간결한 기계적 형태는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의 C.I.를 보면 얼마나 궁합이 잘 맞는지 느낄 수 있다. 대표적인 패션 브랜드인 루이비통과 돌체 앤 가바나에 사용된 푸투라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움을 잘 나타내 준다. 또한, 앱솔루트 보드카나 레드불, 나이키에서 보이는 두꺼운 굵기의 푸투라(Futura)는 강하고 에너제틱한 브랜드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구글 역시 최근 C.I.를 변경하며 푸투라에 기반하여 디자인하였다. 이렇듯 푸투라는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가진 타입페이스다.


활판(납활자) 제작소인 'Bauer's che Giessereirk'


푸투라(Futura)의 전례 없는 성공은 서체 회사였던 바우어 타입 파운드리(Bauer Type Foundry)로 하여금 다양한 나라에 위치한 서체 공방에 아웃소싱을 주게 되었던 것에도 그 이유가 있다. 서체 공방과 인쇄소들의 일거리와 직결된 서체의 다자인의 독립성 개방은 당시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다.(대부분 독점 방식이었다.) 푸투라의 조형적인 독특함이 기반에 깔려있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것이 초기 저변화의 이유가 되었겠지만 아웃소싱을 통한 적극적인 서체 배포는 푸투라(Futura)가 전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대중적 인기는 모든 나라의 인쇄소에서 가장 사랑받고 인정받는 서체로 탈바꿈하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푸투라에는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다. 그중 하나인 'Futura Display'


바우어사(社)의 선구자적 아웃소싱 라이센스 시스템은 컴퓨터를 통한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그래픽 분야에 처음 소개되었을 당시 포토샵으로 유명한 어도비(Adobe)와 컴퓨터 회사인 애플(Apple)을 비롯, Berthold, Bitstream, Linotype, Monotype, Paratype, URW++, Wiescher 등 유명 디지털 폰트 업체에게 푸투라를 사용하고 만드는 권한을 양도하였다. 각 회사들은 시스템에 기본 서체로 포함시켜 소비자가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거나 다양한 온라인 배포처를 통해 판매하며 더욱 빛을 발하였다


푸투라. 시대를 아우르는 서체(Futura:the typeface of today and of tomorrow)


푸투라는 2차 대전 전후에 유럽 타이포그래피의 중심이 스위스로 옮겨가면서 그 인기가 잠시 주춤했었고, 산세리프의 대표적 서체인 헬베티카가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디자인의 역사 뒤로 묻히는 듯했었다. 하지만 글꼴이 발표되고 약 90년이 지난 지금, 80년대의 그래픽 디자인계의 핵심이었던 레트로(Retro) 열풍과 함께 점진적으로 다시 인기를 끌며 명성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푸투라의 미래지향적이며 간결한 디자인이 사용자의 취향에 부합하여 다양한 유행의 선구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제 푸투라(Futura)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쓰이는 글꼴이 되었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글꼴이 되었다. 초기 푸투라(Futura)를 홍보하며 “푸투라. 시대를 아우르는 서체(Futura:the typeface of today and of tomorrow)”라고 말했던 슬로건은 아직도 유효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푸투라는 언제나 현재에 머무르며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도 시대를 아우르는 서체로써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





위 내용은 '아레나 옴므' 매거진. 2015년 1월에 연재된 '글자를 위한 글'입니다.


글 : 오영식(토탈임팩트), 김광혁(VMKZ) - https://www.facebook.com/nitro2red

keyword
magazine DECON magazine
직업디자이너
디자인 50% 덕질 30% 글 20%의 삶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글 50% 덕질 30% 디자인 20%의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facebook.com/nitro2red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